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전공동아리 운영했던 이야기 - 오래 가는 동아리엔 이유가 있더라

city7310·2020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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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의 주인공 : 이러고 있어도 우리 동아리 운영에 큰 공헌을 한, 요즘 진짜 개발 잘 하는 iOS 엔지니어 이병찬

이 글 왜 썼니?

2기 졸업생으로 고등학교를 떠나온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빠른년생이라 몇 개월 전에 졸업한 후배들이랑 친구 먹고 다니다 보니, 졸업 언제 했는지를 직접 세보고 나서야 내가 사회에 나온 지 얼마나 됐는지 실감이 난다. 이제 학교 일에 관심 그만 가져야 하는 꼰대가 돼버렸다.

다들 경험해 봤다면 알텐데, 잘 따라와주는 학생 가르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내가 운영했던 전공동아리에선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정말 멋진 후배들이 많았고, 같은 업계에서 정말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 가장 재밌었던 추억’으로 확실히 기억나는 게 바로 이 전공동아리 이야기다. 기술적인 우여곡절이 많았던 DMS라는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는데, 이건 나중에 쓸 지 말 지 고민해 봐야겠다.

이 글은 신생 학교의 덜 만들어진 체계 속에서 그 많은 동아리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소위 ‘잘 나가는’ 동아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을 관찰했고,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떤 성공과 실패가 있었는지 등등을 이야기한다.

대마고의 전공동아리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대마고라는 별명도 있다. 하여튼 이 대마고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한 뒤에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바로 일하고자 한다. 이 쪽이 안 맞다고 생각하는 일부는 자퇴하거나 학교에 남아서 다른 공부를 하곤 했는데,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3학년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공 실력을 늘리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다. 게다가 마이스터 고등학교 특성 상 모의고사나 수능같은 것들을 다 피해갈 수 있고, 성적을 이유로 취업하지 못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에, 시험 점수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 공부를 그렇게 높은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공 공부와 일반교과 공부를 병행하고 둘 모두에서 평균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게, 보통의 재능과 노력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하게 된 대표적인 우선순위 조절 사례다.

이런 분위기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전공 실력 향상을 위한 여러 컨텐츠들을 설계했었다. 방학에 소프트웨어 마이스터 고등학교끼리 모여서 캠프를 열거나, 특강을 준비하거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 전까지 며칠 간 온종일 프로젝트를 하게 하는 '점프업 캠프'라는 것도 있었다. 이런 단발성 이벤트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진행됐던 것중에 하나가 전공동아리였다. 특정 주제(해킹, 임베디드, 앱개발 등등)로 뭉친 10명 남짓의 그룹이 금요일 7~10교시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1학년일 때, 동아리들 각자는 튼튼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한 학기라도 순탄히 넘기면 다행인 분위기에, 학교가 생긴 초창기부터 유지되고 있는 동아리도 한두개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학교는 만들어진 지 2년째였고, 따라서 대마고 이름으로 재학 중인 3학년이 없었던 것이 동아리가 튼튼해지기 어려운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1학년 시절 느꼈던 당시의 문제점을 풀어 보겠다.

1학년 : 그 때 동아리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

선배 부족

아직 머리가 다 안 만들어진 고등학생이 소프트웨어를 공부하게 되면, 웬만큼 똑똑하지 않고서야 공부 방향을 잡아줄 선배의 유무가 큰 차이를 만든다. 1학년이었던 나한테는 선배가 있었지만, 2학년이었던 그 선배들에겐 선배가 없었다. 학교의 신입생 기수가 올라감과 함께 경쟁률은 떨어지지만, 그와 반대로 전체적인 실력은 상향평준화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똑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더라도, 그 위에 선배가 몇 기수나 있느냐에 따라서 성장 속도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졸업한 1, 2, 3기 사람들이 후배들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살면 이런 이야기가 성립 안하겠지만, 내 친구들만 봐도 다들 최대한 후배들 챙겨주려고 하는 걸 보니 이게 좀 되는 것 같다.

아무튼 1학년이었던 내게 2학년 선배들은 엄청난 사람들이었지만, 상대적인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부분이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높은 경쟁률 뚫고 들어온 똑똑한 사람들이었는데, 학교가 잘 안 갖춰졌을 때 선배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성장의 전성기가 어쩔 수 없이 늦게 시작되는 현상이었다. 선배는 시행착오를 대신 해주고 알려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선배들은 그런 역할을 해줄 선배가 없었으므로 자신들이 그런 것들을 다 겪었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정말 실력 좋은 outlier들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수준 높은 사람이 ‘몇몇’만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된 게 아니라, 똑같은 학년이더라도 실력의 편차가 심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잘하는 선배’가 있는 동아리에 따라가서 배워보려는 식으로 동아리가 구성됐다. 이런 것 때문에, 당시 동아리들은 ‘실력 좋은 사람이 있어야만 인기있어 지는 구조’로 발전했다. 따라서 이런 슈퍼스타들 한두명의 움직임이 동아리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동아리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무언가 시너지를 내는 팀 게임을 하지 못하고 '임시로 만들어진 그룹'의 느낌이 강했다.

시행착오하는 동아리는 인기가 없다

도전적인 동아리의 축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봐야, 아무 컨텐츠 없이 자습만 하면 상승효과가 없다. 만약 그 조직의 성격에 맞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컨텐츠를 구현하고, 실행에 잘 옮길 수 있다면 자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부분 그게 잘 되지 못했다. 동아리들은 '나름 사람을 뽑았으니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시행착오였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지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당시 내가 속했던 Oreo라는 앱 개발 동아리에서는, 선배들이 동아리 활동 시간마다 후배들한테 뭔가 가르쳐 보려고 항상 자료를 만들어 왔었다. 당시 안드로이드 SDK의 ImageButtonTextView 몇 개를 가지고 아주 간단한 클리커 게임을 만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 수업 자체는 매우 유의미했지만, 코딩 잘 모르는 애들 가르치겠다고 매 주마다 한두 시간 분량의 자료를 만들어온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다. 이런 강의식 컨텐츠는 분명 효과가 있었지만, 강의를 담당하는 선배에게 과하게 의존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어느 날 우리들을 가르쳐주기로 한 선배가 너무 바빠서 자료를 준비해오지 못한다면, 그 날은 사실상 자습에 가깝게 활동이 이루어졌다.

동아리가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당시의 Oreo도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동아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례를 베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첫째로 학교에 있었던 동아리들 중 ‘여기 진짜 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없었다. 둘째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꽤 오래 된 고등학교들은,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의 비율이 높아 우리 학교에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다.

그럼 Oreo의 이야기처럼, 동아리의 성장을 위해 시행착오를 함께 버티면서 성장통을 한동안 겪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아리는 이런 시행착오를 굳이 겪으려고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의 전성기

동아리에 속한 동아리원의 가장 우선된 목표는 개인의 성장이다.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구성원의 입장에선 이게 당연하다. 동아리원 각자는 자습보다 더 높은 질의 성장을 위해 동아리에 들어온 것이고, 동아리는 그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동아리원은 자신이 속한 동아리가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때 속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에 자습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

  • '다른 종류의 시행착오를 겪을 예정'을 잘 포장해서 홍보하는 신생 동아리가 나타난다.
  • 지금 속해 있는 동아리에 답답함을 느낀 구성원들은 '저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 동아리를 옮긴다.
  • 사실 그 동아리도 비슷한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고, 옮겨간 동아리원은 '여기도 다르지 않네'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이 과정에서, 기존 동아리가 앞으로의 몇 년을 설계하고 컨텐츠 구현에 도전하고 있었다면 큰 일이다. 한두 명의 이동으로 동아리가 해체될 위기에 놓일 수 있게 되고, 실제로 나도 겪었다.

이런 문제로 적극적인 시행착오를 겪으려 하는 동아리가 매우 적었고, 시행착오를 도전하는 동아리는 위와 같은 이유로 빠르게 망했다. 결국 theme만 다른 수많은 자습 동아리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앱개발 동아리도, 웹개발 동아리도 결국 동아리 활동 시간의 모습은 이어폰 꽂고 자기 할 거 하는 것으로 똑같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신생 동아리로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그렇게 사람 빠진 동아리는 망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학년 : 이게 왜 아쉬웠나

솔직히 말하면, 동아리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다녀도 된다. 소속에 상관 없이 본인이 열심히 하면 평균 이상 갈 수 있다. 심지어 그냥 자습 하면서 공부하고 살아도 상관 없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아쉬웠던 건 시너지다. 4명으로 구성된 잘 갖춰진 팀은, 독립적인 개인 4명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런 시너지 효과를 동아리가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 소문을 듣고 좋은 사람이 모이고, 재밌는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가 만들어졌던 초창기에 '마이스터 부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나중에 사회에서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라 같은 동아리 출신으로 즐거워하고 뭉쳐 다녔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강하게 공감했다. 색깔이 확실한 동아리 출신들끼리 모이면 강한 조직력을 가지며,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에 '튼튼한 동아리'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폐교되기 전까지 해체되지 않을 명확한 색깔을 가진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다. 만약 해체되더라도, ‘그 때 그 동아리 진짜 괜찮았는데 아쉽다’는 식으로, 모두의 기억에 남았으면 했다. 그래서, 일단 신규 동아리 신청을 했다.

일단 동아리를 만들자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과 3학년이었던 선배 한 명, 그리고 같은 과 2학년이었던 친구 세 명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세 가지의 가설을 세웠다.

  • '잘 하는 선배'들이 동아리에서 버티고 있으면, 동아리가 겪는 시행착오는 후배들도 어느 정도 버텨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실력 좋은 선배들은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니까.
  • 내가 동아리장 잡고, 실력 좋은 친구들 데려다가 시간 쓰면 동아리에 어느 정도 색깔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동아리의 성장통에 답답함을 느낄 때쯤, 어느 정도 동아리의 모양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2017년에 모바일 앱 개발 동아리 GRAM이 탄생하게 됐다. 뉴 메타를 만들기 위해 머리 맞대고, 어수선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도전하고 빠르게 실패해서,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는 성격의 동아리였다.

그리고 졸업 전까지 : 나는 무슨 노력을 했나

사람 잘 뽑기

우리 학교에서 전공 동아리가 사람을 뽑을 때는, 2, 3학년은 미리 갖춰진 경우가 많았기에 보통 1학년을 타겟으로 한다. 신입생 상태인 1학년들 사이에 전공 실력의 편차는 그리 크지 않으므로, 우리는 지원자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에서 전공 실력을 모두 배제했다. 그 이유는,

  1. 신입생에게 전공 실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
  2. 우리 동아리의 컨셉 상 1학년 지원자가 가진 전공 실력이 동아리 활동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 동아리는 생기있고 선후배 안 가리는 곳을 원했다. 따라서 조용한 한두 명의 인재를 중심으로 조직이 구성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게 ‘생기있는 동아리’에 맞게 평가 지표를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싶은지' 위주로 설정했고, 여기에 맞춰 질문을 구성했다. 동아리 구성원과 지원자들을 반씩 묶어서 두 면접 그룹을 만들고, 면접에 참가한 구성원들이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중간에 2, 3학년 인원을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동아리 컨텐츠 상, 이들은 배우는 입장보다 코칭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전공 실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검을 위한 여러 기술적인 질문들을 100문항 가까이 내부에서 먼저 정리하고, 면접에 들어올 지원자들에게 이 내용을 미리 전해줬다. GRAM은 지원만으로도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함이었다.

면접의 방식, 또는 사람을 뽑기 위해 면접이라는 절차를 사용했던 것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사람을 뽑는 시점부터 우리 동아리의 색깔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은 좋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면접을 통한 지원자 검증은 생각해봐야 할 주제다. 예를 들어 2, 3학년 지원자의 전공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과제를 내주는 방법이 더 정확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제를 내주는 것은 책임감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지원자들은 그 과제를 위해 열심히 시간을 투자할텐데,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지 못한다면 과제를 내주는 건 무리다.

사람 잘 뽑으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아리에 아무리 체계가 잘 잡혀있어 봐야, 마이너스 시너지를 내는 인원이 있으면 성장이 질질 끌릴 수밖에 없다.

후배들을 환영하고, 응원하기

우리는 동아리 신입생을 뽑고 난 뒤 첫 동아리 시간에, 1학년들이 오기 전에 일찍 동아리실에 가서 후배들을 환영해주기로 했다. 특별한 건 없었고, 그냥 예쁘게 움직이는 GIF 위에 동아리 이름 띄워놓고 모니터에 연결한 다음, 불 꺼놓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신규 인원을 환영하기 위한 고민을 자주 했다. 이건 소속감을 위한 설계라던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서로 친하고 재밌게 지내보자~’같은 소소한 목적이었다.

우리는 우리 동아리에 있는 후배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선배들이 더 잘하니까'같은 생각 없이, 이것저것 도전하고 얼른 우리들을 가르치려 들길 바랬다. 그리고, 애초에 후배의 가파른 성장에 시기질투하지 않을 사람들로 동아리의 2, 3학년 인원을 구성했다.

후배들에게 ‘벌써 그런 것도 하고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건 사실 응원을 해야겠다는 의도보단, 정말로 후배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적이 많아서 감정 그대로 한 이야기기도 하다. 실제로 내 2학년 1학기보다 후배들의 2학년 1학기가 더 나았다. 물론 절대적인 실력 수준에 대한 현실자각도 있어야 하지만, 어차피 이런저런 프로젝트 하면서 자기 알아서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하여튼 우리는 후배들을 향한 응원에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물론 ‘너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 쉬어도 돼’같은, 사람을 덜 열심히 살게 만드는 무책임한 격려는 하지 않도록 했다. 응원들은 모두 ‘너 잘한다’고 박수 쳐주는 일이었다.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인 선배들이 완전히 ‘자기 편’이라고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두려움 없이 이것저것 도전할 수 있는 감정적인 여유가 생기고, 그런 자신감을 가진 만큼 덜 실패하기도 한다.

시간 들여서, 문화 가꾸자

동아리를 운영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건, 우리의 색깔이 반영된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효율이 극대화된 스케줄로 동아리 활동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하고, 같이 부대끼고 있으면 시너지가 날 수밖에 없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다른 동아리로 건너가는 인원이 생기면, 이런 문화와 시스템의 부재로 갈증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우리 동아리로 건너올 수 있도록 그런 문화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려고 했다.

스터디 팀

먼저, 동아리 활동 시간의 대부분을 스터디로 채우고자 했다. 모바일 앱 개발이라는 주제로 모였지만, 각자가 공부하는 포지션(iOS 개발, Android 개발, 백엔드 개발)이 다르므로 그만큼 공부하는 주제와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2, 3학년으로만 구성된 정규 스터디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들은 스터디 리드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동아리의 1학년은 원하는 정규 팀에 참여한다.

그리고 동아리 구성원들은 언제든 비정규 스터디를 만들 수 있었다. 예로 동시성 프로그래밍과 같이, 포지션 구분 없이 공부할만 한 주제가 자주 생기기 떄문이다. 여기에는 인원이나 학년 제한, 진행 기간 등 거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뒀다. 만약 동아리 인원끼리 해커톤이나 공모전을 나가게 되는 경우에도 이 방식을 통해 결성한다. 모두 활동을 기록하고, 각 구성원이 동아리에서 진행 중인 여러 활동들 중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서로가 정확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정규 스터디비정규 스터디라는 제목의 과목이 만들어져, 매 주마다 동아리 활동 스케줄을 짜기 위한 재료로 사용됐다.

직계

선배한테 질문하는 건 참 어렵다. 괜히 시간 뺏는 것 같고, 조금만 더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거 괜한 질문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은 감정이 생길 때가 많다. 자기 질문 마음껏 받아줄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규 스터디에는 웬만하면 학년별로 인원수를 맞추려고 했다. 동아리에 속한 모든 3학년은 2학년을, 2학년은 1학년을 직계로 두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직계는 ‘후배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멘토' 정도의 역할을 한다. 직계에는 몇 가지 규칙이 존재했다.

  • 무작정 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자립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코칭할 것
  • 되도록 졸업 후에도, 직계가 업계에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챙겨줄 것

이런 시스템은 동아리의 조직력을 크게 늘리는 데에 기여했고, 실제 구성원들 각자의 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회고

동아리는 일주일마다 모인다. 학교 생활 일주일은 충분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각자 어떤 성장을 했고, 다음주의 계획은 무엇이고, 어려웠던 점을 공유하는 회고 시간을 반 교시에서 한 교시 정도에 걸쳐 진행했다. 체험학습이나 대회 참가 등으로 회고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Slack에 자기 분량의 내용을 남기도록 했다.

사실 이런 피드백들은 개인 단위에서도 관리할 수 있지만, 동아리에서 그 내용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 의견도 나눌 수 있고 확실히 목표에 무게감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문서로 공개하기

이런 컨텐츠들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최대한 공개했다. 면접 질문, 가이드라인, 템플릿 등을 GitHub Wiki를 통해 공개하고,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스터디, 라이트닝 토크, 회고의 내용 등의 활동 데이터를 되도록 모두 GitHub에 업로드했다. 우리의 활동이 기록되는 효과도 있었고, 이런 활발함이 공개되면서 자연스레 홍보가 되는 효과도 있었다.

문서 작업은 특별한 게 아니고 시간 투자의 싸움이다. 당시에 나는 이런데에 쓸 시간이 많았다. 노는 시간 줄여서 문서 작업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보면 이렇게 거창하게 '노는 시간 줄여서 썼다'고 말하기엔 참 부실하고 부족하다.

졸업하고 나서 : 지금의 GRAM을 보며 드는 생각

나는 동아리 시간이 기다려지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그 목표를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했고, 함께 동아리를 꾸려나가던 고마운 친구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부족한 동아리장 돕는 데에 써줬다. 덕분에 Plan A였던 ‘폐교 전까지 해체되지 않는 동아리’를 만드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 같다. 내가 졸업한 뒤 GRAM은 New GRAM으로 이름을 변경해서 활동했고, 올해에 다시 GRAM이라는 이름이 동아리 판에 복귀했으니 말이다.

동아리는 처음부터 완벽하기 어렵고, 나는 동아리 운영을 천재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GRAM도 완벽하지 못했다. 기존의 동아리들과 조금 다른 돌연변이로서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분명히 실패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지금 후회하면 늦은 거다. 시기 상으로도 늦었고, 이미 졸업했으니 건드리면 안 되는 구역이기도 하다. 동아리의 운영권을 쥐게 된 후배들이,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동아리의 모습을 잘 해석해 알아서 성장시켜 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성공 궤도에 올라간 것 같다. 우리가 겪었던 실패는 지금의 동아리장과 피드백하고 있는 비밀이니, GRAM이 올해 성공하고 나면 공개하기로 하고 이만 여기까지 하겠다 :-)

그래서..

하여튼, 전공동아리 GRAM은 내가 운영하던 당시 성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 하겠다. 그러나 당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성장통을 짧은 시간에 압축해 충분히 경험했다. 이제 GRAM은 성공할 일만 남았다. 어차피 만들어진 김에, 아득바득 살아남아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멋진 역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모든 동아리는, 자신의 1학년 시절을 기억하며 구성원들이 어떤 곤경에 빠질 수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힘듦을 앓고 있는 후배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게 동아리와 선배의 진짜 역할이다.

동아리 운영은 분명 재밌는 일이다. 단순히 그런 재미 외에도, 사람을 다룬다는 생소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그러나 동아리는 구성원들의 성장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커리어와 같은 목적으로 동아리 운영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본다. 후배들한테 민폐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학교의 선후배 네트워크가 더 끈끈했으면 좋겠다. 당연히 재학생 입장에서는 '꼰대는 나가있어'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대마고에서 몇 년 전까지 아침운동 욕하고,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던 기억을 가진 경력 2년 된 엔지니어가 도움이 안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람도 챙기고 동아리도 뒤처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참 힘들다. 아무리 고민하고 연구해도, 동아리 운영은 어려운 일이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요새 다들 Quotation이나 이모지 많이들 써서 예쁘게 글 꾸미던데, 오랫동안 다른 지면에서 글을 쓰다 보니 텍스트로만 구성하는게 익숙하네용 ㅎㅎ 여기서 이모지 많이 써야지 🤔 🤨 😐 😑 🥺 😞 😟 😒 😓 😔 😕 🙃

profile
PlanB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니어 백엔드 엔지니어입니다. 자기계발은 노력충들 전유물이 아니라 세상을 똑바로 살기 위한 기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성숙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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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8일

저 동아리 회장하던 때도 새록새록 생각이 나네요~ 동아리 운영은 아무래도 개발보다는 운영(또는 경영)에 가깝다보니, 전혀 개발로는 배울 수 없었던 점들을 볼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동아리 운영 회고글을 나중에 한번 적어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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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4일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PlanB님 글 보면서 항상 많이 배워갑니다. ( 저도대전사람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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