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스탑 (퇴사 부검)

devty·2025년 4월 22일

ETC

목록 보기
4/6

들어가기 앞서

안녕하세요. 블로그에서 두 번째 인사를 드리네요.

처음 글은 1년 차 개발자 회고였고 이번에는 그보다 조금 더 긴 여정을 마치며 다시 인사를 남깁니다.

넷플릭스에서는 퇴사(Departure)도 문화라고 합니다.

회사는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계약’의 끝맺음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철학이죠.

2022년 07월부터 2025년 05월까지 약 3년간의 회사 생활을 뒤돌아보며 저도 이 글을 하나의 ‘퇴사 문화’처럼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직이라는 결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성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익숙한 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그리고 그 질문 끝에 조금 더 배우고 싶고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고마웠던 사람들과의 시간들을 이 글에 천천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왜 떠나는가

긴 고민 끝에 익숙한 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SI라는 환경은 늘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도메인을 만나게 해줬고 그 덕분에 다양한 시스템을 빠르게 익히고 낯선 문제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서비스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 점점 더 마음이 향했습니다.

단기적인 완성보다 장기적으로 '잘 만든다'는 감각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내가 만든 기능이 실제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이 되었는지 그 반응이 데이터로 돌아오고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만든다’는 의미를 조금 다르게 정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커리어는 도메인 중심의 B2C 서비스 그리고 트래픽이 꾸준히 늘어나는 서비스 안에서 ‘만들기’ 그 이후의 일까지 함께 책임지고 싶은 마음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직을 결심했을 땐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그런 낯설고 긴 여정을 시작할 용기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곳을 나와서 배우는 것들은 늘 조금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 줬으니까요.

회사에서 배운 것 및 좋았던 점

첫 회사다 보니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일보다 더 중요한 걸 배우게 됐습니다.

기술적인 성장도 분명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떻게 일하는지를 가장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혼자만 잘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서로의 리듬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이곳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일정이 빠르거나 의견이 엇갈릴 때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바뀌기도 했고 대화를 한 번 더 시도했을 때 일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일을 잘하려면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라는 걸 알게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유연근무제 덕분에 집중할 땐 몰입하고 쉴 땐 편하게 쉴 수 있었던 점 일주일에 한 번씩 1시간 30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던 F-day 같은 제도들도 일과 삶의 균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줬던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이런 차이들이 꽤 오래 버티게 해주더라고요.

회사에 아쉬운 점

회사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프로젝트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그나마 비교적 길게 진행한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다른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거의 멀티스레딩 기반의 일정이었고 컨텍스트 스위칭이 잦다 보니 L1 캐시에 올려둔 집중력조차 자주 플러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개발자적 유머입니당 😉

여러 도메인을 경험할 수 있었던 건 확실히 장점이었지만 한 가지 작업에 깊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재직중 나는 무엇을 했는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회사 밖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성장하려 노력했습니다.

업무가 끝난 뒤에는 스터디를 통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얻고 싶어서 2023년 겨울 ‘우아한형제들’에서 주최한 ‘내 코드가 그렇게 이상한가요?’ 스터디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코드 리뷰를 중심으로 서로의 방식을 비교하고 토론하면서 코드의 품질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고 2024년 여름에 다른 스터디인 ‘우아한 대규모 시스템 설계 스터디 2’에도 참여했습니다.

단순히 코드를 넘어서 전체 구조와 흐름을 고민하는 시도였고 이 과정을 통해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그 뒤로는 토스 Learner's High 서버 스터디 1기 에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실제 서비스 수준의 구조와 안정성 성능 등을 함께 고민하며 더 실전적인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회사 밖에서의 배움이 다시 회사 안의 고민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나를 더 오래 덜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퇴근 후 집에 오면 매일 조금씩 커밋을 올렸습니다.

처음엔 하루를 마무리하며 배운 걸 기록하는 정도였는데 어느새 그게 습관이 되고 루틴이 되었습니다.

2022년엔 400여 개 2023년엔 900개가 넘는 커밋을 쌓았고 2024년에는 결혼 준비로 조금 느슨해졌지만 그럼에도 가능하면 매일 손을 움직이려 노력했고 2025년 지금까지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발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고 그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계속하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멈추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커밋 중에서도 가장 큰 커밋 하나를 했습니다. (말하려니 부끄럽네요)

결혼이라는 인생의 버전을 함께 올릴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빠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다니 놀랍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이 사람이랑은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함께 있을 때 편안했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어쩌면 개발자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던 이 시기에 사람으로서도 함께 자라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가장 큰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생의 다음 챕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이직을 결정하면서도 이 선택이 정말 정답일지는 계속 고민했습니다.

지금의 내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또 어떤 환경이 나에게 맞을지 사실 겪기 전까진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가봐야 안다. 그리고 그쪽으로 안 가보면 평생 궁금할 것 같았다.

어쩌면 가보지 않았으면 이런 고민조차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을 겁니다.

그래서 조금 불확실하더라도 일단 직접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선택이 맞았는지는 이제부터 알아갈 차례입니다.

마무리 / 인사

돌아보면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채워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보다 고마운 마음이 훨씬 더 큽니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한 행운이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저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쉽지 않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겨울은 지나고 결국 봄은 오더라고요.

“평소처럼 웃고 다녀요.” 그냥 인사 같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말이에요.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또 언젠가 같은 길을 걷게 될 나에게 이 말을 남깁니다.
“웃고 다녀요. 같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려 함께했던 동료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혼자 만든 건 거의 없었습니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같이 삽질하고 결국은 누군가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더 많았거든요.

정말 많이 배웠고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는 분위기 덕분에 덜 지치고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진짜로 감사합니다.
압도적으로요.

profile
지나가는 개발자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