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시점: 최애의 향수²

Flowmap·2026년 4월 22일

취향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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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추천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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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선 최애를 향수로 만들어주는 이 서비스가 얼마나 재밌는지를 다뤘다. 이번 편은 그 반대편, 재미 뒤에 숨은 구멍 얘기다.)

먼저 밝히고 시작한다. 나는 이 매장 주인도, 이 향수 프로젝트를 만든 기획자도 아니다. 심지어 향수 전문가도 아니다. 그냥 이런 덕질 2차 창작 요소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서비스를 하는 매장도 있구나?"에서 출발해 잡은 주제일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철저히 한 자리에 서 있다. 관심이 생겨 찾아온 비전문가 고객은, 현장과 AI 테스트에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매장 운영이나 매출이 아니라, 딱 그 고객의 자리에서만 뜯어본다.

추천이 많아질수록 생기는 역설

취향 기반 추천 서비스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음악, 영상, 음식, 그리고 이제는 향수까지. AI가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당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주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추천을 받고 나서도 사람들은 종종 확신하지 못한다.
특히 향처럼 무형의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향수는 맡아보기 전까지 알 수 없고, 맡아본다고 해서 내가 원하던 것인지 바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취향 데이터를 아무리 정교하게 입력해도, 결과물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악센트 아이디(AC'SCENT IDENTITY)의 서비스 흐름도 이 지점에서 한 번 멈추게 된다. 최애의 이름, 스타일, 이미지를 입력하고 AI 추천을 받는 경험은 분명 재미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실패보다 무서운 건, 실패를 수습할 수 없는 것

추천이 빗나갔을 때 사용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향수라는 영역의 특성상, 일반 사용자는 전문 언어가 없다. "뭔가 다른데"는 알겠지만, "탑 노트의 시트러스가 너무 강해서 미들 노트인 플로럴이 묻혔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수정 요청을 하더라도 "이거 좀 달콤하게 해주세요" 정도가 최선이고, 직원도 그 막연함을 구체적으로 옮기기 어렵다.
이 경험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향수에 대한 아쉬움이지만, 향수를 쓸 때마다 그 기억이 소환된다. "뭔가 아닌데"라는 감각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향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직원 응대가 불친절했나? AI 추천이 별로였나? 거기까지 찾아가는 게 맞았나? 아무 상관없는 요소들까지 불만의 그물에 걸린다.
문제의 본질은 추천의 정확도가 아니다. 실패를 다룰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추천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설계한다면

해결의 방향은 하나다. 사용자가 스스로 조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AI가 배치한 태그와 향 노트를 사용자가 직접 보고, 건드리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과정에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납득은 결과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과정에서 온다.

To-be 1: 변경하는 경험

AI 추천 결과 화면에서 사용자는 배정된 태그와 향 노트를 변경할 수 있다.

와이어프레임 1: 변경 경험 - 슬라이더 레이블이 조금 다른 것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다루겠다.

태그와 향 노트는 최대 2개까지 교체할 수 있다. 변경 전/후를 나란히 두고 비교할 수 있으며, 수정은 각각 1회씩만 허용한다.

여기서 핵심은 수정 횟수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무한 수정이 가능하면 오히려 선택 피로도가 높아진다. '딱 한 번씩만 가능하다' 이 제약이 사용자를 오히려 더 신중하게, 더 능동적으로 만든다.

물론 이건 매장 데이터 없이 관찰과 추론으로 세운 가설이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근데 내가 굳이 '무제한'이 아니라 '1회 제한'을 만지려는 이유가 있다. 이 서비스는 수정 전 → 시향 → 수정 후 → 다시 시향으로 흐르는데, 후각은 우리 감각 중 가장 빨리 지친다. 피로가 쌓이면 아예 못 맡기도 한다. 무제한으로 고칠 기회가, 오히려 처음 원했던 향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이 지점을 건드린 이유다.

To-be 2: 사용자 특성 반영

와이어프레임 2: 완료 단계

이 때 사용자 자체가 "향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것을 디폴트 값으로 두고 결정 피로도가 큰 세그먼트를 우선 시 하여, 처음부터 향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아닌 구입 확정 단계에서 팝업을 통해 '아니요' 선택 시, 어떤 항목을 어디서 다시 조정할 수 있는지 온보딩이 안내된다.

향 노트를 조정하기 전, 사용자는 탑/하트/베이스 3단계 구조와 각 단계의 지속 시간, 강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탑 노트는 처음 맡는 향이지만 가장 빨리 날아가요. 베이스 노트는 가장 오래 남아요." 같은 수준. 노트를 수정할 때 각 향이 어느 단계에 속하는지 시각적으로 표시된다.

향에 대한 언어가 없는 사용자가 적어도 "어디를 바꾸고 싶은지"를 가리킬 수 있게 된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최소한의 맥락이면 충분하다.

자, 이제 To-be 2가 '방향만 가리키게' 하는 설계였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갈 수 있다. 그 '방향 가리키기'를 덕질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기능이 서사가 되는 순간, 한 번이 다음을 만든다

향 세기를 조절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단순히 "강하게 / 약하게"라고 표현하는 대신, "나에게만 부드러운", "분노 중인" 같은 상황 기반 표현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향 세기를 고르는 행위가 곧 최애가 서 있는 장면을 더 정확하게 다듬는 경험이 된다. 슬라이더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장면을 고르는 것처럼.

이렇게 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최신화에서 엄청 화나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 분위기로 만들었어요"가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향수를 소개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향이냐"가 아니라 "어떤 장면을 상상했냐"로.

이 변화는 두 방향으로 작동한다. 처음 온 사람은 향을 고르는 게 아니라 장면을 고르는 경험에 끌려 더 깊이 들어오게 되고, 한 번 만들어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품게 된다. "슬펐을 때의 향은 어떨까?" 같은 것처럼. 향수 하나가 끝이 아니라, 최애의 다른 장면들을 계속 채우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는 곧 리텐션으로 직결된다.

실패한 경험이 데이터가 되는 구조

여기까지 설계가 되면, 사용자의 선택과 수정 과정은 단순한 UX가 아니라 데이터가 된다.
어떤 태그를 선택했을 때 어떤 수정 요청이 가장 많이 발생했는지. 특정 향 노트에 대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이 무엇인지. 최애의 이름이나 이미지가 비슷한 경우 어떤 방향으로 수정이 집중되는지.

그리고 이런 매장의 현장 직원은, 아마 향수 덕질을 하다 그 일에 들어선 경우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손님이 "좀 더 분노 중인 느낌"이라고 뭉뚱그려도 그 말을 알아듣고 태그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향 후 손님의 피드백을 어드민에 기록한다. 입력 방식은 자유 입력이 아니라 AI 태그 기반 선택이다. 40개 내외의 태그 중 해당 향 노트와 연관된 것을 고르고, 수치 조정이 필요하면 슬라이더로 입력한다.
(예: '파리지앵' 태그 선택 → 연관 노트 '바닐라' 표시 → "더 가볍게" 요청 → 기본값 5에서 2로 조정 기록)

입력이 지나치게 길거나 자유도가 넘치면 현장 직원의 부담이 커지고 데이터 품질도 낮아지기 때문에, 구조화된 입력 틀이 핵심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서비스는 진화한다. "정확한 추천"에서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 추천"으로. 특정 캐릭터 이름으로 쌓인 빅데이터가 곧 "그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납득하는 향"의 기준이 된다.

취향 서비스의 핵심은 맞추는 것이 아니다. 틀렸을 때 수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실패를 다음 추천의 재료로 바꾸는 것이다.

추천은 선택을 줄여줄 수 있다. 하지만 확신은, 결국 사용자 스스로가 과정에 참여해야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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