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시스템은 아직 그리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사무소의 파일이 USB로 다니고 있었다.
이 사무소의 협업은 이렇게 굴러갔다. 실무자끼리 파일을 주고받을 땐 메신저, 양이 많으면 USB. 고객 자료는 팩스로, 이메일로, 문자로 제각각 들어온다. 이메일은 각자 개인 계정을 쓰는데 포털도 제각각이다. 데스크탑에는 비밀번호가 없었다. 업무용 AI 구독도 대표님 개인 명의로 따로 결제하고 있었다.
특별한 사무소여서가 아니다. 작은 사업장에선 이게 흔한 풍경이다.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대표님의 바람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사무소에 쌓인 자료들을 DB로 만들고 싶다는 것. 파일은 각자의 데스크탑 폴더에 흩어져 있고, 중복되고, 유실될 수 있다. 그래서 출력해 둔 종이 문서를 폐기하지도 못한다.
이건 특정한 날 받은 요청이 아니다. 홈페이지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러면 나 이런 것도 해보고 싶었는데"가 겹겹이 나왔다. 그 목록을 듣다가 판단이 섰다. 이건 홈페이지 외주가 아니라 작은 사업장의 IT 컨설팅이다. 그리고 DB화든 자동화든, 그 전에 깔려야 하는 게 있다 — 다 같이 쓰는 저장소다.
일원화하자는 제안은 그래서 홈페이지 이야기와 함께 초기부터 나왔다. 실행도 오래 끌지 않았다 — 제안부터 적용까지 3영업일.
세팅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 시간은 다른 데서 나갔다.
세 사람 자리를 돌면서 같이 눌러봤다. 매뉴얼 문서는 만들지 않았다. 실무자 세 명을 위해 문서를 쓰는 것보다 옆에서 한 번씩 같이 해보는 게 빨랐다.
이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을 파편으로 이해한다. 엑셀이 계산을 자동으로 해준다는 건 안다. 그런데 온라인 스프레드시트는 엑셀이 아닌 줄 안다. 파일 동기화 툴을 권하면 좋다며 쓰는데, 팀원끼리 연동은 안 되어 있다. 도구 하나하나는 알아도, 묶였을 때의 이득은 체감해 본 적이 없는 거다.
거부감도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개발자가 와서 잘 쓰던 방식을 버리라고 하는 셈이니까. 이건 대표님이 정리해 주셨다 —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그 뒤로는 대부분 협조적이었다.
다 바뀐 건 아니다. 이메일은 아직 전환 중이다. 실무자 주소가 바뀌면 고객에게 안내하는 내용과 방식도 바뀌어야 해서, 이건 시간이 걸린다. 팩스로 들어오는 자료와 PDF 수기 작업은 여전히 남아 있고, 종이 문서 폐기도 100%는 못 갔다. 보이는 대로 하나씩 고치는 중이다.
이번 편에는 시간 수치가 없다. 대신 장면이 하나 바뀌었다.
전에는 집에서 일을 이어가려면 USB에 파일을 담아 퇴근했다. 지금은 그냥 집에서 연다. 작업의 기준점이 되는 원본이 온라인에 있다는 걸 인지한 뒤로는, 세 사람 모두 최신 버전이 어느 파일인지 헤매지 않는다.
폴더 동기화를 보던 대표님이 물었다. "야 이거 내 개인 노트북에도 연동돼? 이야 좋다." 온라인에 원본이 있다는 개념 자체가 처음이었던 거다.
거의 모든 작은 사업장에 이 일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느 회사의 어떤 도구를 고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하기만 해도 효과는 크다. 다만 그 이득을 체감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우리 홈페이지 좀 만들어주면 안 되냐"는 말이 나오는 사업장은, 대개 홈페이지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