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 #1 프로이트, 칼융

Clay Ryu's sound lab·2022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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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ical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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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분 뚝딱 철학의 김필영 선생님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고, 제 정리보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훨씬 더 좋으므로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XQvFDikCoGk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인간의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성적충동, 성적본능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리비도라고 한다. 이러한 리비도는 유아성욕론에서 볼 수 있듯이 4개월경의 유아기 때부터 형성이 된다.

의식과 무의식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호랑이는 무의식이다. 의식은 무의식을 스스로가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적절하게 컨트롤을 하려한다. 나는 이것을 몸과 나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의 몸은 욕구에 충실하며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나의 몸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가능하면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 몸을 이끌어가려고 노력한다. 둘 사이는 그 관계가 잘 작동할 때는 좋은 파트너십이 되지만 한쪽이 성숙한 형태(일반적으로는 의식)를 갖추지 못하면 밸런스가 무너져서 건강하지 못한 행동과 태도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이 가진 3가지 얼굴

원초아 ID = 원초적 본능

에로스 : 삶의 본능, 자기 보존의 본능 = 식육, 배설욕, 수면욕, 성욕
타나토스 : 죽음의 본능, 파괴의 본능
갓 태어난 아기는 원초적 자아 밖엔 없다. 배고프면 울고, 배아프면 싼다.
하지만 생후 12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이유식을 먹게 되면서 더이상 자신의 욕구가 그대로 해결되지 않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결핍의 상황을 격게된다.
아기의 요구는 이제 더이상 아기가 원하는 대로 해소가 되질 않는다.

자아 EGO, 현실이 자신의 욕구와 다름을 느낄때

이 상황에서 자아가 등장하여 원초아의 욕구가 다른 방식으로 발현이 될 수 있도록 조절을 해준다. 아기는 세상이 더이상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구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자아 Super EGO, 현실이 자신의 욕구를 control 할때 = 도덕의 목소리

생후 18개월이 들어 아기는 두번째 커다란 시련을 맞는데, 배변 훈련과 함께 아기의 욕구가 부정당하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적어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모든 욕구가 해소가 되었지만 이제는 욕구가 부정당하고 억제가되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의 '안돼'라는 부정은 차츰 자기 자신 속으로 내면화가 되며 이는 초자아로 형성이 되기 시작한다.

아기의 성적 욕구

에로스와 타나토스

생후 4개월에 아기는 남자아이의 경우 성적 욕구가 발현이 되며 엄마에 대한 에로스와 아빠에 대한 타나토스가 형성이 된다. 하지만 이는 자아를 통해 억제가 되며 다른 방식으로 우회가 되게 된다. 아기는 힘에 있어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아빠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남자인 아기는 엄마를 뺏어간 아빠가 밉다. 근데 아빠가 화가나서 나를 거세해버릴까봐 미워하지도 못하고, 엄마에 대한 성적 욕구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 결핍은 영원한 구멍으로 남게 된다.

칼 융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Paul Gauguin -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유아성욕론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반기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에 칼융은 적극 동의하지만 성적 에너지가 풀어져나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것 같다. 이는 프로이트와 칼 융의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었을 수 있다. 프로이트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 같고, 융의 경우에는 유아기 때 정신 질환 때문에 병원에 있었던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다.

융의 의식과 무의식

의식 : 지각하고 경험하는 것

의식의 중심인 자아와 특정 상황별로 대응을 다르게 하기위한 가면인 페르소나

개인 무의식 : 자아에 억압성 성향과 억압된 충동

짐승이거나 괴물이거나

집단 무의식 : 인류전체가 영속하면서 겪은 과거 전체의 무의식

뱀과 어둠을 두려워 하는 것
원형 : 정신적 이미지로서 꿈, 환상, 신화, 예술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남
남성성 : 여성이 가진 남성성, 아니무스
여성성 : 남성이 가진 여성성, 아니마

자기 self : 진정한 나

self는 나의 정신 전체의 중심이다.
의식의 중심인 자아는 개별화, 자기 실현의 과정으로 자기를 찾아나가게 된다.
융에게 삶이란 자아가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하지만 이는 젊은 시절 사회 속에서 자신을 맞추어가야 하는 상황(페르소나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중년 이후에야 자기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을 해야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의 양성성을 마주하고 그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죽을 때까지 이어져 자아는 자기가 가진 잠재성과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프로이트와 융의 비교


나에게 무의식은 두 선생님의 알지못하는 무언가라는 설명에서 더 나아간 라캉의 설명과 좀더 알맞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무의식은 상징계와 같이 이미 언어의 형태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인공지능이 모델링한 함수(혹은 신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함수)와 같다. 우리는 그 함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않더라도 사용을 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도 잘 사용하는 법을 익히지 그 함수를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안은 블랙박스와 같고, 우리의 인지를 벗어난 언어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0과 1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떤 인간도 이 둘의 배열로 이루어진 언어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들여본다고 해도 아무것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이해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유추할 뿐이지만 그 원인의 구조에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대부분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함수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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