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by what...?

dobby_is_free·2020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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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것들

세상에 회사는 많고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굉장히 멀쩡하게 회사 동료를 부르는 회사에도 있었지만 정말 이상하게 회사 동료를 부르는 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겠지?

회사 동료를 부르는 방법이 생각보다 많은 것은 아닐 듯한데 우선 덜 자극적인 것들부터 시작해보자.

Case 1 - 직급

이 나라의 80% 이상의 회사가 이걸 쓴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 아니 수천번쯤 들어봤을 그 직급의 테크트리다.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몇 안되는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원인터내셔널도 주인공들을 직급으로 부른다. 조선왕조 임금님 이름 외우듯이 한번 짚고 넘어가보면...

사원 - (주임)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 (???)

??? 이후부터는 아마 회사 나름일텐데 저 앞의 6개는 직급 체계를 사용하는 회사라면 거의 99.99% 똑같다. 1 + 1 = 2처럼 만고불변의 진리라도 되는 양 말이다.

자 이제 저 체계에서 당신을 어떻게 부를지 써보자.

  • XXX 사원
  • XXX 주임
  • XXX 대리
  • XXX 과장
  • XXX 차장
  • XXX 부장
  • ...

정말 멋대가리 하나도 없다.

누가 당신을 XXX 대리~ 이렇게 부르면 여기서 뭘 알 수 있을까. 당신이 대리라는 사실? 그거 알아서 어디다가 써먹겠는가. 아무짝에 쓸모없다. 어차피 다 똑같이 대리를 무조건 6년차에 다는 것도 아니고 빠르게 승진하면 빠르게 달 수 있고 재수없으면 퇴사할 때까지 못 달수도 있는거지. 그러니 이것만 갖고는 사회에서 얼마나 세상의 찌든 때에 물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당신이 하는 일? 대리가 뭘 하는지는 세상에 대리라는 직급을 단 사람의 수 만큼 많다. 애초에 뭔 일을 하는지 나타내려고 만든 표현 자체가 아니니까. 물론 이런건 알 수 있다.
아마 과장 밑에서 가끔 잔소리 듣고 잔소리는 자기 아래 사원들한테 푸는데 뭔가 중간에 끼어서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

당신의 이름? 이건 뭐 어떻게 부르던 알 수 있다. 사람 부르는데 설마 이름은 부르겠지... 물론 사장이나 회장같이 직급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회사 내에서 고유한 존재인 사람들은 좀 다르다. 어차피 이름 부르거나 말거나 딱 한 사람만 지칭이 가능하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직급 앞에 이름 붙여서 부르는걸 극도로 혐오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 부르면 닳기라도 하냐?

솔직히 쓰자면 저 직급이 가장 유효할 때는 다른 회사와 커뮤니케이션 할 일이 있을 때다. 대충 상대편 회사도 저런 쓸데없는 직급을 사용한다는 것이 확실하면 그쪽에 예의를 갖추는 용도로는 그만이다.
(-) * (-) = (+)같은 그런 느낌.

Case 2 - 선생님

이 호칭은 굉장히 업계 종속적이다. 당연히 개발자는 아니고 학교나 학원 등 교육업계에서만 쓰인다. 그럼에도 소개할 이유는 충분하니 일단 끝까지 들어보자.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꽤 소수인 편에 속한다.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
  • 학원에서 학생들(고등학생 이하일 수도, 성인일 수도)을 가르치는 사람들

거의 이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이 호칭을 획득할 자격이 사회적으로 주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후자에 속했는데, 개발자로 일하던 초창기와 그 이전에 학원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몇 년 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확실히 이 호칭은 Case 1의 무미건조한 호칭보다 훨씬 낫다.

누가 당신을 (아마 동료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학생이겠지?) XXX 선생님~ 이렇게 부르면 일단 알 수 있는게 훨씬 많다. 우선 당신이 위 두 가지 종류 중 적어도 하나에 속한다는 사실, 즉 사회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전자냐 후자냐에 따라서 사회적인 인식의 긍정적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게 어떤 일이 되었든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직업이 아닌 이상 모든 직업은 공평하고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 틀에 박힌 사회적 인식만 갖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넌 ???니까 당연히 ??? 해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100%다. 저 ???에 그 어떤 좋은 말이 들어가도 그 사람의 사고가 틀에 박혀있다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슬픈 사실 하나.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틀에 박혀있다고는 대부분 생각하지 못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동료들끼리 아무 접두사나 접미사 없이 서로 이 호칭으로 부른다면 최소한 그 안에서는 큰 위계질서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다. 물론 일부 학교들처럼 부장선생님 같은 호칭이 있는 경우는 당연히 예외이고, 저런 형태는 아닐지라도 뭔가 다른것으로 위 아래를 나누는 학원들도 마찬가지로 예외다. 다만 그렇지 않다면 서로를 똑같이 부르는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똑같이 존중해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그 존중이 그 집단과 외부 사이에서도 적용될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방심은 금물.

어쨌든 평범한 직급보다는 장점이 꽤 있는 호칭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당신과 동료들 사이에 어떤 역학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Case 3 - 선배님...?

지금까지 들었던 세상의 모든 회사 내 호칭중에 최고의 쓰레기다.

너무 쓰레기라서 차라리 방사성 폐기물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무려 이걸 썼던 회사에서 일을 했었는데(지금은 안 쓴다. 천만다행...), 처음 입사했을 때 직원 교육을 할 때다. 으레 하는 교육이고 별 영양가 없는 의식인건 알지만 그래도 새 회사에 왔으니 챙겨갈 것은 챙겨가야지 하는 긍정긍정한 마음으로 듣고 있을 때...

우리 회사는 자기보다 먼저 입사한 사람들에게 모두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어요. 늦게 입사한 사람들은 후배님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What the hell...

아니 회사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 선배 후배가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예의는 갖춘다고 꼬박꼬박 은 붙인다. 그게 중요한 것이 하나도 아니라는건 아마 이 규칙을 만든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선배라는 표현은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에게 쓴다. 학교에서야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덕행이나 나이가 많다고 보장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정해진 교육과정 상에서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단순히 회사에 먼저 입사했다는 사실이 저것들 중 단 하나라도 보장해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진지하게 자신이 꼰대인지 돌이켜보자.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보고 들은 것들

당연히 내가 직접 경험한게 전부일리는 없으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도 한번 써본다.

Case 1 - 프로

이것도 요즘 생각보다 쓰는 곳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일단 국내에서 쓰는 회사들이 일부 있고, 여기저기서 듣기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당신은 당연히 프로페셔널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야 한다.

아마 외부에는 우리 회사 직원은 다 프로페셔널 해! 전문가들이야! 라고 강조하고, 내부적으로는 다들 전문가 의식을 갖고 일하고 그렇게 되도록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저런 호칭을 정했을 것이 99%다.(실제로 그랬다고 어디서 듣기도 했고)

다 좋다 다 좋아.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점 이다. 애초에 저런거로 저런 의식을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은 해 본걸까?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 자리를 만드는 데는 호칭도 한 몫 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호칭을 붙인다고 없던 프로페셔널함 이 샘솟아서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할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본인은 아마 오래 지나지 않아 이 호칭도 그냥 이름 부르지는 못하겠으니 마지못해 붙이는 그럼 접미사같은 단어로 전락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Case 2 - 엔지니어 or 아키텍트

이 호칭 또한 업계 종속적인 표현이다. 주로 공돌이들이 갈려나가는 곳에서 쓰이는데, 특히 아키텍트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컴퓨터와 관련된 것들 한정)를 다루는 곳에서 특히 많이 쓰인다. 이외의 곳들에서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쓰고 있을수도 있지 뭐. 엔지니어라는 호칭은 많이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호칭도 위에서 이미 다룬 선생님 처럼 장점들이 있는데, 일단 들었을 때 이 사람이 뭘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공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 호칭에는 단순히 이 직업을 오래 가져서 얻는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해봤자 리드(lead) 정도? 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그 대신 아래에서 다시 쓰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접두사가 붙는 경우가 훨씬 많다. 리드라는 표현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이나 특정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경우에 붙는 것이지 단순히 오래 있었다고 붙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보면

IT 업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이고, 일하기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는 구글을 보자. 6월 13일 기준으로 서울의 Engineering & Technology 직군에 5개의 채용 공고가 있는데,

  • Customer Engineering Manager
  • Customer Engineer (Security, Google Cloud Customers)
  • Datacenter Technician
  • Software Engineer
  • Strategic Negotiator

이렇게 5개다. 얼마나 명료하고 좋은가. 이름 보면 이 사람이 뭐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으레 얻어가는 진부한 표현도 없으니.

엔딩 크레딧

이제 잠깐 숨을 돌려보도록 하자.

지난 겨울에 가장 많이 본 영화는 겨울왕국 2다. 오랜만에 영화관 가서 많이 볼 정도로 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냥 끌려서 꽤 많이 봤다. 한 5번 봤나...

아무튼, 내용과 노래 못지않게 그때 인상깊게 봤던 부분은 엔딩 크레딧인데,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바로...

Caffeination
Carlos Benavide
Jared Devitt

...!!

쉽게 상상할 수 있는가? 영화 세트장(겨울왕국 2는 애니메이션이니 애니메이션 작업장이겠지만 뭐 어쨌든)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커피 만들어주는 사람도 엔딩 크레딧에 올라온다. 그것도 당당하게, 자기가 하는 일과 함께. 영국 인디펜던트 온라인 판 기사

추가하자면, 이 분들은 겨울왕국 2의 엔딩 크레딧에만 올라온 것은 아니다. Carlos Benavide라는 분은 심지어 IMDB 페이지도 있다!

이 사람들도 그저 그런 호칭으로 불렸으면 어떨까. 난 오히려 그게 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저 분들도 자기가 하는 일 열심히 하고, 했던 일과 함께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있으면 기분이 훨씬 좋지 않을까?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요

이 글을 시작하면서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다. 나에게도, 내 주변에서 이런 저런 호칭들을 달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도.

호칭 하나에 뭘 이렇게 불만이 많으냐고 할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일만 잘 하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해도 딱히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신 많이 유명한 시의 한 구절만 읽어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내용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한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에도 동의할 것이다.

한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가 부르는 사람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결정한다.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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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안 하고 싶은 개발자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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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7일

관찰력이 대단하시네요.. caffeination 부분을 보고 되게 놀랐습니다. 역시 디즈니인가 싶기도 하고.
저도 우리나라의 호칭문화 같은 것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아도 이런 부분에 대해 딱히 생각해보진 않았는데..ㅎㅎ
잘 봤습니다~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