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0시 넘어 XX역에 도착한 적이 대체 몇 개월 만인지. 각자의 모습으로 혈중 알콜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귀갓길은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도 바글바글한 군중에 몸을 맡기며 친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참고로 내가 지금 보러 가는 친구에게는 세 가지 부탁을 해놓은 바 있다.
- 나를 데리러 와라
- 망고 주스를 어디서든 구해서 와라
- 예뻐라
망고 주스가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려 미친놈 소리를 듣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1시간 반 전부터 망고 주스 외에는 그 어떤 액체도 마시고 싶지 않을 만큼 망고 주스가 먹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부탁 3. 예뻐라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패션이며, 내가 제일 싫어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와이드 팬츠를 이 악물고 입고 온 그녀는 나를 매우 격하게 맞이해주었다.
진심 담은 분노의 펀치를 팔뚝에 한 대 맞았는데 몇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픈 기분이다.

친구는 망고 주스를 내게 건네며 투썸플레이스에서 겨우 구했다고 토로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주스를 빨대로 쪽 빨아들였다. 쥬시하다! 라는 표현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만큼 달고 시원했다. 2시간 가까이 갈증을 참은 보람이 있구나.
이 야밤에 못난 친구 때문에 고생한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하며, 나와 망고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입에 물자마자 육즙이 터져 나오는 이 축복의 과일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 본가에서 기거할 적 망고를 사 먹기 위해 자주 들렀던 과일 가게 누나 이야기, 나보다 망고를 더 좋아하는 사람을 본 이야기 등등.

그저께 본의 아니게 몇 년 만에 망고를 먹게 된 이야기, 망고 주스를 골라주는 동생에게 나 망고 안 먹어! 라고 소리칠 뻔했다는 이야기가 끝나니 집 앞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왜 망고를 몇 년간 입에 대지도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 때문인지 다음 이야기를 갈구하는 친구에게 나는 와이드 팬츠를 입은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며 매정하게 안녕을 고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내가 책상 위에 올려둔 망고 주스가 보였다. 카페에서 산 음료는 절대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나인데.
대체 어느새 들어온 거니, 머리칼이 흠뻑 젖은 나는 조심스레 물었고, 물방울이 잔뜩 맺힌 망고 주스는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