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왜 피곤한 도시일까?

Chaewon Kang·2020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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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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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에서 벨로그로 이전합니다. 3주쯤 전에 썼던 일기입니다.)

오전부터 이태원에 미팅 갔다가 며칠 전부터 먹고싶었던 마제소바를 먹고선 앤트러사이트에 왔다. 점심께가 되었는데도 한강진에서 이태원, 녹사평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없어서, 해밀턴 호텔 앞 삼거리에 서서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문득 기시감이 들어 생각해 보니 올 초 여의도에서 지낼 때 설 연휴의 국회의사당 대로를 보던 기분과 같았다. 바닐라 스카이에서 톰 크루즈가 텅 빈 도로를 달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텅 빈 도로는 이렇게 갑자기 익숙하던 감각을 의심하게 한다.

물론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요새 거리의 인구 밀도가 낮아지니 한결 피로도가 덜하다. 사람으로 북적이던 거리에서 사람을 빼고, 지형과 지물을 중심으로 서울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에어팟도 꽂지 않고, 간만에 삼십 분 정도를 천천히 걸었다. 무려 이태원을 한 번도 방해받지 않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살게 되면서, 서울은 왜 이렇게까지 피로도가 높은 도시인지 자주 생각한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많은 인구인데, 이는 물리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울의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물론 아주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겠지만) 정책적인 조치를 통해 시정될 수 있는, 그리고 얼른 돼야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간판 문화다. 다들 한번쯤 본 밈 <스위스의 한국화>.

서울은 상권이 매우 밀집되어 있고, 들어설 수 있는 평지가 적은 탓에 건물들 사이의 거리도 좁다. 그런데 간판을 제대로 규제하는 정책이나, 간판 디자인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태이다. 이건 비단 서울시만의 문제는 아니고, 예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한국 도심 경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2008년 공공디자인 사업과 관련하여 관련 정책이 발행되었지만, 여전히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도보에 아무렇게나 늘어선 가판대, POP, 여기저기 붙어있는 네온과 펄럭이는 현수막들은 서울 도심 시각 공해의 가장 큰 요소다. 전부 다른 간판 크기, 재질, 글씨 크기와 색상, 어느 가게는 문 위에 붙어있고 어느 가게는 벽에 붙어있고. 제대로 된 지침이 없으니 서로서로 눈에 잘 띄게 하려고 경쟁을 하고, 결국 전체적인 도심 경관이 엉망이 된다. 서울에서, 원치 않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적하게 걸을 수 있으면서 적당한 상권이 위치한 동네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몇 안되는 동네들은 모두 비싸다.)

두번 째 이유는 길에 널린 쓰레기들. 파리에 살 때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건 인도에 설치된 쓰레기통이었다. 아주 조금의 과장을 보태서, 파리 시내에는 거의 10m에 하나씩 쓰레기통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쓰레기 수거차가 하루에 몇 번씩 돌면서, 무지하게 자주 비운다. 그러니까 일회용 컵 같은 쓰레기를 들고 있다가도, 이걸 어디 안 보이는 곳에 버릴까 고민할 새도 없이 쓰레기통을 마주치게 되고, 쓰레기통에 잘 버리게 된다. 오늘 이태원 거리를 걸으면서 세어보니, 녹사평역에서 한강진역까지 이어지는 도보에 쓰레기통이 채 열 개도 되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져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다. 기사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후자가 훨씬 낫다는 얘기다.

세번 째 이유는, 공공디자인 사이니지 문제다. 이건 특히 지하철역을 이용할 때 극대화된다. 간판 문화의 상황과 비슷하다. 최소한의 중요한 정보만 전달해서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해야 하는데, 쓸 데 없는 정보가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반복된다. 우선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2호선 지하철만 생각해보자. (인천 1호선 등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사정이다.)

지하철 칸 내부에는, 내릴 곳을 안내하는 두 개의 디스플레이가 천장에 달려있다. 아래 사진처럼 각각 15인치 노트북의 화면 크기 정도 될까 말까인데, 이 화면을 또 두 개로 분할한다. 각각의 분할된 화면은 또 4:1 정도의 비율로 분할된다. 윗부분에는 광고가 나온다. 이 지하철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정차했는지는 나머지 1의 비율로 분할된 영역에서 텍스트로 봐야 한다.

심지어 이 텍스트는 간단하게 내릴 곳만 얘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예를들어 성수역에 정차했다면, 성수 이렇게 두 글자만 쓰는 게 아니라, 이번 역은 성수역 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입니다. This stop is Seongsu... (한자) (일본어) 의 나열이 뚝뚝 잘려 디스플레이된다. 그래서 이번 역은 성수역입니다. 를 놓치면, 다음에 이 문장이 나올 때 까지 길면 몇십 초를 기다려야 한다. 모바일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가다 한 번씩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정차역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똑같은 메세지를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이번역은 성수, 성수 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입니다. 이 역은 열차와 승강장의 거리가 넓으니... 그리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30분간 지하철을 타고 간다면 이 방송을 열 다섯 번 들어야 된다. 소리도 여간 큰게 아니다. 이 문장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수' 두 글자밖에 없다. 이 고유 지명들은 중국어, 일본어로도 똑같다.

파리 지하철의 경우, 내릴 역이 되면 딱 정차할 역의 이름만 두 번 반복해준다. 악센트를 달리 해서, 헷갈리지 않게 말이다. 이를테면 오베르캄프 역의 경우, 오베르캄프 (끝을 내림) 오베르캄프 (끝을 올림) 이러고 끝이다. 그리고 이 모든 피로의 끝에 성수역에 내리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내가 원하는 출구로 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손바닥만하게 적혀 있고, 100미터 뒤에서도 보일 정도로 크게 적혀 있는 안내는 딱 하나다. '뛰지 맙시다'.

그러니까 이런 거 만들어서, 세금 쓰고, 시민들이 또 앱 설치하고, 목적지 설정할 수고를 만들지 말고 얼른 지하철 환경을 개선하면 된다. 쓰레기 버리지 말자고 캠페인 하고, 환경부담금이나 벌금에 대한 간판을 대문짝만하게 만들어서 도보에 세우고 현수막을 달 필요 없다. 쓰레기 버리지 말자고 공익 광고 만들어서 지하철에 설치하면 시민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량만 많아지고, 더 피로해지고, 더 비효율적일 뿐이다. 그보다는 거리에 재떨이랑 쓰레기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자주 비워주면 된다. 이쯤 쓰고보니 문제점을 알겠다. 기존의 방식이 효율적이지 않을 때는 그 방식을 다시 논의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데, 서울은 계속 새로운 걸 도입하고, 기존의 것을 없애버리려고만 한다. 충분한 시간 없이 빠르게 개발된 도시들의 전형적인 특색이라기엔, 서울이 유난히 그렇다. 위의 '도착역알림서비스'를 기획하고선, 기술 친화 도시 서울! 또 그랬겠지.

어떻게 끝내야 할 지 모르겠으니, 내가 가장 잘 써먹는 세드릭 프라이스의 문장을 마지막에 언급해야겠다."기술은 답이다. 그러나 질문이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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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상상력과 기술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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