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올리는 2023년 회고 - 이거 쓰고 전 아기 낳으러 갑니다.

yoohee.chung·2024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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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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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2년차 AI 플랫폼 엔지니어
  • 그리고 테스트기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
  • 롤모델이... 없더라고요.
  • 일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사람이 힘든 건 참을 수 없다
  • "1년 푹 쉬고 와"라는 고마운 말

2년차 AI 플랫폼 엔지니어

흑흑 저 전배갈래요...

2018년에 첫 입사를 했고 2021년까지 웹개발자로 시키는 일을 주어진 대로 그저 열심히 하는 4년을 보냈다.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일에 대해 배운 것도 많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4년차 즈음의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당시 일하던 팀은 웹개발 영역 중에서도 테스트 자동화와 Quality Engineering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난 석사 전공도 SW 품질이었기에 QE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품질을 관리하는 업무를 실제 담당하니 기질적으로도 잘 맞지 않았고(특히 한국 기업에서 나이가 심하게 어린 직원이 상급자가 작업한 내용물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것은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들끼리라고 하더라도 뭔가 스무스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품질 관리라는 업무의 특성상 지루함을 견뎌내고 꼼꼼하게 많은 것들을 챙겨야 했는데, 이것도 내 성격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덕목들이었다.

무엇보다, 열심히 고생해서 테스트 자동화 파이프라인도 전부 구성해놓았는데 웬걸? 운영 조직에 프로젝트를 이관하고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품질로 인한 클레임을 받게 되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프로젝트이긴 한데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이 울상을 지으며 헬프를 쳐서 잠시 봐줬더니... 테스트 코드가 싹 다 사라져있었다. 왜 테스트 코드가 몽땅 없어졌냐고 물어보니 높으신 분들이 유지보수도 힘든 테스트 코드를 왜 들고 있느냐, 배포 시간만 잡아먹는다면서 걷어내라고 해서 없애버렸단다. 이때 현타가 제일 크게 왔던 것 같다. 그러나 공룡같이 큰 우리 회사에서 20대 후반 대리가 여기에 대해 뭘 항의하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

나는 '됐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일을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직이든 전배든 뭐든 간에,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던 시기에 예전에 같이 일한 적 있는 상사로부터 전배 제의를 받았고, 2022년에 현재 조직으로 옮겨와 AI 플랫폼 엔지니어로 일하게 되었다.

드디어 밥값을 해내는 사람이 되었나..?

2022년 상반기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남들을 따라잡느라 키워드 하나하나 주워 읽어가며 주어진 일을 쳐내는 데 급급했고,하반기가 되어서야 정신을 좀 차렸다. 그래서 2022년 하반기와 2023년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해냈다.

  • 연구소 내의 NVIDIA DGX 클러스터를 구축/관리/운영
  • Megatron과 DeepSpeed를 사용해 분산 학습/추론을 할 수 있는 환경 구성
  • Open OnDemand 라는 오픈소스를 활용하여 HPC 환경 자원을 사용자가 직접 요청하여 자동으로 할당/회수하여 쓸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구성함
  • Data Scientist들로부터 오는 트러블슈팅 요청 대응

그래도 그럭저럭 밥값은 해 내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던 차에 인생에 대형 이벤트가 찾아왔다.

그리고 테스트기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

2022년 가을에 결혼을 했다. 주변에서는 나이도 어리니 신혼을 좀 더 즐기다 아이를 가져도 좋다고 조언을 했지만 우리 부부는 늦지 않은 나이에 자녀를 갖고 싶었다. 2023년 내에 아이를 갖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지냈지만 생각보다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 되던 6월 즈음, 뭔가 컨디션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살기인가? 하다가 문득 촉이 오는 무언가가 있어서 급히 화장실로 가서 테스트를 해 봤다. 잠시 후, 희미하지만 두 개의 빨간 선이 나타났다.

오잉... 코로나 두 줄이 아니라굽쇼?


계획 임신이었고 기다리던 순간이었음에도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벅찬 환희보다는 '띠요오옹?' 하는 당혹감이 나를 지배했다. 인생을 살면서 휴직 한 번, 일주일 이상의 장기 휴가를 내 본 적도 없고, 취직도 졸업예정자 신분으로 빨리 되었던 편이었다. 즉 단 한 순간도 휴식기나 공백기를 가져본 적이 없었단 것이다. 최소 몇 달은 일을 손에서 놓고 나 자신과 아이를 돌보게 될 거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생각났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6주 차(회식 때 술을 마실 수 없었는데, 술을 좋아하는 내가 한 방울도 안 마시려니 결국 솔직하게 말 할 수 밖에 없었다.ㅋㅋㅋ), 팀장에겐 8주 정도 되었을 때 임신 사실을 알렸다. 다행히 모두 순수하게 축하부터 해 주어서 그 분들의 배려에 고마움을 크게 느꼈다.

롤모델이... 없더라고요.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입덧이 심하거나 해서 근무에 온전히 몰두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할 지, 회사에서 제공되는 임산부나 어린 자녀를 둔 엄마를 위한 복지나 제도가 어떤 게 있는지,언제쯤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했는지, 출산휴가와 휴직 중엔 뭘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해 줄 사람이 팀에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30대 중후반의 아이가 아직 어린 남자 책임님, 아이를 셋이나 낳은 아저씨 책임님 등 '아버님들'이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는데, 육아 조언이면 몰라도 그 분들이 임신 기간 동안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50대 이상의 남자 상사들의 경우 아내분이 대부분 전업주부 혹은 직업이 있어도 파트타이머였다. 그 분들의 출산과 육아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전통적인 그것(아빠는 돈만 열심히 벌어오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에 가까웠기에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여자 동료나 상사들의 경우, 우리 팀은 여자 직원들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워킹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싱글이거나, 딩크족이거나, 아니면 나보다 결혼을 늦게 했거나 셋 중 하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소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신차려보니 나는 선구자가 되어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하며 지내는 기간 동안 무엇을 했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정리해두고 내 이후로 엄마가 된 후배들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해 봐야겠다고.

일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사람이 힘든 건 참을 수 없다.

난 원래 좀 건강 체질이다. 골골거리거나 어디가 아픈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 어머니가 마르고 약한 체질에 비위도 잘 상하는 스타일이라 임신 기간 중 입덧으로 그렇게나 고생을 했더랬다. 임신 중이 아닐 때도 불면증에 소화불량, 변비도 달고 사셨다. 엄마가 이런 편이면 딸이 닮는다던데 다행인지 나는 완전히 아버지 체질이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감기에 걸려도, 한 숨 푹 자고 나면 회복되곤 했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고, 잠자리가 불편해도 머리만 대면 곧잘 잠에 빠져들곤 했다.

덕분에 임신 초기 입덧으로 식욕이 부진해서 몇 kg 빠지긴 했으나, 인터넷에 올라온 무용담(?) 처럼 먹기만 하면 다 토했다든지, 수액을 맞고 입원을 했다든지, 유산기가 있어서 의사한테 절대안정을 권유받았다든지 한 적은 없다. 일도 평소처럼 했고 딱히 단축근로 같은 걸 신청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여가 시간에도 남편과 산도 타고 공원에 놀러도 가고 레일바이크도 타는 등, 그냥 할 거 다 하고 지냈다. 음식도 술만 끊었지 육회비빔밥이나 회초밥을 먹는 등, 조심하며 지내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딱 하나 조금 아기한테 미안한 부분은 일하면서 받은 인간관계 스트레스다. 연차를 다 소진하고 출산휴가를 가려고 이미 몇 달 전에 다 합의를 해 둔 상태인데, 당시 PM은 이미 다 정해진 나의 스케줄을 고려하지 않고 휴가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 '얘 휴가 가기 전까지 시킬 수 있는 건 다 시켜놔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배분해둔 상태였다. 누군가 빠져도 일이 돌아가게 계획을 세워놔야 하는데, 최소 3달 이상 자리를 비워야 할 내가 없으면 안 되게 만들어놓았다.

마지막 출근 전날까지 야근하며 트러블슈팅 했으니 당연히 인수인계 같은 걸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에 사내 메신저를 슬쩍슬쩍 염탐해보니 내가 맡았던 부분에 문제가 터지면 '담당자가 자리 비우고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답을 하고 계셨다. 그 분이 나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 생각한다. 평가철이 다가오는 시점이었고, 본인도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일을 몰아줬지 않을까 싶다. 다만 나라면 관리자 입장이 되었을 경우 이처럼 긴 공백기가 곧 생길 직원에게 급하고 크리티컬한 업무는 아예 맡기지 않을 것이고 그게 프로젝트 전체 차원에서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직 개편과 인사평가 때문에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도 있었다. 자세히 얘기하긴 그렇지만, 요약하자면,

"고과 이렇게 줄 것이라고 얘기까지 다 해놓고는 결과를 오픈해보니 더 낮게 줌. 이유는 이러저러함. 여러 팀장님들 간에 어른의 사정이 있음. 죄송염 ;)"

이것도 딱히 높은 분들이 나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이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사실 한 단계 낮아졌다고 해도 아주 낮은 고과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우미양가로 치면 우 정도는 받았다. 하지만 고과는 곧 돈과 연봉 인상율의 문제인데 미안하다는 말로 퉁치고 끝내려는 태도는 참기 힘들었다. 내가 실의에 빠져 있는 걸 보고 남편이 매우 분개했다. 나보다 더 펄펄 뛰는 남편 덕에 그래도 위로가 좀 되긴 했다. 우리 부모님보다도 더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역시 남편 뿐이다.

"1년 푹 쉬고 와"라는 고마운 말

입사 때부터 같이 일한, 친한 상사가 있다. 나이로는 거의 삼촌이나 아버지 뻘인데(실제로 그 분 첫째 자녀분이 나보다 2살 적음 ㅎㄷㄷ) 회사에서도 그 분과 나는 톰과 제리 같다고 유명했다.(당연히 내가 제리 쪽이다.) 그런데 내가 출산하러 간다니까 '애가 애를 낳는다!' 같은 느낌을 받아서 충격을 좀 드셨던 모양이다.

나이 먹고 보니 가장 얄미운 캐릭터 1위가 제리라며??

휴가를 내고 몇 주 지났을까, 연말연초에 식사 한 번 하자고 해서 충무로 앞의 대만식 곱창국수 집에서 만났다. 조직 개편의 돌풍이 휩쓸어서 팀은 쪼개졌고, 일은 폭발적으로 쏟아져들어오는데 1년 가량의 공백이 생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 복귀 후 적응을 못 하고 도태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호소했다. 늘 내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얘기하면 이 분은 시니컬하게 "얌마,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지. 엔지니어는 평생 이렇게 사는거야. 공부 안하고 넷플릭스나 보고 하니까 불안하지." 하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런데 이 날은 의외로 다른 말을 하셨다.

야,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말고 1년 동안 아기 잘 보고 몸조리나 잘 하고 와. 내 경험 상, 너 같은 애는 쉬다 와도 금방 적응해. 내가 있는 팀 팀장한테도 너 얘기 잘 해놓을거니까 복직하면 얘기하고.

말로는 "아니 이 책임님이 웬일로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하시고.. 돌아가실 때가 됐나요? 그러기엔 아직 좀 젊으신데..." 하면서도 내심 매우 고마웠다. 사회생활 하며 직장에서 만난 사람에게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별 거 아닌 일이 아닌 걸 잘 알고 있다. 나 자신은 후배들에게 지지가 되거나 도움을 적극적으로 주는 선배였던 것 같지 않아서 약간의 반성도 되었다. 20년 후에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그 날 느꼈던 고마움을 간직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그렇게 말 하게 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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