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은 미적분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극한 없이는 미분과 적분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학적 정의를 생각해보면, 미분과 적분 모두 특별한 극한에 지나지 않죠.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르키메데스의 증명이 극한이 무엇인지를 정말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르키메데스와 함께 극한이 무엇인지 살펴보러가겠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그의 시대에 현대의 적분법이라는 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원이나 원기둥 같은 도형들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기 위해 극한 개념에 가까운 접근법을 사용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접근법은 도형을 무수히 많은 작은 부분으로 나누고 이를 합하여 전체의 넓이나 부피를 구하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러한 아르키메데스의 접근법은 현대의 적분법의 기본 원리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적분 이론은 함수 아래의 영역을 작은 사각형들로 나누어 그 넓이를 합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각형들의 넓이를 무한히 많이 합하면서 사각형의 넓이가 0에 수렴하는 극한을 취하게 되면, 이는 함수 아래의 영역의 넓이를 의미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함수 아래의 영역의 넓이를 구하는 것이 바로 리만적분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원의 넓이 구의 부피등을 구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아르키메데스는 귀류법을 통해서 원의 넓이가 임을 보였습니다. (참고 문헌 : Did Archimedes Do Calculus? )
사실, 이들은 공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증명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자는 의미에서, 공리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점 그리고 점 에 대해서, 선분(직선의 일부로서) 이 그것과 다른 모든 와 를 잇는 곡선의 길이보다 짧습니다.
만약, 와 를 잇는 두 convex 곡선이 선분 를 기준으로 아래 그림과 다음과 같이, 한 곡선이 다른 곡선과 선분 로 둘러싸인 도형안에 들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곡선의 길이가 바깥쪽 곡선보다 짧습니다.

와 를 잇는 convex 곡선이란, 그 곡선과 선분 로 둘러싸인 도형이 convex이도록 하는 곡선을 뜻합니다. 도형의 임의의 두 점에 대해서, 그 두점을 이은 선분이 도형에 속하면 그 도형을 convex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이 그려지는 곡선은 convex 곡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음 두 문장이 직관적으로 당연히 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공리를 참이라 받아들이게 한, 기하학적 직관이 있거든요. 물론, 앞서 말한 공리에 기반하여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여러분이 아래 내용을 쉽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저는 그러한 증명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리가 아니니깐요. )
원을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둘레의 길이는 그 원의 둘레보다 항상 큽니다.
원을 내접하는 정다각셩의 둘레의 길이는 그 원의 둘레보다 항상 작습니다.
먼저, 제가 언급한 공리들은 현대수학의 입장에서는 공리라고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수학이 발전하면서 (ex) 비유클리드 기하학 발견) 아르키메데스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길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증명은 현대의 기준에서 완벽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해석학에 대해서 조금만 알더라도 아르키메데스의 증명에 쓰이는 생각의 방식이 해석학 증명에 자주 쓰이는 기술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이디어와 접근이 올바르며, 후대 사람입장에서 그의 논증을 수학적 증명으로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점에서 제 생각에 그의 증명은 매우 통찰력 있고 중요한 것이며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매우 뛰어난 인물입니다.
먼저, 정다각형의 둘레의 길이와 넓이를 생각해봅시다. 모든 정다각형은, 원 위에 등간격으로 점을 찍고 연결하여 얻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원의 중심에서 원위의 점으로 이은 선분을 이으면 정다각형은 여러개의 삼각형으로 나뉘어 지며, 정다각형의 넓이는 각각의 삼각형의 넓이의 합이 됩니다. 예를들어서, 다음 그림을 잘 관찰하면, 정육각형의 넓이는 (외접하는) 원의 반지름의 길이로 구성한 정삼각형 6개의 넓이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각형의 넓이는 분할하여 얻은 삼각형의 넓이의 배가 됩니다.

분할된 삼각형의 넓이는, 다음과 같이 밑변과 높이를 생각해서 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밑변은 정각형의 둘레의 길이의 이고 높이는 원의 반지름보다는 작습니다. 따라서, 정각형의 넓이는 (삼각형의 넓이) 높이 정 각형의 둘레의 길이 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높이는 그림에 추가한 선분의 길이, 즉 원의 반지름을 이라 했을때, 에 해당하는 값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높이는 원의 반지름보다 항상 작습니다.
따라서, 다음 결론을 얻습니다. 반지름이 인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의 넓이를 라 하면, (당시에도 원의 둘레의 길이가 반지름에 정비례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원의 둘레의 길이를 이라 정의하면,
편의상 이라 두고, 반지름이 1인 원에 내접하는 정 각형의 넓이를 이라 합시다.
그리고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를 라 합시다. 그리고 의 아르키메데스 증명을 살펴봅시다.
아르키메데스는 귀류법을 사용해서, 단위원의 넓이 가 를 만족함을 보였습니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를 가정하자. 그러면, 은 양수 이다. 한편, 를 만족하는 자연수 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모든 에 대해서 이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수 에 대해서, 이므로, 이 항상 성립하고 특정 자연수 에 의해서 를 얻는다. 즉, 가 성립하며, 모순이다. 따라서, 이다.
아르키메데스의 논리를 극한을 이용해서 깔끔하게 기술하면, 이렇게 되겠군요.
이고 이므로, 이다.
주의: 보이려면, 을 보이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수열 의 단조성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 논증에서는 수열의 단조성을 보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르키메데스 논증은 위 식에서 대신 를 사용하여 기술한 것에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여튼, 아르키메데스 증명에서 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보이는 것은, 이 포스트에서 하지 않으며, 궁금하면 참고문헌에서 찾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수식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금만 설명하겠습니다.
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와 은 아래 그림에서 흰 영역입니다.

다시말해서, 붉은 영역의 넓이가 각각 과 에 대응합니다. 오른쪽 붉은 조각의 개수는 왼쪽의 정확히 2배입니다. 따라서, 은 왼쪽 그림에서의 조각 한개가 오른쪽 그림에서 조각 두개의 두배보다 (즉, 작은거 4조각보다) 넓다는 의미입니다.

원에 외접하는 정다각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위에서 내접하는 정다각형의 경우와 비슷하게 접근하여, 그 넓이가 임을 얻습니다. 단, 원에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둘레의 길이는 원의 둘레의 길이보다 크다는 점이 (내접 정다각형의 경우와) 다르므로, 다음 부등식을 얻습니다.

편의상 이라 두고, 반지름이 1인 원에 외접하는 정 각형의 넓이를 이라 합시다.
그리고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를 라 합시다. 그리고 의 아르키메데스 증명을 살펴봅시다.
를 가정하자. 그러면, 은 양수 이다. 한편, 를 만족하는 자연수 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모든 에 대해서 이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수 에 대해서, 이므로, 이 항상 성립하고 특정 자연수 에 의해서 를 얻는다. 즉, 가 성립하며, 모순이다. 따라서, 이다.
아르키메데스의 논리를 극한을 이용해서 깔끔하게 기술하면, 이렇게 되겠군요.
이고 이므로, 이다.
주의: 아르키메데스 논증은 위 식에서 대신 을 사용하여 기술한 것에 대응합니다.
아르메데스의 이 논증은 수학에서의 극한 개념을 통해 현대 수학으로 잘 번역됩니다. 이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엡실론-델타' 극한의 정의와 그 정의의 의미를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는 수열 과 수열 의 단조성을 가정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래 논증만 보면,) 단조성이 필요없지만, 극한과 연결지어서 설명하려면 단조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수열의 단조성(monotonicity)은 해당 수열이 계속 증가하거나 계속 감소하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수열의 극한을 이해하기 위해 아르메데스 논증에 사용한 두 수열을 다시 증명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내접하는 정다각형의 경우:
이 때, 모든 에 대해 입니다. 또한, 정다각형의 변의 개수가 증가하면서 의 값이 점점 커지고 원의 넓이 에 수렴합니다.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경우:
여기서 모든 에 대해 이며, 정다각형의 변의 개수가 증가함에 따라 의 값은 점점 줄어들고 원의 넓이 에 수렴합니다.
그럼 이것이 왜? 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편, 극한의 성질에 의해서 다음이 성립합니다.
이것이 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상합니다. 왜? 대신 이고 대신 로 바꾸어지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이것은 ... 극한의 성질입니다.
극한의 성질 : 만약 수열 과 이 극한이 존재하고, 모든 에 대해서 이라면 이 성립합니다.
여기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냥 극한의 성질을 그런 갑다하고 받아들이거나, 극한의 성질을 이해해야합니다. 결국 우리도 아르키메데스가 했던 것처럼, 논증을 해야 이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논증을 위해서는 극한의 엄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극한의 성질을 그냥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더라도, 정리를 만든 수학자가 생각하는 수열의 극한의 정의와 내가 그 정리를 적용하고자 하는 상황이 잘 들어맞는지 점검은 필요해서, 그 경우에도 극한의 정의를 알아야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논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다음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편, 를 만족하는 자연수 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모든 에 대해서 이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에서 양수 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를 만족하는 자연수 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결국 그의 논증과 현대의 극한 개념을 연결지으려면 '엡실론-델타' 정의를 사용해야 합니다.
수열의 극한의 엄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열 의 극한이 이라고 하면, 임의의 양의 실수 에 대하여 적당한 자연수 이 존재하여, 모든 에 대해 이 성립한다.
이 정의를 통해 아르키메데스의 논증을 다시 살펴봅시다.
원의 넓이를 라 하고, 내접하는 정다각형의 넓이를 ,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넓이를 이라 합시다. 그러면 임은 명백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와 이 원의 넓이 에 수렴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라는 성질을 발견했습니다. 이 성질로부터, 우리는 어떤 작은 양수 를 선택하더라도, 적당한 이 존재하여 모든 에 대해서 가 되도록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정 에 대해서 이고, 수열 이 를 만족하면서 점점 커지기 (단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극한의 '엡실론-델타' 정의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는 여기서 에 해당하며, 아르메데스의 성질에 따라 적당한 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논리를 외접하는 정다각형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논증을 통해 내접 정다각형의 넓이 와 외접 정다각형의 넓이 이 모두 원의 넓이 에 수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것은 수열의 극한의 성질을 적용하는 거 입니다.
이제 수열의 극한의 성질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수열의 극한의 성질 설명:
가 보다 크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어떤 이후로 모든 은 보다 크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의 성질과 모순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을 충분히 작게하면, (라는 가정에 의해) 자체가 보다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후 모든 이 보다 크게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논리로, 가 보다 작다고 가정하면, 어떤 이후로 모든 은 보다 작게 됩니다. 이는 의 성질과 모순됩니다. 따라서
극한은 실제로 미적분학의 핵심이며, 그것 없이는 미분과 적분을 이해하거나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어떤 함수의 특정 지점에서의 동작을 파악하기 위해 극한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극한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함수의 극한도, 수열의 극한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이제, 극한의 엄밀한 정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극한의 정의:
함수 의 에서의 극한이 이라는 것은, 모든 에 대해 존재하는 가 있어서, 이면 이 성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