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발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도 외국어과 대학교도 경영학과 그나마 컴퓨터와 관련이 있는 거라면 '게임' 정도가 있을것이다.
대학교 졸업후 이런저런 일을 해본거같다. 돈을 벌려면 돈이 움직이는 곳으로 가야한다며 회계관련 자격증을 취득후 세무회계 사무소에서 세무회계 관련 일도 해보고, 옷을 좋아하기에 의류 브랜드에서 매장직원으로 일하고 그러다 번듯한 회사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게 좋을거 같아서 면접제안이 온 공구및 생활가전 쇼핑몰에서 고객지원팀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급여는 높지 않았으나 복지가 좋고 안정적인 느낌이 들어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점점 다니면 다닐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것이 아닌 가만히 서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당시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내 업무는 내가 아닌 그 누가 와서도 할수있는 일, 이 직무에서 오래있고 경험이 쌓여도 차별화가 없을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가 한창 휘몰아칠때 sns와 뉴스를 통해 개발자라는 직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개발자에 대해 알아봤을때 고액의 연봉이 눈에 들어왔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의 길이 열려있으며 혼자서 성장하지 못하면 안된다는게 강하게 다가왔다.
이미 현재의 직무에서 미련이 없고 마음이 떴으니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퇴사후 생각을 해보았다. 개발을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일단 배우는것도 중요했으나 빠른 취업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독학은 제외했다. 취업연계와 기간을 기준으로 학원을 알아보던 중 항해99가 비교적 짧은 교육기간과 취업연계를 가지고 있기에 바로 신청하여 7월부터 항해8기로 합류하였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이 뭔데 java, spring이 뭐냐고..
정식 교육기간 전에 제공된 강의를 들으면 된다 하기에 그 강의를 약 3번 정도 들으며 코드를 쳤던 거 같다. 내용은 python과 기본 html, css였던 거 같다.
강의를 들으면서 따로 토이 프로젝트도 신청했지만 강의를 들어도 강의 내용을 어떻게 토이 프로젝트에 녹여내는지를 몰라서 다른 분들이 치는 코드만 열심히 읽었던 거 같다. 교육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조별 과제에 투입되었다. 미션 내용은 하나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우리 조는 여행했던 지역에 대해서 리뷰를 작성하는 게시판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코드 몇 줄이라도 기여를 했던 거 같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선택하고 프레임워크를 선택하는 순간이 왔다. 사전에 각 언어별로 초빙된 멘토 분들이 강연을 해주셨지만 그날 사정이 생겨 다른 강연은 듣지 못하고 java와 Spring뿐이 듣지 못 했던 거 같다.
멘토 분의 기억나는 말씀은 대한민국은 거의 JAVA 공화국으로 배워두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하셨던 거게 기억이 남아서 Java를 선택해서 과정을 진행하면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과정 내내 어리둥절하면서 구글링을 하며 따라쳤던 기억만 남은 거 같다.
파이널 프로젝트를 끝내고도 java라는 친구와는 전혀 친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항해 과정 중 친해진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같은 주제로 공부하여 내용을 공유하는 방식의 스터디는 아니지만 daily 별 todo를 만들어 그것을 사진으로 증빙하여 완료하는 방식의 스터디였다. 이때서야 java라는 친구를 조금이나마 사용하게 될 수 된 거 같다.
어? 내가 취업이 되기는 했네?
2023년 1월 헬스케어 관련 서비스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구성인원 총 5명 중 개발 인원은 프런트 개발자분 1분과 백 앤드 개발자 '나' 단 2명이었다.면접 당시에는 아직 bm이 없어 수익은 없었으나 개발 중인 서비스의 mvp는 개발이 끝나서 이제 론칭 준비 단계만 남아 내가 할 일은 기존 기능의 유지 및 보수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입사 후 말씀하셨던 론칭은 일어나지 않고 서비스의 기능 고도화 아이디어만 추가될 뿐 이였다. 그러다 약 4월 기존의 서비스를 포기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헬스 트레이너를 겨냥한 스케줄 관리 앱을 BM으로 하여 제작하게 되었다.
오로지 혼자서 백엔드 플랫폼을 담당하게 되니 앞이 캄캄했다. 여태까지는 같은 누군가와 같이 고민하고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그래도 나는 나름 긍정과 적응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가 보다 새 프로젝트를 만든다는 결정을 통보받고 하루 정도는 불안감에 시달렸으나 다음날부터는 그냥 일단 머리 박고하다 보면 되겠지 다 방법이 있겠지 마인드로 업무에 몰입했다.
하다 보니 정말로 안 되는 것은 없었다. 아직 트래픽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며 MVP 기능 역시 쉽게 생각하면 여태까지 했던 crud와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머리가 아팠던 거는 테이블의 수가 조금 많았다고 느껴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들면서 개발이 이렇게 재미가 있는 거였나 처음 느껴봤던 거 같다. 프런트 개발자 분과 하나하나 소통하는 것, 내가 작성한 코드들이 깨끗하지는 않더라도 작동을 하며 프런트와 통신하여 앱을 움직인다는 거, 테스트 서버에서 QA 중 작동이 안 되어 꼭두 새벽에 노트북을 켜서 어디가 문제인지 분석하는 거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게 다가왔다.
네? 퇴사 통보라구여? 이렇게 갑자기? 이제 막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MVP 기능은 정해진 기간내에 순조롭게 완성되었다. 심지어 기간이 조금 남아 직원들의 지인들에게 서비스를 홍보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하며 선제적으로 고도화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론칭일자는 계속해서 미뤄지기를 반복하며 의미없는 아이디어 회의만 계속 하다 다시 하번 서비스의 ui/ux부분에 대한 개선과 앞으로의 방향성 회의를 일주일간 할거라는 결정을 통보받았으며 그 기간동안 서비스에 필요한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에 넣으라는 업무지시를 금요일에 받았다. 주말이 지나고 회사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하게 되어 나는 준비도 없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일단 몸부터 회복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아토피는 일하면서 어긋난 식습관(운동을 좋아해서 점심시간에 햇반 하나와 닭 가슴살 2팩 핑크 솔트만 6개월 동안 먹음) 때문에 일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온몸을 긁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생긴 상처에 진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한의원에 다니면서 아토피를 치료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나름 졸업후에 공백기간없이 일은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공백기간을 길게 잡고 여행도 다니기로 생각했다.
더이상 나태해지지 말자
24년 2월에서야 몸 상태가 조금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 중이다. 23년도 1월에 정말로 운 좋게 취업이 된 거 같다. 이력서를 적으면 내가 다시 개발자로 취업이 가능할까?라는 두려움에 휩싸일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 두려움에 휩싸일 때마다 걱정하고 있을 바에 포트폴리오로 무엇을 만들고 넣을지 고민하고 커밋 버튼을 누르자라고 다시 마음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