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유연수요 없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맞다.
그리고 그 유연수요의 핵심 카드 중 하나가 축열식 히트펌프다.
최근 태양광 발전이 순간적으로 전체 전력의 50%를 넘겼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다시 익숙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래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같이 갈 수 없다.”
“태양광이 늘어나면 원전은 결국 방해물이 된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라 전력망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문제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봄철 낮 시간대에 태양광이 많이 나오고, 전력수요는 낮고, 원전처럼 출력 조정이 쉽지 않은 전원이 같이 존재하면 계통 운영은 어려워진다. 이건 실제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공존 불가능하다”로 가는 건 너무 성급하다. 그 결론은 전력수요가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나 가능한 결론이다.
진짜 질문은 이거다.
낮에 남는 전기를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
2026년 5월 1일, 국내 태양광 발전량은 순간적으로 28.9GW를 기록했고, 같은 시각 전체 전력총수요는 57.7GW였다. 태양광 비중이 50.1%까지 올라간 것이다. 숫자만 보면 꽤 충격적이다.
단순 계산하면 이렇다.
총수요: 57.7GW
태양광: 28.9GW
태양광 외 전원이 담당해야 하는 수요: 28.8GW
여기서 원전, 석탄, LNG, 열병합, 수력 등 기존 전원이 모두 28.8GW 안에 들어와야 한다. 당연히 어렵다. 특히 원전은 LNG처럼 마음대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전원이 아니다.
그래서 “충돌한다”는 말은 절반은 맞다.
하지만 빠진 게 있다.
수요는 반드시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가?
낮 시간대에 ESS가 충전하고, 전기차가 충전하고, 산업용 부하가 이동하고, 축열식 히트펌프가 물과 축열조에 열을 저장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시각에 낮 전기를 흡수하는 유연수요가 10GW만 생긴다고 해보자.
기존 총수요: 57.7GW
추가 유연수요: 10GW
보정 후 총수요: 67.7GW
태양광: 28.9GW
태양광 비중: 42.7%
20GW가 생기면?
보정 후 총수요: 77.7GW
태양광: 28.9GW
태양광 비중: 37.2%
태양광 발전량은 그대로인데, 계통이 느끼는 압박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니까 핵심은 “태양광이 50%를 넘었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그 시간대에 움직일 수 있는 수요가 몇 GW 있느냐다.
물론 최종적으로 ESS와 양수발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낮에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저녁에 다시 전기로 꺼내야 하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몰 이후 태양광 출력이 빠질 때 생기는 램프 문제는 ESS와 양수발전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ESS와 양수발전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비용, 입지, 계통접속, 안전, 인허가 문제가 커진다.
전기를 다시 전기로 꺼내야 하는 경우에는 ESS가 맞다.
하지만 어차피 열로 쓸 에너지라면 굳이 배터리에 넣을 필요가 없다.
물에 저장하면 된다.
축열조에 저장하면 된다.
건물의 열용량에 저장하면 된다.
냉수나 얼음으로 저장해도 된다.
여기서 축열식 히트펌프가 등장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축열식 히트펌프는 단순히 히트펌프 기기 하나를 뜻하지 않는다.
낮에 남는 전기를 이용해 열을 만들고, 그 열을 물·축열조·바닥난방수·건물 열용량·냉수 등에 저장한 뒤, 저녁 피크 시간대 전력소비를 줄이는 수요측 저장장치라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ESS:
낮 전기 → 배터리에 저장 → 저녁에 전기로 방전
축열식 히트펌프:
낮 전기 → 열로 변환 → 물이나 축열조에 저장 → 저녁에 전기 사용 회피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역할이 다르다.
ESS와 양수발전은 전기를 다시 전기로 꺼내는 장치다.
축열식 히트펌프는 전기를 열수요로 흡수하는 장치다.
전력망 입장에서 보면 둘 다 낮의 순부하를 끌어올리고 저녁의 부담을 줄인다. 그래서 축열식 히트펌프는 일종의 수요측 ESS라고 볼 수 있다.
전기보일러도 전기를 열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히트펌프가 더 중요한 이유는 효율 때문이다.
전기보일러는 전기 1kWh로 열 1kWh를 만든다.
하지만 히트펌프는 외부의 열을 끌어오기 때문에 전기 1kWh로 대략 2.5~4kWh의 열을 만들 수 있다.
즉, 같은 전기를 써도 더 많은 열을 만든다.
낮에 태양광이 남을 때 히트펌프를 돌려 급탕탱크, 공동주택 축열조, 병원·호텔·목욕시설의 온수, 빌딩의 예냉·예열, 냉동창고의 예냉, 산업용 세척·건조·저온열 수요를 채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낮에는 남는 전기를 흡수하고,
저녁에는 기존에 써야 했던 전기나 가스를 줄인다.
이건 단순한 기기 보급이 아니다.
전력 부문과 열 부문을 연결하는 섹터커플링이다.
실제로 전력거래소는 2026년 봄철 태양광 연계 ESS 운영시간을 조정했다.
기존에는 06~15시에 충전하고 16~23시에 방전하는 방식이었지만, 봄철 운영방안에서는 10~16시 충전, 17~24시 방전으로 바뀌었다. 문제가 되는 시간이 언제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히트펌프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10~16시:
급탕탱크 충전
공동주택 축열
지역난방 축열조 충전
빌딩 예냉·예열
냉동창고 예냉
산업용 온수·세척·건조 열 생산
17~24시:
히트펌프 정지 또는 저출력
저장된 열 사용
저녁 전력피크 회피
또한 정부는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공식 인정하고, 2026년을 난방 전기화의 원년으로 삼아 히트펌프 보급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간담회에는 히트펌프 제조사뿐 아니라 축열조 제조사와 VPP 사업자도 참여했다.
이건 꽤 중요한 신호다.
히트펌프를 단순 난방기기로만 보는 게 아니라, 계통과 연결되는 유연수요 자원으로 볼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아무 문제 없이 공존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두면 충돌한다.
현재 수요 구조를 그대로 두고 태양광만 계속 늘리면 봄철 낮에는 출력제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전은 출력 조정이 제한적이고, 석탄과 LNG도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있다. 송전망 제약까지 겹치면 지역별 출력제어는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 없다”가 아니다.
정확한 말은 이거다.
유연수요 없이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같이 늘리면 충돌한다.
하지만 유연수요, ESS, 양수발전, 전기차 충전, 축열식 히트펌프, 지역 전력가격, 송전망 보강을 같이 가져가면 공존 가능성은 크게 올라간다.
지금 필요한 프레임은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가 아니다.
진짜 프레임은 이거다.
경직된 수요냐, 유연한 수요냐.
과거 전력 시스템은 수요가 생기면 발전기가 따라가는 구조였다. 전기가 부족하면 발전기를 더 돌리고, 전기가 남으면 발전기를 줄였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이 커지는 시대에는 이 방식만으로 부족하다. 이제는 발전기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수요도 움직여야 한다.
낮에 전기가 남으면 그 시간에 전기차를 충전하고, 물을 데우고, 건물을 미리 식히고, 산업용 열을 만들고, ESS를 충전해야 한다. 저녁에는 그만큼 전력소비를 줄여야 한다.
이걸 못 하면 재생에너지는 계통을 흔드는 문제처럼 보인다.
이걸 할 수 있으면 재생에너지는 낮은 한계비용의 대량 무탄소 전원이 된다.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ESS는 모두가 이야기한다.
양수발전도 모두가 이야기한다.
송전망도 모두가 이야기한다.
그런데 축열식 히트펌프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를 다시 전기로 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력망을 전기만의 세계로 보면 히트펌프는 저장장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에너지 소비는 전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난방, 급탕, 냉방, 건조, 세척, 저온공정, 지역난방 같은 열수요가 있다.
낮에 태양광을 버리고, 저녁에 가스를 태워 물을 데우는 건 비효율적이다. 낮에 남는 전기로 히트펌프를 돌려 열을 저장하고, 저녁에 그 열을 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그래서 축열식 히트펌프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보조 기술이 아니라,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같이 가기 위해 필요한 완충장치에 가깝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은 틀렸다.
정확히는, 유연수요 없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맞다.
그리고 그 유연수요의 핵심 카드 중 하나가 축열식 히트펌프다.
ESS와 양수발전은 전기를 저장한다.
축열식 히트펌프는 열수요를 이동시킨다.
전기차 충전은 이동수단의 수요를 이동시킨다.
수요반응과 VPP는 이 모든 자원을 묶어 계통에 맞게 움직인다.
이 조합이 있어야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태양광 50% 돌파가 보여준 것은 신재생의 한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전력망이 이제 수요를 움직이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신호다.
문제는 태양광이 많은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낮 전기를 흡수할 시스템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요한 한 축이 바로 축열식 히트펌프다.
이 글은 필자의 문제의식과 기본 논지를 바탕으로, ChatGPT와의 대화를 통해 자료를 정리하고 문장 구조를 다듬어 작성했다. 최종적인 관점과 책임은 필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