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글쓴이의 매우 주관적인 경험과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보! 사바사 케바케는 과학입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딜가나 학력, 학벌 좋다고 일머리 좋은거 아니라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다. 실제로 공부잘하는 것과 일반적인 사회생활, 업무능력이 정비례한다고 볼 수 없을테니 그럴싸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은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는 심심치 않게 학벌과 전공이 중요하냐는 질문과 대학을 가지 않고 취업을 해도 되냐는 질문이 올라오며, 각자 본인의 경험과 주장을 이야기하며 토론이 오간다. 앞선 문단의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개발자는 공학을 기반에 둔 지적 노동을 하는데 정말 관계가 없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내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나는 운좋게도 다양한 사람이 코딩을 배워가는 과정을 지켜 볼 기회가 많았다. 알고리즘 동아리에서는 다년간 신입생과 후배를 교육했고, 대학원에서는 프로그래밍 과목 실습 조교를 자원했다. 지금까지 약 30명 정도의 개인과외를 했고, 온/오프라인을 합쳐 500여명의 수강생에게 유료 교육을 제공해 본 경험이 있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개발자에 대한 교육 및 취업준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나도 나만의 의견을 갖게 되었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세기고 싶은 문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단순한 if 조건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혈액형 성격설과 별자리등이 있다. 개발자와 학벌 논쟁에서도 이런 경향성은 많이 들어난다.
굳이 따지자면 현실에 일어나는 현상과 사람의 특성을 연속적(Continuous)이고 고차원의 데이터라고 가정해보자. 이를 사람의 편의를 위해 이산적(Discrete)이고 저차원의 데이터로 압축한다면 당연히 큰 손실이 날 수 밖에 없다. 즉, 단조로운 분류기준은 아웃라이어에 의해 부정될 뿐이고 이는 끝나지 않는 무의미한 언쟁만 부른다.
사람들은 Underfitting된 Classifier를 좋아한다.
이 글을 통해서 뭔가 확고한 판단 기준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이 글의 주요 소재인 대학교는 무슨 효용이 있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대학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간에는 분명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부정하는 대학 무용론은 그 효용이 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 근간을 두고 있다. 마치 군대와 철듦의 상관관계같은 주제다. 그래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대학교는 학생에게 컴퓨터공학 지식을 제공하고 과제, 시험, 연구등의 컨텐츠를 제공한다. 컴퓨터공학 지식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요구되는 기술과 Strictly Equal 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효용도 언쟁이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컴퓨터공학에 근간을 두는 한 지식체계의 근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컴퓨터공학 지식은 분명히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다.
대학교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준다.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갖게될 지는 천차만별이겠지만, 같은 전공 혹은 같은 학교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늘어난 인간관계는 개인에게 분명히 큰 영향력을 가진다.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성장과 지식을 나눌 동료가 되어줄 수도 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성장의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고, 구인/구직 시장에서 도움을 받을 수 도 있다.
우스겟 소리로 서울대에서 친구를 모아 창업을 하면, 그 순간 서울대 스타트업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학교는 그 자체로 학생에게 취업, 교육, 지원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선후배와 교수들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얻는 일도 흔하다. 그리고 학력과 학벌이라는 간판 그 자체로 주어지는 사회적인 기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명 우리 학교 인턴 프로그램에는 처음 보는 회사들 밖에 없었는데, 모 유명 대학 인턴 프로그램에는 외국계 기업과 국내 대기업이 다수 포진한 걸 보고 기회의 차이를 느낀 적 있다. 학교 내 구인공고 게시판을 대조해보면 이런 기회의 차이는 쉽게 보인다.
학교라는 소속은 집단의 분포에 큰 제약을 가한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입시성적, 비슷한 전공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한다. 학교와 교수에 따라서 그들이 제공받는 교육과 기회 또한 상이해진다. 이는 그 자체로 개인의 시각과 눈높이에 영향을 준다.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에서는 더 어려운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학생들은 이를 견뎌낸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A 대학교의 졸업 프로젝트가 다른 B 대학교의 주간 과제랑 비슷한 난이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를 실제로 많이 봤다.
분명 그렇지 않다. 학교가 아니어도 책과 온라인 컨텐츠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스터디와 커뮤니티 활동으로 실력있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나 개발자는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직업 중 하나고, 실제로 조금만 검색해보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교육과 구직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이렇게 쉽게 대체될 수 있다면, 학교는 어떤 의의가 있는것일까?
피교육자는 자신이 받을 교육, 커리큘럼등에 대한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받는다. 입학을 하면 별도의 노력이 없어도 양질의 수업과 학교 지원하에 이루어지는 경험기회들을 제공받는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수학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공부를 하고,졸업을 위해 최소한의 학업성취가 강제된다. 주도적 학습의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학교의 시스템은 개인에게 채찍질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상적인 상황은 모든 지원자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검토와 평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물리적인 한계란 존재하고, 이로인해 면접과정을 축소할수록 검증하지 못한 불확실성은 증가하게 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교육환경과 학업성취의 하한선을 보장하는 학력이라는 편리한 잣대에 기대고자 하는 심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 처럼 나는 개인 과외를 여러 번 했었는데, 그 중에는 해외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7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모두 다른 학교를 다녔고, 뉴질랜드, 독일, 미국, 호주 등 다양한 나라의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최소한 내가 과외한 학생들의 학교는 과제를 정말 무자비한 수준으로 내준다는 것이다. 분량도 난이도도 그렇다. 그리고 가장 혹독한 건 정말 F를 쉽게 준다는 것이다. 일정 점수 이하, 미제출, 카피는 무조건 그 과목을 F를 주는 과목이 대다수였다.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아도 F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뉴질랜드 모 학교에서 세 과목이 연계해서 스프린트 방식으로 과제를 내주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앞서 한 비유와 비슷한데, 내 모교의 학기 과제가 과외생의 학교에서는 위클리 과제만도 못한 난이도였다.
많은 한국의 대학들이 어떻게던 학부는 졸업을 시키려고 하는 기조와 비교가 되었고, 이 정도면 학력 차별을 인정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었다. 나라면 도저히 그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교는 무난하게(?) 스트레이트 졸업을 했지만, 과외생들의 학교를 다녔다면 첫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학교가 가지는 의의를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편리성에 기대어 학력, 학벌, 전공이라는 간단한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문제 해결 능력에는 학문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컴퓨터적인 사고력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를 다녀도 컴퓨터적인 사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보았다. 실력이 발현되는 속도에 있어 재능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학벌과 실력이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것 같냐면 그건 또 아니다. 절대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와 주변의 지인들은 어느정도 상관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공학적지식의 수준이 개발 실력에 무관하다고 하면 그것도 모순일 것이다. 그래서 편리성의 관점에서 이런 현상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자의 학력 차별은 물리적인 자원의 한계와 편리성 추구로부터 출발한다. 어느정도 연차가 쌓여간다면, 커리어와 평판이 그 사람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어줄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도의 레퍼런스가 쌓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수 많은 주니어들 사이에서 원석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으므로, 광부들은 노다지에 몰릴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마냥 욕하기도 애매한게 사실이다.
대학교를 진학하지 않거나, 비교적 짧은 학업을 거친 후 곧바로 취업에 뛰어드는 것도 나쁜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남들이 학교를 다니는 기간 동안 현업에서 구르며 엔지니어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오히려 같은 기간에 더 실력있는 개발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선뜻 주위에 추천하기는 쉽지않다.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학습하고 구직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이를 자력으로 해쳐나가는 비용이 적다고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주니어 개발자는, 당장 내놓을 입상이력이나 제품 출시경력이 있지 않은 한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의 덩어리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이겨 낼 결과물을 보이거나, 본인의 포텐셜을 알아봐주는 곳을 찾는 일이 쉽다고는 볼 수 없다.
즉, 본인이 실력이 있고 해낼 자신감이 있다면 가성비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적극 권하고싶다. 많은 분들이 느끼겠지만, 경력이 쌓이고 커리어가 늘어갈 수록 이 자체가 본인의 실력을 증명하고 불확실성을 없애는 수단이 된다. 곧바로 현업 전선에 뛰어드는 건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패스트트랙 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반대로 본인이 이럴 확신이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어린 나이에 미래의 본인의 흥미와 적성에 확신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싶다. (나는 아니었다)
이런 관점에서,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학교의 의의가 하나 있다. 그 의의는 앞선 글 가짜개발자라는 글을 쓴 후에서 지나가며 언급을 했다.
그래서 나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개발을 한 번 배워보라고 전도하고 싶다. 다만, 처음에는 남는 시간을 투자해서 가볍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기초부터 조금씩 공부해보며 개발이 본인에게 잘 맞는지 확인했으면 좋겠다. 이 분야에 재능이있거나 최소한 재미라도 느낄때 본인의 업으로 삼는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공자는 위의 과정을 이미 학교를 다니며 겪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다만 다른 전공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개발 공부에 도전할 때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도 없이 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본래 가짜사나이 글에서는 '비전공자'라는 단어를 글의 서두에 강조한 이유가 크다. 당장 '나는 개발자를 할꺼야'라는 생각으로 학원부터 등록하기 보다는... (중략)
학교라는 공간은 강제로라도 진로/적성에 대한 고민하게 해주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컨텐츠를 소화하고 주변의 학우와 선후배를 보면서 구체적인 분야를 정하거나 본인의 흥미를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본인에게 더 적성이 맞는 분야를 찾아 전과를 하거나 대학원을 진학하는 등의 선택지가 생긴다. 즉, 본인이 확신하는 정도에 따라 좋은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를 가느냐 가지않느냐, 어느 학교를 가느냐는 본인의 학습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주의적인 입장에서 같은 실력을 가진 개발자로 성장한다면, 어떤 과정이던 무슨 상관이 있을까. 중요한건 자신의 선택이 본인에게 적합한 길인가하는 질문이다. 그 방법을 선택하는 기준이 단순히 싫어하는 것으로 부터의 도피가 아닌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 대학을 갈 지 말 지 선택한다면, 나는 그냥 대학을 갈 것 같다. 대학과 동아리에서 공부한 걸 혼자서 공부하라면 못할 것 같고, 학교를 통해 직간접적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날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는 스타일도 못되고, 외향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며 받은 자극들이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것이 가성비있는 투자였던 샘이다.
반대로 혼자서 이루어 낼 수 있다면, 다짜고짜 현업에 뛰어드는게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누군지 말로 할 수 없지만, 내가 가장 크게 동기부여를 받는 분들 중에는 대학을 나오지 않거나, 소위 말하는 지방대학을 나오신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을 보며 학벌이나 학력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다. 물론, 나도 그 분들 만큼 잘 할수 있냐면 절대 아니다. ㅋㅋ.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방면으로 고려해서 본인에게 맞는 가치 판단을 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시간이 갈 수록 그렇게 학력 자체로 절대적인 기준을 내세우는 분위기는 줄어드는 것 같다. 기업들도 코딩테스트와 프로젝트를 앞세운 블라인드 채용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말이다. 모쪼록, 논쟁이 줄어들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로 휴학러로서 공감가는 내용이 참 많네요 ㅎㅎ
휴학을 이제 6년째 하고 있는데, 대학교 졸업 안해도 앞으로의 삶에 전혀 지장가지 않을 것을 깨달아가면서 복학의 길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복학한다면 대학원까지 가고 싶은데,
음... 나이먹고 대학원까지 가자니 참.... 고민이 많이 돼요
미래의 제가 결정하겠죠 후후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