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병특 개발자의 삶 (1)

개발자: 67·2020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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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mp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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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시절, 내 친구는 본인이 가진 재능을 발휘하여 멸공 판정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복무생활 중에도 틈틈히 실력을 갈고 닦아 코딩 괴물이 되어서 복학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며 다짐 했다.

나도 군대 🐕꿀 빨아야겠다고.

🫡 병특?

내 소개부터 잠깐 하자면, 유사 컴공과 학생이다. 정확히는 스마트시스템소프트웨어인데, 아무튼 대충 그렇다.

이렇게 컴공 관련학과에 있으면 좋은 혜택이 하나 있다. 바로 대체복무를 통해 관련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것.

⚠️ 현 시점 2023년에 이 제도가 이전처럼 정상 운영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적어도 2016년 기사에 따르면 이미 폐지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대체복무라 하면 다음의 두가지가 있다:

  • 전문 연구 요원
  • 산업 기능 요원

전문연구요원은 석사생 이상이다. 도저히 나는 석사를 갈 머리는 못되기에 진작에 그건 포기했고, 후자가 그나마 가능성 있어보였다.

산업기능요원은 보통 국방부 지정을 받은 중소/중견기업 등에서 회사 녹을 먹으며 자신의 군 복무 기간을 태우게 된다. 그 중 정보처리 계열 산업기능요원은 병특의 꽃중의 꽃으로, 전도유망한 IT기업에서 인턴 혹은 운 좋으면 그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군 복무를 해결 할 수 있게 된다. 이후에 경력으로써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좋은걸 왜 다들 하지 않냐고? 일반인이라면 통과하기 힘든 자격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비범한 피지컬이다.

"은둔형 코딩덕후"

💻 어떻게 개발자가 되었나

내가 스타트업 개발자가 된건 아주 운 좋은 계기였다.

방학만 되면 난 병역업체를 찾아다녔다. 뭐 그렇다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찾아다닌건 아니고, 병특으로 잘 들어간 학교 선배의 조언을 먼저 구했다. 뭐 국방부 병역일터나 사람x, 잡코리x 등등 찾아보면 다 있다고 하더이다. 꼴에 눈은 높아서 "알집"을 만든 회사 등등 이름 있는 곳들을 추려서, 몇 군데 지원해보았다.

그리고 전부 광탈했다 (...)

그렇게 몇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 포기할까 생각할 즈음인 어느 날, 페이스북을 들어갔다. 학교 선배의 피드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앞서 말했듯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비범한 피지컬을 가진 나는 바로 지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메일로 채용 담당자와 소통할 수 있었다.

간단한 코딩 과제를 받았다. 짜올 시간을 2주나 줬다 (!)

전화면접도 했다. 학교 프로젝트 경험을 횡설수설하며 설명했다 (!)

합격

이렇게 쉽다고?

인생은 역시 학연혈연지연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스타트업 라이프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어쩌다보니 5년차 임베디드 개발자가 되어있다.
사실 4급 병특은 23개월만 일하면 되지만, 나는 무려 3년을 더 한 셈이다.
나와 같이 들어온 병특 개발자는 나 포함 4명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복무기간이 끝나자마자 나갔다.
왜 남들과 다른 결정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답하긴 힘들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가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

2018년 8월 1일.
입사 첫날, 나는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직속 상관이 없었다. 배정된 팀도 없었다.
이유는 바로, 나는 현업에 바로 투입 가능한 인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병특 개발자들은 프론트엔드, 백엔드, 안드로이드 같은 개발 배경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었고, 어웨어의 한국 지사에는 그들을 지도해줄 개발자들이 한명 이상씩 있었다.

나는 C언어 밖에 못하는데요...?

학교에서 남들 다 웹과 앱할 때, 난 혼자서 반골처럼 C하고 아두이노만 팠었다.
이 회사에서 나를 그나마 써먹을 수 있는 곳은 펌웨어였는데, 펌웨어 개발자는 미국에 있단다 (...)

그렇게 🐕꿀 빨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가는 도중, 회사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고 "신제품을 위한 연구개발"을 맡기기로 결정한다😱. 외주개발자가 하던 일들을 인수인계 받고, 상업용 C코드를 분석하고 빌드하고 하드웨어에 올려가며 실험해야했다.

시간은 열심히 흘러 4개월이 됐다. 당연히 잘 될 리가 없었다. 풋내기 개발자가 쓸만한 결과물을 낼 수 있을 리 만무하지.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마주한 코드들은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했고, 거의 번아웃이 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용기를 내어 그 미국인 개발자 중 한명에게 연락을 취해보기로 결정한다. 내가 연구개발에 사용하던 것이 TI사의 SDK였고, 그의 링크드인 프로필에는 TI 인턴을 한 이력이 있었으니 왠지 그 사람이라면 답을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훗날 내 매니저가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펌웨어 개발자들은 한국에 있는 나의 존재를 알게된다. 펌웨어를 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혼자서 끙끙대며 시간만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시간과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나를 함께 이끌어주기로 결정한다. 그 당시 미국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팀 매니저님의 중재로 미국인 펌웨어 개발자들과의 첫 화상 대면이 시작됐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UC 버클리 박사 학위, 현재는 구글 자회사인 핏빗이나 테슬라 수퍼차저 펌웨어 개발자 출신, 그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정말 운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병특으로 회사에 들어올 때는 정말 꿈도 못꿨던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펌웨어 팀에 소속하게 되고, 내가 질문했던 그 분은 내 매니저가 되었다. 이젠 펌웨어 버그 수정 작업들을 하나 둘씩 받으며 그들이 작성한 프로덕션 코드를 보게 되었는데, 충격을 받았다.

C로 이런 코드를 짠다고?

학교에서 배운 형태와 사뭇 달랐다. 혼자 연구개발 할 때 SDK에서조차 복잡하고 읽기 힘든 C코드만 보았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짜는 C언어 코드는 굉장히 간결해서 Python처럼 읽혔고, OOP 언어에서만 되는 줄 알았던 캡슐화나 다형성 같은 것들을 전부 익숙한 C언어 문법으로만 구현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C언어가 오래되었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게 되었다. 충분한 이해를 갖고 단순하게 짜는 패턴만 익힌다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들의 지식을 흡수하고 싶었다. 미국인 펌웨어 개발자들은 단기 프로젝트를 위해 종종 한국에 왔는데, 질문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했다. 개발도 영어도 그때 가장 많이 배운 것 같다.

제품에도 애정이 붙기 시작했고, 깔끔한 펌웨어 코드를 짜고 미국인 동료들에게 피드백 받는 과정이 즐거워졌다. 매일 아침 일찍 9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간에 맞춰 하는 스탠드업 미팅 시간이 기다려졌을 정도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미국인 개발자들도 좋게 봐주었고, 친구처럼 또는 선후배 관계처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이제는 꽃길뿐일 줄 알았던 내 스타트업 라이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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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임베디드 개발자

10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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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31일

멋있다... 갓준철....

그나저나 머리에 들어있는 PCB 보드 펌웨어는 언제 업데이트 할 예정인가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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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31일

헉 예전글 업데이트됐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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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일

대단하시네요~ 다음 시리즈도 부탁해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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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4일

글 디게 잘쓰시네용
잘 읽었습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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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8일

너무 재밌어요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