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티커스의 편견, 스카웃의 편견

Tate 김용태·2023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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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의 한 가정에서 특이한 이유로 아이의 이름을 고친 사례가 나타났다. 그 아이의 원래 이름은 애티커스(Atticus), 부모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애티커스라는 캐릭터에 큰 감명을 받아 아이에게 그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퍼 리의 두 번째 소설 <파수꾼>을 읽고서는 애티커스 캐릭터의 변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들은 아이가 개명하기에 적당히 어리다고 생각하여 애티커스라는 아이의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꾼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가상의 캐릭터 애티커스는 도대체 누구이고, 어떻게 그토록 복잡다단한 평가를 받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

애티커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에서 그가 지나온 행적과 발언을 되짚어보아야 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나타난 애티커스의 언행은 전형적인 미국의 진보 지식인의 그것과 같다. 그는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변호를 하는 이상적인 법조인의 모습과 숱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선을 관철하려 드는 인격자다. 그가 누명에 씐 흑인 청년을 변호하는 장면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구도자의 형상으로 드러나며, 스카웃이 선망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다음은 <앵무새 죽이기>에서 관련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 사람(흑인)을 변호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왜 하시는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읍내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군을 대표해서 주 의회에 나갈 수 없고, 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아빠가 정말로 깜둥이(니거) 애인인 건 아니죠?”

“정말로 흑인(니그로)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래서 때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한편, <파수꾼>에 등장하는 애티커스는 단순하게 맥락 없이 보았을 때 거의 정반대의 인종차별주의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NACCP를 견제하기 위해서 흑인 아이를 변호하겠다고 나선다. 또한 그는 흑인이 표를 모아서 백인을 뛰어넘는 세력화를 하지 못하도록 매이콤 협의회에서 중책을 맡는다. 마치 그는 20년이 지나는 동안 인종차별주의자가 된 것처럼 행동한다. 다음은 <파수꾼>에서 관련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행크, 우리가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실을 아는 한, 그 아이(흑인)를 위한 최선은 유죄를 인정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 이 일이 엉뚱한 사람들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 우리가 그의 편에서 법정에 서는 게 좋지 않겠나?”

......

“……이렇게 해서 그 추세를 조금 꺾어야지……. 그 애가 메이콤 변호사를 요청해서 다행이야…….”

......

“그럼 이 문제를 이제 현실적인 토대 위에 놓고 보자. 너 그럼 니그로들이 우리의 학교나 교회나 극장에 무더기로 있는 것을 원해? 우리의 세계에 그들이 있었음 해?”

“그들도 사람이잖아요. 그들이 돈벌이에 필요할 때는 전혀 꺼리지 않고 그들을 들여왔고요.”

“너라면 니그로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하향 조정된 학교에 네 자식들을 보내고 싶겠어?”

“아시다시피 저 길 아래 학교의 학업 수준은 이미 바닥이에요.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기회가 주어질 권리가 있어요, 똑같은 가능성을 부여받을 권리가 있다고요.”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 말이야, 백인은 백인이고 흑인은 흑인이야. 지금까지 그렇지 않다고 나를 설득시킨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없어.”


<파수꾼>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가 애티커스의 변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과연 애티커스는 변절한 것이 맞을까? 작품 외적의 해석에 따르면 의외로 두 작품의 애티커스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이는 하퍼 리가 두 작품을 어떻게 썼는지가 애티커스 캐릭터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 하퍼 리는 먼저 <앵무새 죽이기>를 출판하기 이전에 <파수꾼>을 썼다. 이후 작가는 편집자의 조언을 듣고 <앵무새 죽이기>를 완성해서 세상에 내보였다. 즉, 작가가 본래 생각한 애티커스의 원래 이미지는 <파수꾼>의 애티커스였고, 편집자의 영향을 받아 문학적으로 발전하고 상업적으로 잘 팔리는 이미지만 추려낸 새로운 캐릭터가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두 작품의 애티커스는 이름만 같을 뿐이지 그 성질과 창조된 의도가 전혀 다른 두 인물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시간이 지났다는 설정을 기준으로 책을 읽는 독자는 애티커스가 늙어가며 타락했거나 변절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한편, 작품 내적으로 분석하면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가령, 두 작품에서의 애티커스는 동일한 캐릭터라는 사실이다. 애티커스는 친절한 백인 신사이고 자신이 맡은 변호인이 어떤 인종이든지 자신의 변호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임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감정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함부로 하고 다니는 행동을 채신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되었든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이다. 그 당시의 인종 대결적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기품이 있는 쪽에 속했겠지만, 결국 인종차별주의적인 바탕을 가지고 생각하는 당시 일반적인 백인 계층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에서 매우 다르게 그려졌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앵무새 죽이기>의 화자가 어린아이인 스카웃이었다는 점이다. 어린이는 사회의 복잡한 사정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스카웃 역시 인종과 정치와 법조계의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간단히 멋있는 아빠와 나쁜 적들로 이분화해서 세상을 단순하게 구조화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애티커스를 이해하는 두 가지 해석을 알아보았다. 그중 나는 애티커스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파수꾼>이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였다는 작품 외적인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후자의 애티커스가 훨씬 입체적이며, 현실적이고, 두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 주는 중요한 캐릭터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애티커스는 입체적 캐릭터의 전형으로 흑인에 대해 평등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지만, 직업적으로 투철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변호사이다. 어린아이의 시점을 이용하는 작법에 의해서 필요 이상으로 우상화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진영 논리를 벗어나서 보면 충분히 동일한 캐릭터로 인식할 수 있다. 오히려 그는 당시 미국 남부의 사정을 현실적으로 독자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물론 애티커스의 신사적인 태도가 그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가 흑인을 지칭하는 표현에 대해 신중하게 선택하고, 좋은 평판을 유지한다고 한들 그는 결국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사회적 위치에 서는 것을 꺼리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 흑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친절한 사람이겠지만, 그 관계가 역전될 것을 두려워하는 당시의 미국 남부인 중 한 명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인종에 대한 편견은 <파수꾼> 작품 중에 나오는 <흑사병>이라는 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흑사병>은 시대상의 변화를 생각했을 때 그 당시 남부 백인의 통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흑인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애티커스의 인종차별적 태도는 딜레마라고 할 수 없는 셈이다.

한편 왜 이렇게 많은 독자가 애티커스의 변화를 크게 체감한 것일까?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편견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편견(prejudice)이란 우리가 어떤 집단의 구성원을 단순히 그가 그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토대로 그에 대해 흔히 부정적 평가를 하는 것이다. 만일 한 개인이 어떤 사회집단이나 사회범주에 대하여 편견이 있으면, 그는 그 구성원을 단지 그가 그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징적으로 평가한다. 애티커스는 흑인 청년을 그가 속한 흑인이라는 집단의 특징을 따서 그를 유죄라고 먼저 판단했다. 스카웃은 행크가 일반적인 남부 백인이라는 집단의 특징을 일반화하여 그가 참석한 집회의 성질을 파악했다. 또한 많은 독자도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가 친절하고 관용적인 백인 신사라는 집단에 속해있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인종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렇듯 편견의 힘은 너무나 강하여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편견이란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종류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편견은 집단의 특징을 개인에게 일반화하는 것이므로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하든 간에 그대로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애티커스의 편견에 대해 논했으므로 이제 스카웃의 편견을 알아보겠다. 작품에 나타난 스카웃의 편견은 주로 인종적이기보다는 계급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특히 어린 시절 유얼 가문의 일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백인 쓰레기 계층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품고 있다. 이에 반대급부로 그녀는 자신이 속한 백인 중산층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 첨단에 가장 이상적인 애티커스의 표상이 있다. 즉, 그녀는 백인 사회 내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을 나누고 각각의 집단을 일반화하여 개개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은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스카웃이 유얼 가문을 설명하며 드러났고, <파수꾼>에서도 그렇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스카웃의 편견에 대해 부연하자면, 그녀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던 과도한 환상 또한 편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에게 아버지는 백인 쓰레기 계층에 대비되는 위대한 인격자였다. 거기에 칼 융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로도 그녀의 환상을 설명할 수 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란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애착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그것은 프로이트의 오디세우스 콤플렉스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남근기(3~5세)에 일어난다. 이러한 경향성에 의해 스카웃은 아버지에게 과도한 이상성을 보았고, 이로 인해 스카웃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애티커스의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작가인 하퍼 리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파수꾼>이 더 현실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퍼 리 역시 스카웃처럼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인종차별적 면모를 발견하고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토대로 쓴 <파수꾼>은 편집자에 의해서 잘 팔리지 못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하퍼 리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아버지를 그려서 어린 시절의 단순한 시선으로 뭉뚱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그녀는 더 현실에 가까운 아버지를 어떻게 해서든 변호해주려고 <파수꾼>을 평생에 걸쳐 고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인종차별주의자 아버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파수꾼>의 마지막에서 꺼내든 가족의 사랑은 변호할 이유로 매우 부족했다.

이토록 작가 또는 화자의 편견이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단지 화자를 어린이로 설정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수많은 독자에게 애티커스를 속일 수 있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창작물에서의 편견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현실의 편견은 더욱더 심할 것이다. 고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편견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편견으로 인해 불가능한 일이며, <파수꾼> 마지막의 스카웃과 같이 인생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편견이 깨어지더라도 그다음에 다시 형성되는 편견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예시로 내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와 친했던 한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몇몇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친구였다. 그중에서는 나도 잘 모르는 학생이 있어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놓았다. 그 학생도 친해져 보니 말이 잘 통하는 좋은 친구였다. 따라서 나는 편견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편견으로 인해 쉽게 믿지 못했다. 나의 끈질긴 노력과 충분한 시간이 흘러 서로 어느 정도의 관계를 쌓았으며 어느새 다 같이 놀러 다니는 일이 많게 되었지만, 편견으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린 점이 아쉬웠다.

결론적으로 편견은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림막이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설령 인간의 본질을 모르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편견의 영향을 최소로 줄이고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면서도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고로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면 인종과 다른 집단과 관계없이 허물없는 훌륭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권영미. '파수꾼' 번역자가 말하는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변호사, 변절 아니다". 뉴스1, 2015년 8월 16일자.

이하령. "인종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2007.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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