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M] 어쩌다 시작한 프로그래밍

luna·2021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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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t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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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표현은 다소 식상하다. 지금 당장 구글링을 하면 아마 검색 결과가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포스트 제목을 '어쩌다 시작한 프로그래밍'으로 한 것에는 큰 이유가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생각도 못했던 것을 어쩌다 보니까 시작해버렸기 때문이다.



웹과 앱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개발이란 단어는 나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서를 즐기는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사춘기 내내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면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니 이공계와 관련된 것들은 뭔지도 모르면서 마냥 멀게만 느껴질 수 밖에.

아는 게 없으니 '개발자'라고 하면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어두컴컴한 방에 앉아 글자만 가득한 화면을 보며 마구 타이핑을 하다가 엔터를 탁 내리치고 "오케이!"를 외치는 영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고는 했었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 탓인지 개발이라는 건 무언가 비상하게 타고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개발과는 개미의 뒷다리만큼도 접점이 없는 내 인생에 개발은 예기치 못하게 내리는 소나기 같았다. 웹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학원에 갔다가 우연하게 웹 개발 기초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어차피 개발자랑 협업을 하려면 기본정도는 배워두면 좋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첫 수업 시간을 잊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짓장 같은 상태로 텅 빈 html 파일에 h1 태그를 이용해서 '안녕하세요'라는 글자를 썼었다. html 파일이 무엇인지도, h1 태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일단 선생님의 말을 따라 쳤다. 그런데 그 파일을 열었더니 인터넷 창에 '안녕하세요'가 대문짝만 하게 떠 있었다. 그 화면은 나에게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내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들락거리는 인터넷 사이트들의 민낯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얻어걸리는 듯한 시작이었지만 내 인생에 몇 없는 짜릿한 순간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수업을 듣기 시작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화면을 css로 구상하기도 했었다. 마치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들이 거리에 보이는 모든 간판을 읽는 것처럼 굴었다.

시간이 흘러 자바스크립트를 처음 배우는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까무러치는 기분이었다. html을 처음 배웠을 때는 너무 흥미로웠고, css를 처음 배웠을 때는 엄청나게 즐거웠다. 그런데 자바스크립트는 조금 달랐다. 마치 내가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놓았지만 비어있는 채로 있던 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그쯤 되니 지금껏 프로그래밍은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매달리는 경향이 있었다. 벌게진 눈으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매달리고는 하는 탓에 부모님도 두손을 다 드셨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는 다음 날의 컨디션을 위해 내가 나 스스로를 달래서 재우느라 한참 고생을 해야했다. 내일은 또 어떤 것을 배우게 될지, 내일의 나는 또 얼마나 발전할지가 매일 밤의 두근거림이었다.

그러니 언제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나에게는 개발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좀 불가항력 같은 결정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개발 공부를 시작했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어쩌다 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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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y!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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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

ㅎㅎ 화이팅 입니다!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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