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작가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면서,또 다른 힘든 삶을 살면서도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던 사람에게 이야기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싶어 썼던 소설이라고 한다. 물론 그 사람이 보려면 이 소설은 상을 받고 책으로 팔려야 했고 작가는 후에 이를 바보 같은 일이라고 여기며 계속 자포자기의 삶을 살다가 슬슬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 즈음 상을 받고 유명해진 소설이다.
이야기는 판타지적인 소재로 하여금 자살을 결심한 한 소녀를 시간을 되돌려 그것을 막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또한 소녀의 삶을 공감했다. 그는 소녀보다 먼저 죽음을 선택했으니까. 이미 사실상의 자살을 선택한 이가 자살을 결심한 이를 살리겠다는 모순을 포함하여 자살하는 사람을 막는 행위에 대한 가치에 대해 소설을 계속 되묻는다. 실제로 자살을 충동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근저에는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 배경이 된다. 자살을 막는다고 그 환경이 바뀔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주인공 또한 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선한 이기심으로 계속해서 자살을 막고 위로의 말이나 해결책 대신에 그녀와 다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이유 없이 자살을 막고 자신을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는 소녀는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고, 자살이 무서워지고, 자살을 단념하게 된다. 그 후 소설 마지막에 많은 반전이 있었다. 정리하자면 그냥 해피엔딩.
자살기도한 사람을 살리는 의사 또한 주인공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정말 이 사람을 위한 것인지. 소설 전반부 내내 주인공은 이를 자신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최선으로 소녀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곤 한다. 단순하게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정도. 사실 이것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매우 미약한 의미임은 소설 내에서 그럼에도 20번이나 자살하는 소녀에게 드러난다. 결국, 소설의 설정 힘으로 미약한 의미는 계속 누적되어 자살을 단념시킨다. 사랑하지만 힘든 시간을 겪는 사람에게 단 한 번의 해결책이나 단 한 번의 위로로 그 사람을 구해줄 수 없다는 점, 정도가 아닌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또한, 말보단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인공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은 딱히 상대방의 생각에 대한 평가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차피 같은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해결책들은 당사자도 이미 다 생각해봤을 테니까. 다만 죽지 않았으면 한다고 자신의 이기적인 바람을 드러내고 소녀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 같이 시간을 보낸다.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너무 많은 조언이나 공감보다는 밥이라도 사주면서 다른 주제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심리학적으로도 스트레스를 유발한 장소나 주제에 대해서는 일단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적 해결책이라고도 하니까. 전반적으로 자살, 즉 죽음과 사랑이라는 상충하는 이미지의 소재로 긴장감 있고 순수한 주인공들과 마지막에 기분 좋은 마무리까지, 자살을 소재로 했지만 힐링 가능한 소설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