프론트엔드 개발을 하는 사람이라면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에 대해 한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사용자가 직접 사용하는 화면을 만드는 것이 프론트엔드 개발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개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웹 접근성에 대해 가볍게 알고 넘어갔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웹 접근성을 준수해야 하는 개발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유투버가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 역을 통과하는 모습을 브이로그로 찍어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역엔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다시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모두 찍혔습니다. 해당 유투버는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이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그 영상의 댓글에는 우리나라의 이동권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공유되었습니다.
저는 장애를 갖고 있진 않지만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았고, 그 후로 왼팔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짐이 없이 다니거나 오른팔만으로 짐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거나 기내용 수하물을 캐빈에 넣어야 하는 등 두 팔로 물체의 무게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큰 낭패를 겪곤 합니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일시적으로 신체를 다치거나 유모차 또는 휠체어를 끄는 상황은 비장애인에게도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신체가 부자유한 상황에서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면, 우리는 이동권이 제한되었다 또는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정보통신접근성이라고도 부르는 이 웹 접근성은 지능정보화기본법에 따라 모든 사용자가 신체적·환경적 조건에 관계없이 웹에 접근해 동등한 사용자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용자라고 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 웹 환경에 익숙지 않은 고령자, 그리고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 등 다양한 플랫폼이나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웹 접근성이란 오프라인에서의 이동권과도 같습니다. 웹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함은,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전에 접근부터 제한되는 것입니다.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장애인이나 웹 서비스에 익숙지 않은 고령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은 아주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2010년 초 맥북을 사용하던 사용자들처럼요.
2010년 초반에 맥북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사용자는 윈도우를 사용하고 있었고,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고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즈음에 맥북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윈도우 컴퓨터를 별도로 두거나, 부트캠프를 통해 윈도우를 이용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맥북 사용자들은 제대로 된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맥북을 구매하는데 장벽이 되었을 정도로요. 하지만 이제는 맥북에서도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맥북에도 공인인증서를 설치하는 방법으로요🤔
...어쨌든 공공기관 서비스의 접근성은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웹 접근성을 지키는 것은 솔직히 귀찮습니다. 최근 불거진 키오스크 논란처럼 대충 만들어도 그것이 판매자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키오스크의 메뉴가 아무리 어지러워도 주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키오스크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한 사람이 다시 그 가게로 방문할까요? 장기적으로 해당 업체는 그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는 고객만 남게 될 것입니다.
웹 접근성을 준수하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층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서비스를 만들면, 시력이나 청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쉽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신한은행의 ATM기처럼 이해하기 쉽고 누르기 쉬운 버튼을 만든다면 고령자가 이용하기에도 좋은 서비스가 될 것입니다. (해당 기사가 나왔을 때 댓글에는 젊은이도 이런 ATM이 좋다는 아우성이 빗발쳤..)
클라우드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세상은 점점 더 어떤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저장한 자료를 쉽게 꺼내볼 수 있고, 핸드폰으로 접속하든 컴퓨터로 접속하든 동일한 사용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지금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 때 다양한 모바일 환경을 고려하는 것처럼, 웹 서비스를 만들 때도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서 개발을 하면 개발 효율성이 크게 증대됩니다. 쉽게 말해 이제는 안 만드는 곳을 찾기 힘든 플렉서블 UI 같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 개발을 하면 후에 어떤 디바이스가 새롭게 나오더라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용자가 접근하기에도 쉽고, 개발하기에도 쉬운 서비스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미국 교통부는 전세계 항공사 중 미국에 취항하는 항공사, 그중에서도 60명 이상의 승객을 수용하는 좌석을 갖춘 항공기를 갖고 있는 모든 항공사에게 웹 접근성 준수 사항을 통보했습니다. 기준일까지 웹 접근성 준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포함한 집행조치를 할 수 있는 지침이었습니다.
미국 교통부가 이렇게 나선 이유는, 미국의 청각장애인이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 수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웹 접근성을 지키지 않은 항공사 사이트를 이용할 때 너무 많은 청각장애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해당 조치를 취한 것인데요. 3가지 준수 항목
미국 교통부는 꾸준히 항공사의 웹 접근성 위배 사례를 모집했고, 2018년엔 스칸디나비아 항공사가 실제로 벌금을 내고 사이트를 개선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10명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건 소송도 있었습니다. 이 소송으로 대한항공은 웹 접근성 지침에 따라 사이트를 수정,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접근성 이슈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수술 이후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드러나는 장애를 갖고 있진 않더라도 저와 같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되었죠. 또 갈수록 웹 환경에 익숙지 않은 부모님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서 웹 접근성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웹 접근성에 대해 배웠을 때, 저는 웹 접근성을 준수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꽤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웹 접근성을 지키는 일은 사실 귀찮고, 데드라인이 정해진 일을 하다 보면 그 귀찮은 일을 후순위로 두게 되는 경우가 늘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웹 접근성에 대해 꽤 무감해진 채로 회사 업무를 해왔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남은 것 같습니다.
웹접근성이란?
웹접근성(Web Accessibility)
웹접근성 가이드
한국의 웹접근성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편
항공사 접근성 위배로 인한 벌금 부과 사례
대한항공 홈페이지 ‘웹 접근성’ 의무 이행하라
대한항공, 시각장애인 웹접근성 보장 소송 조정성립
시각장애인에게는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