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동료분이 매일 사내 게시판에 한 줄의 고전 문구를 공유해주신다. 개인적으로 정말 와닿는 구절들이 많다. 그러다 하루는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한 구절을 공유해주셨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그래서 퇴근 길에 바로 이 책을 구매했다. 나는 기술서적 이외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절대 내 돈 주고 책을 사지 않는다. 이번이 아마 인생에서 처음인 것 같다.
당신은 거절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날들이 쌓여 갔고, 나는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 갔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 갔다. ... 거절을 하고 보니 그 일들은 생각보다 사소한 일이었고, 사소해서 거절하기 민망했던 일은, 동시에 내가 거절을 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거절을 할 때의 한 번의, 잠깐의 불편함이 내가 바보가 된 듯한 감정에 휩싸인 수개월의 자괴감보다 훨씬 나았다.
사실 거절이라는 행동은 정말 어렵다. 거절하는 내 자신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뒤에는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칭찬 대신, 호구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다. 내 자신을 챙기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 남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더라도 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다. 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주고 싶은 만큼, 내가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만큼,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것뿐이다. 실망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기대했다는 의미다. 실망한다는 것은, 상대방도 그만큼 해야 한다는 강요의 의미다. 서로가 같은 마음이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서 실망할 이유도 없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를 갉아먹지 않는 선에서 마음을 다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무언가를 줬다면, 무언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서로가 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갉아먹지 않는 선에서 모든걸 해주면 되는 거다. 그래야 서로가 이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기대하기 이전에, 이 사람이 내 옆에 있기에 내가 얻는 감정과 생각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그 사람은 나에게 충분히 주고 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관계의 기본은,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왜 기분이 상했을까,
왜 표정이 안 좋아졌을까
...
내 감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감정도 소중하다.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만큼 타인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봐야 한다.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들이 있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아니 맞출 수 없다. 억지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에 자신을 맞추려하다보면 오히려 탈이 나게 된다. 다름은 좁히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려해야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다르다. 그리고 다른게 당연하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다.
순간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치솟을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조심해야 한다. 절대 그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즉각적으로, 충동적으로, 우발적으로 행복하거나 말하지 말 것. 혹시나 추측만으로, 지레짐작만으로, 타인의 주장만으로 감정에 휩싸이지 말 것. 반드시 사실 관계를 확인한 다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한 후 선택 할 것. 한 발자국 떨어져 결정한 이 선택이, 감정이 동요하는 순간, 후에 조금이라도 내가 불편할 만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알고 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말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리고 항상 후회한다.
개인적으로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규칙이 있다. 상대의 기분을 해칠 수 있는 이야기는 말로 하기 보다는 최대한 텍스트로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누가 읽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문구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에 바로 말해야만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이 순간을 잘 파악하고 피할 줄 알아야한다. 잠시 피해서 내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고 텍스트로 적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할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맹목적인 긍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문제인지는 전혀 모른 채, 자칫 자기암시, 자기 합리화에 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반드시 생략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현재의 내 모습, 내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사색과 고찰. 이 과정을 통한 반성과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방향 설정. 이 과정은 반드시 긍정을 기반으로, 모든 긍정은 반드시 이 과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
"오히려 좋아"는 나의 좌우명이다.
진짜 좋은걸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고통스럽고 힘들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에 이 상황을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는데, 이 구절을 읽고 생각해보니 나조차도 그 순간을 단순히 피하기 위한 노력만을 했다. 힘든 순간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지는 못했다. 피하려하기 보다는 그 순간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 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으로 오히려 좋은 순간을 만들 수 있다.
혼자라는 감정에 대하여
수많은 연락처는 있지만
정작 마음 터놓을 사람이 없는 듯한,
겉으로는 웃으며 잘 지내고 있는 듯하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는데,
그 마음을 아무도 몰라주는 현실이 공허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갑자기 울적함이 밀려오는데,
막상 그 감정이 두렵게 느껴지는 듯한,
치열하게 달려가자가
갑자기 진이 빠져 주저앉고 싶은 듯한,
그런 기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인생.
그게 성공한 인간관계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이런 감정을 종종 느낀다. 이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되게 잘못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타인을 대할 때, 평생에 걸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나에게는 내가 만나는 수십 수백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마주하게 될 상대방일지 몰라도, 그 상대방에게 나는 단 한 사람의 존재일 수 있음을.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한순간 거만했던, 한순간 귀찮아했던 그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나의 전부가 될 수도 있음을.
실은 나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직장 생활을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고민한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이 되었든 그 선택을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일단 도전해보는 것도, 마음은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도, 모두 내가 살아가야할 인생이다.타인의 삶이 아니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면, 내가 선택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나은 것일 테니까.
어떤 것도 나의 선택이니까.
부디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 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