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나는 고민의 수렁에 빠져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몇 개월이 흐른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앞날이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직업이 존재했지만, 무엇이 내게 맞는 길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사실, 퇴사를 결심할 당시에는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거나... 정 할 게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글이나 쓰자. 뭘 해도 지금보단 낫겠지...'라는 태평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고 세상의 벽은 생각보다 거대한 법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삶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고, 나는 빠른 항복을 선언했다. 그렇게 새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유튜버를 통해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튜버의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개발자의 삶은 매력적이었다. 개발자들은 수평적인 조직에서 자유로운 복장으로 일하고, 전문성까지 갖춘 것처럼 보였다. 직업의 단면만을 보고 내린 성급한 판단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개발자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비전공자의 커리어를 전환을 돕는 교육 기관(부트 캠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위코드 수강생들이 겪었던 과정과 다르지 않다. 부트 캠프를 검색하던 중 위코드에 대해 알게 되고, 고심 끝에 학원 등록을 하게 되는 일련의 절차 말이다. 그렇게 위코드에 오게 됐다.
위코드에선 개발자가 되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이전 글 <1차 프로젝트 회고록>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바로, 개발 외적인 부분에서 위코드를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이다.
가장 큰 수확을 꼽아 본다면 '나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삶에서 앞날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예측 가능한 전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불안을 해소해준다. 나의 경우, 지금껏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 없이 살아왔다. (아마 대한민국의 청춘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 알지 못하니 괴로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오리무중이었다. 주변에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설정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부러움 반 의구심 반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믿음이 있다니 대단하구나... 그런데 그 일을 실제로 해보고 내린 결정일까? 혹여 남들이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건 아닐까?'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이러한 의구심에서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다양한 일을 경험하려 했다. 외주 제작사에서 다큐 제작을 해보기도 했고, 방송사 공채 시험을 준비한 적도 있다. 마케팅에 관심이 생겨 관련 국비 교육을 받은 적도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어느 기업 문화재단에서 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 많은 걸 했지만, 마음이 개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나는 문화재단에 취업했을 당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방황하던 나의 행보도 막을 내리리라 생각했다.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더 이상 '내게 맞는 일'이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나의 성격은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회사 생활 내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을 품었고, 결국 고심 끝에 퇴사를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무수히 많은 삶의 가능성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백수의 세계로 돌아왔다.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의구심을 해소해줄 새로운 일을 찾는데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구심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여전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심이 서지 않았다. 처음 개발을 해보기로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이 나라는 사람과 궁함이 맞는 것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개발자가 성장 가능성과 자율성이 높은 직업이라는 사실 50%,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 50%가 더해져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찾아왔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앞날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여 언제부터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위코드에 오게 된 후부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원인을 생각해보니, 위코드에서 보낸 3개월 동안 나 자신이 개발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개발자로서 내가 살아가게 될 나날들을 떠올리고 그려보고 있던 것이다. 마음 한구석을 지배하던 의구심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변화가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생전에 겪어보지 못하던 일이니까. 여전히 약간의 의심도 공존하고 있다. 아직 현업을 체험하지 못한 초보 개발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 않던가. 짧지만 알찼던 위코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기분 좋게 커리어의 출발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도 나의 인생은 여전히 가시밭길의 연속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세상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조타용 키를 하나 정돈 마련하는 데 성공한 기분이니까. 이제 힘차게 항해를 시작하는 일만 남은 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그동안 수많은 선택과 삑사리의 경험을 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솔직히 말하면, 원래 회고록을 작성할 마음은 없었다. 글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갈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velog에 정리할 필요가(사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위코드에서 취업 준비의 일환으로 회고록 작성을 권유했고,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리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그런데 막상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제법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됐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뒤죽박죽 얽혀있던 나의 작은 감정과 사소한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는 기분을 느끼게 됐다. 아마 그만큼 위코드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뜻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위코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이야기의 개별적인 디테일은 달랐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선 보편성을 갖고 있었다. 기존에 걷고 있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측면에서 나의 이야기가 그들과 비슷함을 느꼈고, 그들이 느꼈던 감정이 내가 느꼈던 감정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어떻게 보면, 위코드는 단순한 부트캠프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공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심 끝에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능성을 실험하는 곳. 나아가 앞날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얻어가는 곳. 그것이 위코드가 가진 또 다른 면모가 아닐까. 이제는 위코드에게 고마움의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코드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