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 클리셰를 위대하게 만드는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안건우·2025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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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물에 한 스푼 얹혀진 변주의 위대함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왕도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웅들이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를 처치하러 떠난다는 익숙한 구조, 동료들과의 우정과 성장, 그리고 최종 보스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RPG 팬이라면 수십 번도 더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복잡한 세계관이나 설정이 아니다. 단 하나의 변주, '해마다 줄어가는 나이 저주'라는 컨셉 한 스푼이 전부다. 원펀맨이 전형적인 히어로물에 '주인공이 너무 세다'는 먼치킨적 요소를 극한으로 활용해 색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듯이, 33 원정대는 이 단순한 변주 하나로 왕도물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왕도물의 주인공들에게 세상을 지켜야 할 명확한 이유 따윈 없다. 그것은 고전적으로는 영웅적 숭고함으로 포장되었으며, 최근에는 그 클리셰를 비틀기 위해 이것저것 구차한 변주가 들어가지만 대부분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마다 자신의 수명이 가시화되어 줄어드는 나이 저주는 세상을 지키는 인물들에게 영웅적 숭고함 같은 막연한 무언가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인 생존 욕구를 기저에 깔아주었다.
그렇기에 단순한 심볼 하나를 투입한 변주만으로 평범한 왕도물이 필사적인 영웅들의 생존 서사가 된 것이다.

33이라는 심볼이 구현한 시스템

이러한 심볼은 스토리가 아닌 게임 시스템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월드 내에 일지와 화톳불의 형태로 흩어져 있는 이전 34~100 원정대들의 흔적. 이는 그동안 다른 스토리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던 '의지의 전승'이라는 클리셰다.
하지만 의지의 전승이라는 소재는 대부분 1차원적이며, 굉장히 임팩트 있는 주인공의 각성 서사로 소비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나루토의 나루토와 지라이야, 원피스의 쵸파와 히루루크가 그 예시일 것이다.
33 원정대의 의지의 전승에는 그런 임팩트가 없다. 화려한 각성도 없다.
그저 잔잔하게 등장인물들을, 그리고 플레이어를 옥죄어온다. 본인들 역시 저렇게 죽음의 흔적만 남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되어 그곳에 남는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구스타브의 죽음이후 32원정대를 언급하는 루네에 의해 구체화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떠나온 여정에서 동료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끝을 예정하고 32원정대의 여정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33이라는 숫자가 가진 힘이다. 단순히 "33번째"라는 서수가 아니다. 그 앞에 최소 66번의 실패가 쌓여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게임은 이를 숫자로 가시화된 원정대 시스템과 월드에 흩어진 흔적이라는 구체적이고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녹여냈다.
흔해빠진 소재 하나를, 시스템과 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세련된 형태로 만든 것이다.

BGM과 아트

사실 인문학적 교양이 적은 내게는 "비주얼이 이쁘고 아름다웠다"라는 감상 외에는 불가능하다. 벨 에포크가 어쩌고, 인상주의가 어쩌고 하는 분석은 다른 리뷰에 맡기겠다.
다만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33 원정대의 시각적 미장센은 너무나도 압도적이다.
엘든 링 이후로 게임 불감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세계에 반해버려, 시각적 아름다움이 일정 수준 이상이 아니면 게임의 시작조차 어려웠던 시기.
33원정대가... 또 다시 그 병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획기적인 전투 시스템 - 그러나 이것은 턴제가 아니다

이 또한 33 원정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세간에서는 33 원정대가 턴제 JRPG를 부활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본다. 33 원정대는 턴제의 탈을 쓴 리듬액션 전투에 가깝다.
전투는 정말 너무나도 재밌다.
턴제에 QTE 섞은 거 하나로 이렇게 재밌는 전투를 구현해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턴제로서의 전략적 재미는 많이 희석됐다.
이 게임에서 패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회피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긴 하지만 첫 트라이 때 보스 패턴 구경하는 수준에 그치며, 살벌한 몹들의 데미지 앞에서 패링을 안 하면 게임 진행이 불가능하다.
트라이 시간의 99%는 패링 타이밍을 익히는 데 소모된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패링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한번 타이밍만 익히면 그 뒤론 큰 문제가 안 된다.
후반부 적들은 대부분 매턴 우습게 6~7연타를 하는데, 매타마다 AP가 차오른다. 그래서 패링 타이밍만 익숙해지고 나면 준 무적 상태로 매턴 고급 스킬을 난사하는 개초딩스러운 전투를 할 수 있다.
즉, 이 게임의 전투는 "매 턴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전략"이 아니라 "완벽한 패링으로 최대한 빨리 끝내는 실행"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실수는 하기 마련이니까, 33 원정대의 전투는 최대한 실수를 줄이는 방향, 즉 최대한 딜링을 끌어올려서 빠르게 전투를 끝내는 것으로 수렴되게 되어있다.
힐은 그냥 실수했을 때 채워주는 정도다. 제작진도 이 부분을 인지했는지 자기 피를 1로 만들고 공격 능력을 늘리는 스킬들이 꽤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인 턴제 게임이라면 보스급 적들의 필살기로 사용되거나 굉장히 한정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스킬이지만, 33 원정대에선 그렇지 않다. 왜? 어차피 패링만 잘하면 피 관리는 의미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턴제가 주는 '매턴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전략적 재미'를 33 원정대에서 찾길 원했다면 그건 좀 힘들 수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강력한 조합을 구성하기 위한 덱빌딩의 재미는 확실한 편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통적인 턴제의 전투와 다를 뿐 정말 재미있다.

획기적인 전투 시스템의 이면 - 피로도라는 대가

하지만 전투가 너무나도 힘들다. 일반적인 액션 게임과 비교도 할 수 없게 피로도가 높다.
내가 중간에 빌드를 잘못 탔던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몹들은 매번 2턴씩 가져갈 정도로 속도가 빠른 데다가, 체력도 많아서 후반부에 엘리트 몹이랑 한번 싸우면 10~20분은 우습게 싸운다.
몹이 턴 한번 가져갈 때마다 패링을 적어도 2~3번, 많으면 6~7번씩까지 해야 한다.
엘든링 말레니아 2페이즈 분신 패턴이나 모르고트의 난무 패턴이 한 패턴 걸러 한번씩 나와야 따라갈 수 있는 키 입력량이다.
난이도 곡선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 거기다가 길찾기도 힘들어서 더더욱 피로도가 쌓인다.
그래서 갈수록 잡몹전은 피해갈 수밖에 없는데, 제작진도 이런 피로도 부분을 인지한 건지 잡몹 인카운터는 직접 가서 싸우지 않는 한 너무 쉽게 피해갈 수 있게 해서, 후반 가면 잡몹전은 애지간하면 안 하게 되고... 스펙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미친 듯한 악순환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비사주 2페이즈인 가면 지킴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필요한 패링 횟수만 늘린 게 아니라, 아군이 피격당할 때마다 실드를 얻고 주기적으로 힐을 해서 보스 공략에 필요한 조건을 다양화한 게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괴랄한 버프들이 중간 보스를 안 잡아서라는 건 엔딩까지 보고 알았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난이도 설계다. 패링 횟수나 가시성으로만 난이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공략 자체의 조건을 다양화하는 것. 그래서 만약 이 게임사가 후속작으로 이번 전투 시스템을 발전시킨다면, 다음에는 단순히 패링 횟수나 패링 가시성으로 난이도 만드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난이도를 형성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거대 보스의 영원한 딜레마

나는 개인적으로 거대보스를 좋아한다.
거대보스가 주는 스케일과 연출이 주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좋기 때문이다.
33원정대액손도 비쥬얼적, 연출적으로는 내 기대를 그 이상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액손이 시각적으로, 연출적으로 주는 황홀함이 너무나 강했기에 더더욱 액손을 소형화한 대상을 때리는 전투 방식은 아쉬웠다.
33 원정대의 가장 큰 장점이 명확하고 직관적인 전투 방식인데, 결국 난이도는 패링 타이밍의 가시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사주보다 2페 가면 지킴이가 훨씬 쉬웠다.
비사주가 오히려 패링 타이밍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초거대형 몹은 3D 게임에선 쉽게 넘을 수 없는 영원한 숙제인 건가 싶다.

스토리 - 변하지 않는 두 사람의 평행선

33 원정대가 여정을 펼친 세상은 죽은 베르소의 캔버스 속이었다는, 소위 말하는 '꿈' 엔딩의 형태다. 이것 때문에 원정대원과 세계 자체에게 몰입했던 사람들에게는 스토리 마무리가 아쉬웠던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게임이 일반적인 꿈 엔딩의 형태라고 보기엔 좀 힘들다. 일반적인 꿈 엔딩은 까놓고 말하면 대부분 작가의 도피와 편의주의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몰입해왔던 걸 "다 꿈이었어요~"로 대충 처리해버리는 것.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관련 떡밥을 게임 초중반부터 대놓고 뿌려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아, 페인트리스를 잡아야 본격적으로 스토리 떡밥이 풀리겠구나"라는 걸 자연스레 알 수밖에 없는 형태다.
다만 물론 그 구조로 인해 아쉬워진 부분이 있긴 하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게임 자체가 67개의 원정대에 강하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캔버스라는 설정이 세계관의 확장을 자연스럽게 닫아버렸다는 부분이다.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완벽하게 자아냈다는 부분에서 감탄스럽긴 하지만, 더욱 많은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팬들에게 아쉬운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팬들이 몰입했던 것과 게임을 끝내고도 알고 싶어 했던 이야기는 데상드르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원정대의 이야기니까.
물론 그래도 스토리 자체의 완성도는 내가 보기엔 좋다고 생각한다.

15분간의 고민 - 게임이 던진 질문

사실 개인적으로 난 엔딩 전까지 이 게임 스토리가 그렇게 인상 깊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베르소와 마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엔딩 고민하느라 15분은 넘게 고민했던 것 같은데, 이런 적은 내 게임 인생 중 처음이었다.
마엘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굉장히 치기 어리게 볼 수도 있는 캐릭터다.
특히 구스타브의 죽음 직후 그 면모가 좀 도드라지게 보인다. 그리고 페인트리스로서의 각성 이후에도 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목표는 일관되게 이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소는 이 세계를 끝내는 것이 목표였다.
즉, 플레이어는 처음부터 2가지 상반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했던 것이고, 그건 마지막에 가서야 가시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33 원정대캐릭터 아크를 다루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RPG라면 마엘은 여정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베르소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플레이어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중에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그 책임을 지거나, 아니면 답을 유저에게 온전히 맡기거나.
개인적으로 진격의 거인의 엔딩을 위대하게 평가하는 이유는 이런면 때문이다.
"증오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엘렌의 땅울림이라는 명확하고 극단적인 답을 제시했다. 작가는 도망치지 않았다.
33 원정대는 후자를 택했다. 마엘과 베르소 중 하나를 고르는 15분. 게임은 나를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세계를 유지할 것인가, 끝낼 것인가.
이 질문에 게임은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옳았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인터랙티브함을,가장 정직하게 활용하는 방법이었으니까.

결론 - 변주 하나로 완성된 종합예술

33 원정대는 내 인생 최고의 게임까지는 아니다.
다만 내가 해본 게임 중 어떤 게임이 가장 종합예술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33 원정대라고 말할 것 같다. 그만큼 33 원정대가 가지는 종합적인 예술 가치는 어마무시하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변주. '해마다 줄어가는 나이 저주'라는 심플한 아이디어 하나로, 이 게임은:

  • 왕도물을 생존 서사로 바꿨고
  • 숫자를 시스템으로 구현했고
  • 의지의 전승이라는 클리셰를 세련되게 재해석했고
  • 플레이어에게 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압도적인 비주얼, 전투 시스템, 그리고 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완성된 경험을 만들어냈다.
특히 마지막 뤼미에르에 돌아와서 과거 원정대를 소환해서 르누아르에게 돌진할 때 그 연출은 그때의 감동을 뛰어넘을 경험을 언제쯤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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