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돈이란 무엇인가

배바·1일 전

디지털시대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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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돈이란 무엇인가 — 세 가지 답

천 년의 논쟁

“돈이란 무엇인가?”

너무 당연한 질문 같다. 우리는 매일 돈을 사용하고, 벌고, 잃는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이 질문에 답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돈은 종이 한 장인가? 그렇다면 왜 그 종이 한 장에 “1만 원”이라고 쓰면 빵 두 개를 살 수 있고, “100원”이라고 쓰면 불가능한가? 돈은 금속인가?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신용카드 결제는 어떤 금속도 오가지 않는다. 돈은 컴퓨터 화면의 숫자인가? 그 숫자는 무엇 때문에 “가치”를 갖는가?

이 질문은 사실 매우 오래된 것이다. 인류는 화폐가 존재해 온 수천 년 동안 이 질문을 두고 다투어 왔다. 그 다툼 속에서 크게 세 가지 답이 형성되었다. 이 세 가지 답은 단순한 학설사의 골동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늘날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CBDC를 둘러싼 논쟁의 뿌리에 그대로 살아 있다.

이번 장에서는 그 세 가지 답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리고 이 답들이 어떻게 부딪치고 서로를 보완해 왔는지, 그리고 왜 그 어느 하나의 답만으로는 오늘날의 화폐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답 — 돈은 상품이다

가장 직관적인 답은 이것이다. 돈은 본래 가치 있는 물건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교환의 매개체”로 사용하기로 약속했을 뿐이라는 답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화폐는 다음과 같이 탄생했다. 먼 옛날 인류는 물물교환을 통해 살았다. 그러나 물물교환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내가 신발을 만들고 빵이 필요한데, 빵 가게 주인이 마침 신발이 필요하지 않다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는 이를 “필요의 이중적 일치” 문제라고 부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점차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어떤 상품”을 매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곡식, 가축, 소금, 그리고 마침내 금과 은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화폐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상품화폐론”이라고 부른다. 18세기 영국의 애덤 스미스부터 19세기 독일의 카를 마르크스까지, 그리고 오늘날의 일부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이 입장을 지지해 왔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돈은 본래 어떤 “내재 가치”를 가진 물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화폐론이 가장 분명하게 제도화된 형태가 “금본위제”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시키는 제도를 운영했다. 1파운드는 몇 그램의 금에 해당한다는 식이다. 누구든 영란은행에 1파운드 지폐를 가져가면 그에 상응하는 금으로 바꿔주었다. 종이는 종이일 뿐이지만, 그 종이가 “진짜 가치”인 금으로 언제든 교환된다는 약속이 있는 한, 사람들은 그 종이를 안심하고 받아들였다.

이 견해는 직관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결정적 문제가 있다. 인류학자들이 오래된 사회들을 연구한 결과, “물물교환에서 화폐로”라는 발전 단계가 실제로 어디서도 관찰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부채, 그 첫 5,000년에서 이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원시 사회”라고 부르는 곳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물물교환이 아니라, 정교한 부채 기록과 신용 거래의 시스템이었다. 즉 사람들은 처음부터 “내가 너에게 얼마를 빚지고 있다”는 형태로 거래를 해왔지, 물건과 물건을 직접 맞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1971년 이후 세계의 모든 주요 화폐는 더 이상 어떤 상품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1달러는 더 이상 어떤 양의 금으로도 교환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1달러를 “돈”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도대체 왜일까?

상품화폐론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두 번째 답이 등장한다.

두 번째 답 — 돈은 빚이다

두 번째 답은 처음 들으면 다소 충격적이다. 돈은 상품이 아니라 “빚”이라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우리가 1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있을 때, 그 지폐는 본래 “한국은행이 1만 원어치 가치를 보장한다”는 약속의 증서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지폐는 한국은행의 “부채”이다.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의 부채 항목에 그 1만 원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폐가 “돈”으로 통용되는 이유는, 한국은행의 약속을 사회 전체가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견해를 “신용화폐론”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H. D. 매클라우드(1889), A. 미첼 이니스(1913), 그리고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이 입장을 발전시켜왔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돈은 어떤 물질이 아니라 사회적 신용 관계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진 빚의 증서가, 사회 전체에서 통용되는 결제 수단이 될 때, 그것이 곧 화폐다.

이 견해는 처음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경험과 잘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은행에 100만 원을 입금하면, 우리는 “내 통장에 100만 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100만 원은 어디에 있는가? 은행 금고에 우리 이름이 적힌 봉투가 따로 있어서 여기에 보관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단지 은행의 컴퓨터 시스템에 “이 사람에게 100만 원을 빚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즉 우리의 예금 100만 원은 본질적으로 “은행이 우리에게 진 빚”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돈의 90% 이상은 한국은행 등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가 아니라, 민간은행이 “대출”이라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내는 돈이다. 영란은행은 2014년 현대 경제에서의 화폐 창조라는 보고서에서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은행이 누군가에게 1억 원을 대출하면, 그 1억 원은 어디서 오는가? 다른 예금자의 돈을 끌어다 빌려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은행은 단지 자신의 컴퓨터 시스템에 “이 사람에게 1억 원을 빌려주었다”는 기록을 만들고, 동시에 “이 사람의 예금 계좌에 1억 원을 입금했다”는 기록을 만든다. 그 1억 원은 그 순간에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시대의 돈의 본질이 분명해진다. 돈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 있는 거대한 부채와 신용의 그물망이다. 그리고 그 그물망의 작동을 지탱하는 것은 “이 신용은 믿을 만하다”는 사회적 합의이다.

그러나 신용화폐론에도 한 가지 결정적 질문이 남는다. 모든 돈이 누군가의 부채라면, 부채의 사슬은 어디서 끝나는가? 누군가의 빚은 다른 누군가의 빚으로 청산되어야 한다. 은행이 빌려준 돈은 다른 은행으로 송금되고, 은행 간 거래는 한국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청산된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부채는 누구의 부채로 청산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 번째 답이 필요해진다.

세 번째 답 — 돈은 국가의 약속이다

세 번째 답은 이렇다. 돈의 위계의 정점에는 “국가”가 있다는 답이다.

이 견해는 흔히 “주권화폐론”이라고 불린다. 이론의 정초자는 20세기 초 독일 경제학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크나프이다. 그는 1905년에 출판한 국가화폐론에서 “화폐는 법의 피조물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이렇다. 어떤 종잇조각이 “돈”이 되는 결정적 이유는 그것이 금으로 교환되어서도 아니고, 본질적 가치가 있어서도 아니다. 국가가 “이 종잇조각을 세금 납부 수단으로 받아주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 들으면 다소 우회적인 논리 같다. 그러나 이 논리가 강력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세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세금을 내려면 국가가 “이것이 세금이다”라고 인정하는 화폐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 화폐에 대한 수요는 사회 전체에 보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화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받아들이는 한 그것은 거래의 매개체로도 기능한다. 이렇게 해서 돈은 “국가의 약속”이 된다.

케인스는 화폐론에서 이 견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오늘날 모든 문명화된 화폐는 의심의 여지 없이 국가화폐적이다(chartalist)”라고 선언했다. 신용화폐론을 옹호한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가 주권화폐론도 동시에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신용화폐론과 주권화폐론이 양자택일의 대립이 아니라, 화폐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보완적 시각임을 시사한다.

주권화폐론은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되었다. “현대화폐이론(MMT)”이 그것이다. 미국의 워런 모슬러, L. 랜덜 레이, 스테파니 켈튼 등이 발전시킨 이 학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국 통화를 발행하는 주권 국가는, 그 통화로 표시된 부채에 대해 결코 부도 상태에 빠질 수 없다. 필요하면 새로운 자국 통화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지출은 세금 징수에 선행하며, 세금은 정부 지출의 “재원”이 아니라 화폐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 제약은 “부도”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일 뿐이다.

MMT는 미국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5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 지출을 단행할 때, 이를 “MMT의 사실상의 실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그 후의 인플레이션을 보며 “MMT의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이 논쟁의 옳고 그름을 떠나, MMT의 등장은 “돈은 국가의 약속이다”라는 주권화폐론적 시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주권화폐론은 모든 답을 제공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주권화폐론도 결정적 한계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화폐가 다른 국가에서 통용되거나 장기간 신뢰를 유지한 사례는 드물었다. 강력한 제국이 흥하면 그 화폐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만, 제국이 쇠하면 그 화폐도 사라진다. 또한 신흥국의 통화 주권은 기축통화국(현재의 미국)의 통화 주권과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 정부가 “원화로 표시된 부채에 대해 디폴트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미국 정부가 “달러로 표시된 부채에 대해 디폴트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세 답의 만남 — 자본주의 화폐의 진실

이렇게 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돈에 대한 세 가지 답 — 상품화폐론, 신용화폐론, 주권화폐론 — 은 어느 하나가 옳고 다른 것이 그른 것이 아니다. 세 답은 모두 화폐의 어떤 진실의 한 측면을 포착하고 있으며, 현실의 자본주의 화폐는 그 세 측면이 결합된 복합체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에서 유통되는 돈을 생각해 보자.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와 동전이 있다. 이것은 분명히 “국가의 약속”이다. 주권화폐론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돈의 대부분은 민간은행 예금이며, 이것은 은행이 대출을 통해 창출한 “부채로서의 화폐”이다. 신용화폐론의 영역이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통화 가치를 일정 수준에서 안정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우리는 그렇게 안정된 통화로 가격을 비교하고 거래한다. 이 안정성에 대한 추구는 상품화폐론적 직관의 흔적이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되는가? 그 답은 18세기 런던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1694년에 설립된 영란은행이다. 민간 회사로 출발한 이 은행이 어떻게 신용화폐와 주권화폐, 그리고 상품화폐론적 안정성까지 한 몸에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빚어냈는지 — 그 이야기는 다음 장의 몫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바로 그 1694년의 런던으로 가, 근대 화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직접 보게 될 것이다.

다만 미리 한 가지만 일러두자. 영란은행이 만들어낸 그 모델은 천재적이었지만 동시에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 한계가 지난 1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폭발했고,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부동산 거품과 금융위기, 그리고 비트코인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영란은행 모델은 자본주의의 위대한 발명품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자본주의 화폐가 안은 모순의 근원이기도 하다.

또한, 한 가지 더 짚어두고 싶은 시각이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빌헬름 게를로프는 20세기 전반~중반에 발표한 『화폐, 계급, 사회』(독일어 원제 Geld und Gesellschaft)라는 저작에서, 화폐를 단지 “경제적 도구”가 아니라 “사회 계급 구조의 표현”으로 보는 시각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누가 화폐를 발행하고, 누가 그것을 통제하며, 누가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가는 그 사회의 권력 구조 자체를 반영한다. 이 시각은 우리가 다음 장에서 화폐사를 따라가는 동안 거듭 만나게 될 통찰이다. 19세기 미국 잭슨 대통령이 중앙은행을 폐지하려 했을 때, 그가 진정으로 다투었던 것은 “화폐를 누가 발행하는가”라는 질문 뒤에 있는 “미국 사회의 권력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였다. 2008년 위기 이후 “99% 운동”이 분노한 것도 단지 금융회사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화폐 시스템이 누구의 이익에 따라 작동하는가라는 문제였다. 그리고 21세기 비트코인 운동이 제기한 질문도 결국 같은 것이다. “우리 시대의 화폐 권력이 어디에,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화폐는 민간 부채와 국가 부채의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급격한 성장을 뒷받침한 강력한 엔진으로 작용했지만, 부채라는 특성 때문에 계속 위기상황을 겪어왔으며, 화폐 권력의 우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양면성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여정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자, 그럼 1694년 런던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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