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으로 이직한 1년차 개발자의 2021년 회고

Gummybearr·2021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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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용기가 필요할 때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1. 퇴사할까?

새로움과 배움이 가득했던 대학생활과 달리 회사는 생각보다 정적이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나가고 싶었는데, 그런 팀으로 가지는 못했다. 개발을 많이 할 수 있는 팀으로 갔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서비스를 만들어갈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경력을 쌓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프로젝트들을 하겠지만, 개발을 좋아하기 때문에 열심히 배운다면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른 곳에 붙어서 나간다면 그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면접의 벽은 높았다. 면접을 볼때마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해온 기본기의 중요성을 느꼈다. 아직은 준비가 안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탈락할수 밖에 없었다.

기본기를 쌓아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회사를 나와야 했다. 회사는 기본기를 닦는 것보다는 빠르게 제품을 찍어내는 것을 선호했는데, 요구사항에 맞추기 위해 새벽과 주말을 통째로 갈아넣다보니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회사의 문화에 젖어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퇴근시간이 넘으면 퇴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사소한 에러를 해결하지 않고 퇴근하는 동기를 보며 화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몇달 전 밤을 새면서 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부서장을 보며 나는 저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그렇게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싫어하던 나에게 그 부서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느꼈다. 더 늦기 전에 나가야 한다고.

2. 퇴사의 무게

퇴사하던 날, 얼마나 하늘이 예뻐보이던지!

유난히 따뜻했던 봄날, 퇴사를 했다. 모아놓은 돈으로는 10개월 정도를 버틸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로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바로 그날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읽어야할 책도 많았고, 기술면접을 준비할 레퍼런스도 많았다. 깃허브에 잔디도 심기 시작했다. 운영하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보며 아쉬웠던 점을 하나씩 개선했고, 사용되는 모든 기술, 원리에 왜?를 물으면서 개발했다.

그래도 취준은 막막했다. 이미 낮아져버린 자존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됐고,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 취업을 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불안감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퇴사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불안한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그 끝에는 나름의 보람이 있었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3. 기적같은 재취업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메일 제목을 보고 탈락을 직감했었는데,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읽어봐야 했다.

대기업인 이전 회사에 취업했을 때에도 아무렇지가 않았는데, 메일을 읽으면서 손이 떨렸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았다.

4. 새로운 시작

새로운 마음으로 간 회사는 새로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언뜻 보기에 워라밸이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도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개발이 재미있었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했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 근본 원리를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가득했다.

개발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너무 신기했다. 가끔씩 취미를 물어볼때 취미로 개발/기술공부한다고 하면 경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에서는 경악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런 환경이 처음이라서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곧내 너무 좋아졌다. 새벽까지 같은 팀분들과 어떤 것이 좋은 기술인지, 어떤 시스템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최적화할 수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었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을 너무 이상하게 했는데도 너무나도 무안하지 않게 잘 가르쳐주셨다. 이 api 느린거같아요라는 말을 이 api의 특정 부분이 보틀넥이 되어서 느린데 어떤식으로 최적화를 하면 성능을 어느정도까지 올릴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것이 기억이 난다. 트래픽이 몰릴때 예비번호를 주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하니 여러 질문을 통해 직접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제일 못했다. 수습을 통과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겁나지는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서비스를 재미있게 개발하면서 주변 동료들로부터 하나하나씩 배워나가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5. 생각보다 빠른 홀로서기

홀로서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서비스의 특정 파트를 홀로 만들어야 되는 상황이 찾아왔고, 회사에 천천히 적응하던 나는 더이상 저년차라는 방패 뒤에 숨을 수 없게 되었다. 예전 회사에서도 같이 개발하시던 분이 외주개발에 차출되면서 혼자 개발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다시 마주하게 됐다.

하지만 이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서비스의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된다는 책임과 보람이 있어서인지, 몰입하여 개발에 임할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은 좋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아침까지 코드를 쳐도 별로 피곤하지가 않았다. 물론 나중에 몰아서 잤다.

위기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회였다. 오히려 도메인 지식, 전공 지식을 빠르게 쌓을 수 있었고, 좋은 환경에서 몰입한 덕분인지 서비스 또한 성공적으로 런칭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서비스에 대한 애착 또한 가지게 되었다. 엄연히 말하면 회사의 서비스이지만, 나한테는 손으로 낳은 자식과 다름없다. 이제는 멋진 동료들과 함께 개발하고 있고 서비스 또한 덩치가 커졌지만 탄생의 순간부터 함께해왔고 온갖 장애와 버그를 겪어오면서 같이 성장했기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있다. 서비스가 조금씩 커가는걸 보는것이 너무 기쁘고, 더욱 잘 성장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6. 함께 나아가기

좋은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주변에 좋은 동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동료들도 많지만 (구글링과 삽질을 하다하다 지쳐서 도움을 요청하면 순식간에 해결해주신다) 개발자만 있어서는 서비스가 잘 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 큰 방향을 그려주는 분들도 필요하고, 서비스의 외관을 만들어주시는 분들도 필요하다 미술을 못해서 뭐라 평할수 없지만 확실히 예쁘다! 이런 저런 분야에서 참 많은 분들이 함께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데, 신기한 점은 프리라이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프리라이더가 없다! 일당백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당오십씩은 다들 하시는 것 같다

좋은 회사의 또 다른 장점은 그런 동료들이 인간적으로도 좋은 동료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회사는 한달에 한번씩 문화의 날을 갖는데, 그 날에는 팀원들과 아쿠아리움에 상어를 보러 가기도 하고, 일상을 떠나 불멍을 때리러 가기도 한다. 그날 노트북을 안챙겼더니 귀신같이 장애가 났다 회사분들과 함께 놀러를 간다는 것이 조금은 상상이 안갈 수 있지만, 막상 가면 정말 재미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는 상태에서 약간의 재미요소가 더해져서 그렇 것이 아닐까!

7. 배움은 계속된다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읽어야 하는 책도 많고, 써봐야 하는 기술들도 너무 많다. 그리고 단순히 써보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되고, 그 원리를 이해하고 구현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실무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이 바쁠 수 있겠지만 더욱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틈틈이 공부를 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도 한달에 한권 이상의 책을 볼 예정이다. 시간 텀을 두고 다시 읽으면 더 좋은 책이 있는데, 그런 책을 다시 보는 것도 한권 읽은 것으로 쳐야 할지는 고민이다

늘 명심할 것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애매하게 많아지기 시작할 때 자만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애초에 회사에서 내가 제일 못하기 때문에 자만할 일도 없겠지만... !주변에서 인정을 해줄수록 더더욱 세상 넓은 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사한 일이 참 많은 한해였다. 내년도 감사할 일이 많은 한해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공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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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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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9일

서비스 회사에 다니면서 느끼는 열정과 매력은 직접 느끼지 않으면 남에게 설명하기 참 힘든것 같아요 이번 회사에 오기 전에 당근마켓 면접 봤던게 기억나는데,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질문 수준이 엄청 수준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해서 아직도 좋은 이미지가 있네요 ㅎㅎ
저와 연차와 상황이 비슷하신것 같은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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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9일

개발을 사랑하시는게 느껴지는 글이네요 ㅎㅎ 이런 글들을 볼 때마다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동기부여가 되는, 열정 넘치는 글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2022년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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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0일

당근 당근 🐰🥕 이직 축하합니다! 회고록 잘 읽었습니다. 같이 내년에도 달려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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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0일

본인만의 가치관과 소신이 있는 것이 정말 멋있습니다! 저도 본받아보겠습니다 ㅎㅎ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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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1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쓴이님의 열정이 잘 전달되는 글이네요 ㅎㅎㅎ 앞으로도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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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1일

좋은 글이네요..! 두고두고 이 글 읽어보며 열정 본받겠습니다 ㅎㅎ! 2022년도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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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1일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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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2022년에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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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커헝헝,,,ㅠ 소영아ㅠㅠㅠ 나 당근붙어써ㅠㅜㅠㅜ

울면서 코먹으면서 전화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너무너무 대견하네요 앞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일 목표 왕창 다 갖고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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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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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일

너무 멋진 일이네요.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회사에 취직해 그런 분들을 만나뵙고 싶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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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4일

경력직으로 이직하셨나요? 신입으로 들어가셨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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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4일

저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글을 보고 많이 배워갑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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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4일

안녕하세요, 우연히 들렀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
먼저 성공적인 이직 축하드려요 !
저는 최근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껴
냅다 퇴사를 했는데요 ㅎㅎ,,,
작성자 님께서는 어떤 책들로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너무너무 궁금하여 댓글 남겨봅니다 !
좋은 하루 되시고 다시 한번 이직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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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소름돋았어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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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9일

잘 읽었습니당… 퇴직하고 이직을 하겠다고 배우고 있지만… 퇴직할 때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군요 ㅎㅎㅎ.. 일이 빡센건 역시 하고 싶은 일이냐 아니냐의 차이 같네요..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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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짤들은 어디서 구하는거예요ㅠㅠㅠㅠ 너무 웃겨요.. 잘웃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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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3일

저도 퇴사하고 이직 준비중인데, 제가 느꼈던 감정들과 너무 비슷해서 공감이 됩니다!
저도 당근같은 좋은 곳에서 개발하고 싶어요 😭!✊🏻
요즘 면접들에서 탈탈 털려서,,, 멘탈이 휘청휘청 하지만 저도 반드시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ㅠㅠㅠ!
저도 더욱 열심히 해서 이런 회고를 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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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8일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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