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러창만 바라보고 있는 나, 이전보다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은진·2021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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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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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개월차. 위코드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쓰는 인턴 후기

개발자로서 첫 직장생활을 앞두고..

위코드에 오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3개월차 인턴이다. 혼자 공부한 기간까지 4개월 동안 코딩에 미쳐서 살면서도 하나도 지치지 않았던 건 정말 다양한 주변 환경들이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이지만, 그 중에서도 앞으로 개발자로서 인턴을 가게 된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내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개발자로서 첫 직장 생활을 해 본다는 건 너무나도 들뜨는 일이었다. 북적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애써 잠을 쫓고, 출입증 목걸이를 걸고 머쓱하게 인사하며 출근했다가 점심식사 후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을 들고 바람 내음을 묻히고 사무실에 들어와 열심히 코딩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동료들과 어색하게 지내다가 점차 조직 생활에 익숙할때 쯤 나는 프로젝트도 익숙하게 작업할 거고, 그렇게 한 달을 지내고 나면 분명 리액트 전사가 되어 멋지게 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턴의 기회가 나한테 주어진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2차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하던 홍대의 어느 한 에어비앤비에서, 인턴을 함께 나갈 팀과 기업이 발표됐다. 내가 가게 된 곳은 그린데이터. 신생 기업이라 정보가 부족했지만 데이터 시각화를 한다는 점, 그리고 내가 배운 리액트를 이어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 마음 속의 1위 후보였다. 그래도 함께 일하시는 분들과 합이 잘 맞아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인턴 관리를 해 주셨던 우리 사수님이신 정주님께 전화로 처음으로 연락 드렸을 때 기분 좋고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그런 걱정은 필요없게 되었다. 다만 놀랐던 점은 전일 재택이라는 점이었다. 심지어 작년부터 쭉 재택을 해 오셨다고 했다. 지원할 때는 부분 재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분임에 틀림없는 사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한 채로 한 달을 보낸다니 너무 아쉬웠다. 맥북을 들고 힘차게 출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는데.. 정말 오프라인으로 함께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맞는 동기들과 팀이 되어 재택근무를 함으로써 분명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2차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1, 2차에서 팀워크를 위해 내 욕심을 내려놓는 걸 배웠다고 해 놓고 그린데이터에 처음 지원하면서 나는 또 쓸데없는 욕심을 냈다. 기업 설명에 노드와 타입스크립트가 쓰여 있어, 한 달의 기간 동안 두 가지를 더 공부하고 사용하게 되면 내 이력서에 쓰여지는 기술 스택이 더욱 화려해질 거라고 기대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던 과거

알고 보니 그건 백엔드 팀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었고, 나를 포함한 프론트 팀은 리액트를 기반으로 상태관리를 위해 Context API를, 데이터 시각화를 위해 다양한 차트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게 됐다. 다른 기업협업 팀에서 프론트엔드 기술 스택이 나랑 좀 다르면 그게 괜히 부러웠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인 데이터 시각화를 여기서 할 수 있고 너무 좋은 사수님이 계시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 상황에 뭐가 이리 욕심이 많았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리액트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무슨 다른 기술을 또 배우려고 기웃거렸는지, 어차피 첫 주에 와장창 깨질 거면서 너무 거만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주어진 내 업무는 전기 사용량 데이터를 사업장 별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업무를 받았을 때는 금방 진도를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요구하는 좀 더 복잡한 기능을 구현하다 보니 기존에 내 지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내 프론트 팀메이트인 성훈님이 한 코드를 가지고 며칠이고 앉아서 붙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전에는 어차피 어떤 코드든 무작정 쓰다 보면 원리는 언젠가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점점 내가 치고 있는 코드의 문제점을 파악하려면 본질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본질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시작하다

3개월차가 되어서야 나는 결국 교보문고에서 [실전 리액트 프로그래밍] 책을 구매했다. 첫 자바스크립트 책이었다. 아예 지식이 없었던 몇 달 전과 달리, 이제는 내가 이미 가진 지식, 내가 이미 잘 몰라도 써 본 코드를 기반으로 책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긴 상태였다. 생각보다 내가 기계적으로 써 왔던 코드의 원리가 깊고, 기능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 한 페이지도 완전히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없었다. 기업협업에서 다양한 문제상황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원리를 파고들던 성훈님의 공부 방식이 맞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내가 욕심냈던 건 첫 주로 끝이 났다. 지금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더 화려하게 보인다고 해서 내 가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1, 2차 때 내가 기대했던 목표치를 수정하고 내려놓는 훈련을 시작했다면, 이번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심화해서 공부해야겠다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허겁지겁 적용하던 때에서 벗어나 이제는 수준 높은 코드를 짜기 위해 기초를 잘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턴경험을 통해 성장했는가

#항상 내 코드의 당위성 생각하기

첫 코드리뷰가 기억에 남는다. 인턴 첫 주에 업무를 받아 코딩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와 성훈님은 기존에 정주님이 사용하신 라이브러리를 따라 설치해서 메뉴와 버튼, 차트 등을 구성하기 바빴다. 2차 프로젝트 때 이미 합을 맞춰 본 상태라 우리는 진도를 쭉쭉 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주님이 우리의 코드를 보시고는 "왜 이 라이브러리를 선택했냐"고 물어보시는 거다. 우리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정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이 라이브러리를 왜 채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라이브러리 뿐만 아니라, 내가 이 기술을 왜 채택했고 다른 더 좋은 기술은 없는지 항상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적용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조언이었다.

그 말씀이 정말 한 달 내내 기억에 남아, 어떤 코드를 짜든 사람들이 똑같은 기능구현, 똑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사용한 방식을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어떤 것이 내 상황에 가장 적합한지 한 번이라도 더 고민을 해 보게 되었다. 특히 차트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때면 그 라이브러리에서 제공하는 문서를 보고 디테일을 하나하나 적용해봐야 하는데, 여러 차트를 적용해보려니 그게 정말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가장 사용성이 좋고, 이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차트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데 가장 공들인 것 같다.

#인턴들과 상사와의 관계 원만하게 만들기

함께 기업협업을 나간 교육생들의 리더로서, 나는 회사에서 상사와 동료와의 관계를 쌓아가는 요령을 배웠다. 동기들끼리 진행한 2차 프로젝트를 이끌 때와는 달랐다. 그 때는 우리 마음이 바로 법이라서 PM으로서의 내 역할은 팀의 목표를 현명하게 설정하고 수정하는 것과 팀의 스케줄 관리였다. 무엇보다도 팀의 스케줄은 규칙적으로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쌍한 우리 코드비앤비 팀은 매일 아침 8시 반에 스탠드업 미팅을 진행해야 했고 나는 은초리라는 별명을 얻었다(물론 결과물이 좋았기에 아주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기업협업 팀의 리더로서는 약간 역할을 달리해야 했다.

프로젝트 진행에 자율성은 부여되었지만 결국 상사의 지시가 우리같은 저렙 주니어에겐 법이었다. 리더라고 해도 그 어떤 추가적인 책임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겠지만, 나는 팀원들과 정주님 사이에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함께 인턴을 나간 동기들이 눈에 띄게 긴장하고, 회사 분들과 함께 단톡방에 있는 걸 다소 부담스러워했다. 나도 물론 처음 뵙는 분들이고 실전에 던져진 느낌이라 긴장하긴 했지만, 미팅 때나 단톡방에서 개발자 대선배님에 대한 예의와 친근함 표시를 넘나들면서 부던히 노력했다. 결국 나중에는 서로 긴장감도 많이 풀어지고 좋은 관계로 발전했다. 정주님이 나중에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길 내가 리더십이 있어 좋게 평가했다고 하셨다.

3개월차에도 함께해서 위코드다

아마 15기처럼 코로나 정부방침으로 3개월 내내 허우적댄 기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너무나도 행복한 3개월을 보냈다. 특히 마지막 기업협업 때까지 온갖 코시국을 다양한 형태로 극복해 나간 우리 동기들과 함께 위워크로 출퇴근할 수 있어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전의 프로젝트를 통해 다 함께 하는 공간에서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게 얼마나 도움되는지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위워크에서 재택을 하는 다른 기업협업 팀들과도 교류하면서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이야기하고 각자 쓰는 기술스택들, 그리고 각 기업의 분위기, 팀의 어떻게 협업하는지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또 출퇴근하시는 동기분들이 위코드데이에 위워크에 와서 함께 공부하는 날이면 너무나 반가워서 함께 이야기하고 밥먹고 신나게 같이 머리 싸매고 코딩했다. 집에서 업무를 보는 게 몸은 더 편할지 모르겠지만, 곧 회사를 고르게 될 입장에서 다양하게 간접경험을 할 수 있어 선릉으로 출퇴근하는 게 훨씬 맘에 들었다. 이직이 잦은 개발자 세계에서 첫 직장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웬만하면 내 맘에 드는 환경에서 하루라도 더 일하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지는 생각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특히 성훈님과 2차 프로젝트에 이어 3차 프로젝트도 함께 하게 된 게 정말 좋았다. 항상 함께 협업하면서 내가 뭘 더 공부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잘 가르쳐주고 둘 다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으면 함께 머리싸매고 고민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화를 많이 했지만, 그 와중에도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음이 잘 맞아서 분업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또 서로 보완되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는 재미가 컸다. 그런데 역시나 성훈님이 멘토가 되었다. 이 블로그 초안을 쓸 때만 해도 성훈님의 멘토 소식은 몰랐는데, 수료식 날 짠 하고 공개가 되었다. 기업협업 때처럼 아예 경력이 많으신 분과 일을 하는 것도 주니어 입장에서 무지 의미가 크지만, 나보다 한 발짝 더 앞서서 공부한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것도 매사에 큰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인턴생활의 모습과는 정말 달랐지만, 다른 모습으로 내게 정말 의미가 컸다.

그래서 다시, 난 어떻게 달라졌지?

기업협업 프로젝트 중에는 이전 프로젝트들과 달리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내 개발 실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빠졌다. 에러창만 바라보며 하루종일 고민했는데 정주님께 질문하니 너무 단순한 원인이었던 적이 많았다. 또 동기들과 함께 개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면 자존심도 상했다. 당시에는 그런 내 모습이 실망스럽고 답답했지만, 수료 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정상이었던 것 같다. 개발자라면 누구든 각자의 learning curve가 있을 거고, 내가 공부하는 모든 기간 동안 성장하기만을 기대하는 것도 욕심일 것이다. 나는 분명히 다른 부분에서 강점이 있는 사람이고, 그들은 그저 내가 아직 공부하지 않은 지식을 먼저 접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기업협업을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한 건, 내 코딩 실력의 수직상승 뿐만이 아니라 프론트엔드 개발팀원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회사에서 다른 직원분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개발 경력이 오랜 분들에게서 선배로서 조언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넘치게 충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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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프론트엔드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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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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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1일

정주님이 인턴분들께 굉장히 신경 많이 쓰시는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은진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도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이런 식의 회고 형태로 글 작성하는게 성장에 진짜 도움이 많이 되는데, 차근차근 잘 성장하고 계신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비록 저는 딱히 도움 드린게 없지만, 4월 이후에 다시 협업 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저도 도움 많이 드릴게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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