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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대학교 스토리텔링 강의 시간에 아래 질문을 받고 표현하는 과제를 받았다.
'나의 삶을 어떤 대상에 비유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표현해도 상관없었다. 별 일이 없었다면 가장 자신 있는 '영상'으로 제작했을 것이다. 한창 영상 편집 툴인 프리미어 프로와 영상 특수 효과 툴인 애프터 이펙트를 달고 살았을 때였다. 그런데 해당 학기 때 애니메이션 강의를 들으며 팬 타블렛인 와콤을 샀기때문에 갑자기 뽕을 뽑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만화로 나를 표현하기로 결정했다.
질문은 하나, 표현 방식은 자유. 그러나 나는 표현 방식은 그리 쉽게 정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나로 정의내리기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CSI를 열심히 보면서 법의학자를 꿈꿨지만 플룻 연주를 좋아하는 바람에 예술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꿈을 잊지 못해 과학고를 꿈꿨지만 성적이 안돼 어쩌다 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법의학자는 의학대학교를 졸업해야 자격이 주어졌는데,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비해 내 머리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나마 자동차에 관심이 생겨 공과대학을 꿈꿨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합격하여 대학 문을 두드리게 된 곳은 물리학과였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갈수록 더욱 내가 신기하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프론트엔드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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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과거로 돌아가자면, 어렸을 적 했던 유일한 RPG 게임이 있다. 중학생쯤 언제 한 번 사촌끼리 그 게임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의 게임 캐릭터를 보는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내 캐릭터를 자랑할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사촌들은 내 캐릭터와 직업을 보고는 능력치를 잘못 찍었다며 핀잔을 줬다. 캐릭터를 지우고 새로 파야할 정도라고 했다. 민첩 높은 마법사가 어때서... 부끄러운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른 로그아웃해버렸다.
마치 그 때의 그 캐릭터가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직업도 없는 대학생이니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냥 그때 그때 올리고 싶은 능력치만을 바라보고 성장하여, 결국엔 전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어중간한 모험가 꼴이었다. 그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쫓으며 따라왔으나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곧게 뻗은 발자국이 아니라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가 남긴 그것처럼, 초파리의 움직임처럼 줏대없고 무질서한 행보를 걸어왔다.
게임이었다면 홧김에 캐릭터를 새로 파버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그러면 큰일난다) 기왕 생성된 나, 찍은 능력치를 롤백할 수 없으니 게임 오버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키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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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고등학교 때 2년 연속으로 동일한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과학 에세이 대회였다. 첫 번째 대회 중 면접에서 교수님께 무엇이 부족한지 여쭤보았다. 구성은 탄탄하지만 단조롭다는 의견을 받았고, 과학 이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었다.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한 결과 두 번째 대회에서 한 단계 높은 상을 받았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 때만큼 행복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이후로도 초등학교, 중학교에 교육 봉사를 가서도, 후원 영상을 제작하여 모금에 성공했을 때에도, 어떠한 분야에서 올곧게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인정받을 때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때 다른 결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여 대중교통을 탈 일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버스를 타게 됐다. 창 밖에 지나치는 풍경이 흔하지만 익숙치 않아 감상하고 있던 와중 버스가 빨간 신호로 멈췄다. 눈 앞에는 가로수가 멈춰있었고 시선은 자연스레 기둥, 가지, 잎을 따라갔다. 솔직하게 지금은 그 잎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도 나무가 일궈낸 꽃이든 열매든 무언가가 피었으리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무를 보고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과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뿌리로 양분을 흡수한 것으로 바탕으로 가지를 뻗어나가 주변으로 영향력을 뻗어나가면서 마지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가치를 주는 열매를 맺는 것. 나무의 일생이 곧 나의 행복 사이클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나무의 운명을 거스르는 성향을 가졌다. 어느 분야든 한 곳에만 머무르지 못하고, 관심사가 수도 없이 바뀌며, 호기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 역마살에 낀 나무이지 않을까하고 상상하며 과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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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고민으로부터 얻은 결론이 꽤나 통찰력이 있었는지, 그 비유는 지금도 유효하다. 뿌리가 땅으로 깊게 파고들길 거부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것을 반복해 지금은 개발자가 되었다. 물론 언젠가 또다시 스스로 뿌리를 뽑아 떠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변에 뿌리가 튼튼한 다른 나무들과 내가 더 나은 점을 찾는다면, 나는 다른 분야의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말하고 싶다.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숲의 나무는 모래폭풍이 뒤덮으면 다른 지형이 되는 사막의 이야기가 궁금할 수 있고, 불규칙하게 굽이진 골짜기의 나무는 짠내 가득한 바다 앞의 이야기가 궁금할 수 있다.
나는 비록 역마살이 있지만 이야기꾼이 될 수 있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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