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몇가지 구역으로 나눈다면 어떤게 있을까? 인간은 저마다 각자의 시선과 생각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회고글의 한 가운데에 ‘나’를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나와 내게 영향을 미치는 주변의 무언가들, 이렇게 나눠보자. 내 의식과 자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엔 어떤게 있을까?
영향을 받지 않은 부분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건… 마치 무죄인 사람이 증거를 제출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내가 그런 부분을 발견하려면 메타인지의 신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그러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걸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 중에서도 변화한 것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보나마나 너무 많아서 이 글을 다 채우고도 남을거다.
그래서 난 작년과 다르게 올해에 어떤걸 했나?
작년에도 했던 일이지만 좀 더 특별해진 일도 있었다.
이제 하나씩 시작해보자.
이 셋을 하나의 소제목으로 묶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이란걸 해본 것 같고, 그 과정에서 가치관 몇가지가 변했고, 그래서 여행도 다녀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여행 가서 찍은 사진 몇개만 자랑해보겠다. ^~^
1달동안 호주에 다녀왔다. 2주는 휴가, 2주는 해외근무를 했고 다신 없을 소중한 기회였다. (실제로도 다신 없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에서 해외근무 최대 기간을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음식과 사람들의 여유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물리적인 ’내 영역‘의 범위가 좁지 않으면서도 강한 편인데 그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하면 바로 사과하고, 애초에 침범하지 않으려 하는 그런 사람들의 태도가 좋았다. 마트에서 카트 바로 옆을 지나가게 되면 Sorry 라고 말해준다니 말 그대로 문화충격이었다. 카페는 아침 7시에 열고, 오후 5시가 되면 닫는다. 어디든 길을 걷다보면 큰 나무와 처음 보는 새가 있는 공원과 마주친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시작했다.
귀국한 그 바로 다다음주에 홍콩과 마카오에 다녀왔다. 호주에서부터 느꼈던거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고 그걸 다름을 존중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건 썩 기분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도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완탕면과 이름 모를 얇은 면 최고!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서는 여기에 몇가지 적어도 될 것 같다.
가장 큰 건, 소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정도 소비를 해도 누가 잡아가거나 죽지 않는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년보다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다. 일도 하고 취미도 하고 그 둘 모두의 성격을 띄는 활동도 하다보면 하루가 정말 짧게 느껴진다.
일을 하면서 조급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급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 깨닫게 된다는걸 배웠기 때문이다. 개발자 10년만 할거 아니다. 앞으로 30년이고 40년이고 개발자로 일할테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혼자만의 조급함뿐만 아니라 협업에서의 조급함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올해 후반부터 조금씩 하고 있는 일이다. 사실 자의로 시작한 일은 아니다. 회사에서 주차장 이용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상해버린 나머지 재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을 하러 가서 차를 가만히 세워놓기만 하는데 돈을 낸다?! 가계부에 매월 20만원이 주차비
로 찍힌다?! 차라리 그 돈으로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해먹겠다 이 말이야. 재택이 가능한 회사에서 굳이 출근을 한 이유는 정말로 밥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냥 집에서 해먹기로 했다. (사실 돈과 시간 계산만 해보면 매월 20만원 내더라도 출근해서 밥 먹고오는게 맞다. 하지만 기분이 상해버려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걸 보면 돈과 시간만으로 채울 수 없는 가치라는게 또 존재하나보다.)
아무튼 그래서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챙겨먹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할만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기분이 좋은 일이라 신기했다. 소고기 무국에 소고기 왕창 넣어서 어른의 맛(?) 느껴보기, 취향껏 넣으란 말에 레몬즙 잔뜩 넣은 과카몰리 먹으며 행복해하기, 목살 구우면서 레몬즙 살짝 뿌려서 스스로 감탄하면서 먹기, 이런걸 했다. 아보카도는 호주에 가서 생전 처음 먹어본 식재료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서도 먹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서브웨이 아보카도는 쳐다도보지 않았는데, 아보카도 쉬림프가 최애 메뉴가 되었다.) 특히 아보카도 스팸 덮밥이 난이도 대비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내년에는 국물 요리를 좀 더 해봐야겠다.
운전은 결국 도로 위의 눈치싸움이란걸 느꼈다. 평소 눈치란걸 잘 못 보기도 하고 굳이 보려하지도 않는 편인데 운전을 할 때만큼은 다른 차들의 눈치를 빡세게 봐야 한다는 사실…. 이 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맥스랑 천년만년 살려면 일단 안전하게 다녀야 한다. 그렇다 내 차 이름은 맥스다. 이유는 그냥 이름 지으려고 차를 딱 쳐다보니 맥스
처럼 생겨서였다. 절대 악셀을 맥스로 밟는다
뭐 이런게 아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프로젝트. 늘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꽤 길게 유지하고 있다. 야근보다는 조근을 한다는 기획팀 동료분의 말을 듣고 더 열심히 하게 된 일이다. 확실히 조근을 하니 기분도 좋고 효율도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한 수치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본 뇌의 활성화 곡선에서도 일어나고 2-3시간 뒤가 뇌가 가장 활성화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늦은 밤에 노트북을 켜놓고 일하는 것보다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게 시간 절약을 위해 좋다는거다. 그리고 실제로 해 보니 나한테도 해당되는거였다. 대학생 때 새벽 2-3시까지 과제하는게 익숙해져서 새벽 시간은 코딩하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게 바뀐지 꽤 되었다. 별 일 없으면 알람 없이도 8시 전에 일어나는게 일상이 되었다.
사실 이 블로그 글을 계속 쓰는 원동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게 바로 글또다. 글또는 9기에 처음으로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얻고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올해 5월까지 참여했던 9기가 끝나고, 별 고민없이 10기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사실 점점 벌리는 일이 많아져서 좀 쉴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신청서 구글 폼을 작성하고 제출해버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만 백엔드 인프라 반상회에서 발표도 하고, 나도 모르게 그만 커피챗 일정도 잡아버렸다. 살면서 저절로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는건 좋은 일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벨로그 메인에 올라간 글이 생겼다. 감사하게도 벨로그 팔로워도 꽤 늘어났다.
글또 10기 백엔드 인프라 반상회에서 발표한 내용이 딱 이 내용이다. 업무와 커리어에 대해 바뀐 생각들. 이건 다른 포스팅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싶다. 스포일러를 조금 해보자면, 위에서 적었던 일을 하면서 조급함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에 대한 내용이다.
잃어버린 습관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대중교통 탈 때마다 할 일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책을 읽기로 했다. 가방에 책을 한 권씩 넣어다니기 시작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Psychology of the Money 라는 유우명한 경제 베스트셀러인데,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게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다른 경제 서적처럼 “재테크 기술” 몇가지를 알려주는게 아니라서 재밌게 읽고 있다.
지난 달부터 요가 강사과정 코스를 밟고 있다. 4월 중순까지 매주 토요일 10시-17시 수업을 듣고, 4월 20일에 시험을 치고 나면 자격증이 나온다. 이 자격증이 목표인건 아니다. 그저 요가 동작을 좀 더 디테일하게 배우고 싶어서 신청한 과정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많은걸 얻어가고 있다. 다만 이론 수업을 듣고 있으면 약간 유사과학 느낌이 나서 너무 빠지지는 않으려한다.
200시간이라는 수련 시간을 채워야 한다. 대충 계산해보니 1주일에 14시간씩 요가를 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 이게 될 진 모르겠지만 일단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 특히 아침 30분이라도 짧게 요가를 하고 나면 수족냉증이 좀 사라지는 느낌이라 시작하길 잘 했다고 느끼고 있다.
적고 보니 또 개발 이야기만 쏙 빼놓은 회고록이 되어버렸다. 다음 글에서는 진짜! 개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글을 너무 재미있게 쓰시네요 ㅎㅎㅎㅎ 25년에도 좋은 일들이 많으있으시길 바랍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