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하나로 시작한 일이 업무 시스템 구축이 됐다는 이야기를 지난 편에 썼다. 그래서 뭐부터 만들었냐 하면 — 코드가 아니라 문서 네 장부터였다.
세무는 나한테 완전히 낯선 도메인이다. 낯선 도메인에서 기능 목록부터 쓰면, 아는 도메인(개발)의 상상으로 채우게 된다. 그 상상이 현장과 어긋난다는 걸 이미 홈페이지 견적 단계에서 배웠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다.
먼저 구조부터. 이 사무소의 일은 위계형 분업이 아니다. 실무자 한 사람이 업체를 백여 곳씩 나눠 맡는다. 자료 수집부터 분류, 고객 관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고, 신고까지 직접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 전 과정이 각자의 스타일로 굴러간다는 점이었다. 자료 받는 방식도, 분류 기준도, 고객 관리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일하면서 생긴 노하우는 옆자리로 건너가지 않고 그 사람 안에만 쌓인다. 사무소 차원에서 축적되는 건 없다.
그래서 이 일을 통과하는 네 사람을 각각 한 장씩 적었다. 하루의 흐름, 답답한 지점(pain point), 잘 됐을 때의 기준.
문서마다 "잘 됐을 때"를 숫자로 정의했다. 실무자 기준으로는 — 거래 1,000건당 검토 시간 30분 이내. 자료 누락 0건.
이 숫자들은 나중에 기능의 성적표가 된다. "편해졌다"는 감상 대신 "1,000건에 30분 걸렸나"를 물을 수 있게.
이후 뭘 만들지 헷갈릴 때마다 이 문서로 돌아갔다. 이건 누구의 하루가 나아지는 일인가 — 답이 없으면 안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머릿속 그림이 아니라 문서로 적어두니, 실제 결정이 달라지는 순간이 왔다. 업무 통계 화면을 대표 전용으로 잠글까 하다가, 실무자 문서에 적어둔 한 줄 — 본인의 작업 통계는 본인이 직접 볼 수 있어야 한다 — 때문에 실무자 전원 공개로 열었다. 머릿속에만 있었으면 관성적으로 잠갔을 거다.
기능 목록은 그다음이었다. 낯선 도메인일수록 순서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 사람의 하루 먼저, 기능은 그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