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2월 27일, 짐 풀기가 무섭게 프로젝트를 하나 마치고, 한 주의 종결을 앞두고 있다.
사람은 간사해서 입소 직후까지 생각하기를 퇴사하고 채 7일을 못 쉰 채 이곳에 당도했음에 서러워했는데, 이제는 그 7일동안 파이썬을 했어야했다고 서러운 중이다.
상식을 부수는 공부 속도에 벌써 벅차고 다른 분들에 비해 배경지식도 기초 수학능력도 좀 부족한 듯해 황당하지만, 그 어떤 핑계도 실은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이곳은 내가 아는 극히 평범한 "사회"다.
말인즉 그냥 원래 내 페이스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쨌든 원래 내 페이스보다 쫌만 더 빠른 페이스지만, 하여튼 그냥 하면 된다는 거고... 또 이왕 하는 김에 최대한 잘하면 되지 싶다는 거다.
입소 당일 3시부터 바로 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거의 단기 기억상실증과 같이 흘러갔던 첫날이었다.
대전 KTX역에서 내려 택시팟 언니 한 명(나와 다른 반이 되었다)과 낑낑거리며 택시를 탔고, 새로 만난 룸메와 함께 다이소에서 공동 생활용품들을 구매해 왔고, 겨우 기본 짐만 풀러 강의실과 컨퍼런스룸에 가 3일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날 류석영 교수님과의 일대다, 이튿날 이범규 대표님과 정주원 코치님의 다대다 면담이 있었다.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에도 의장님을 포함한 티타임 시간이 있었다.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의장님께서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사실은 고생했던 애들이 더 기억에 남지. 봐, 뺀질거렸대니까 기억을 하잖아." 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아마 오래 남을 것 같다.
우수 수료자들을 표본으로 본받으려 하기 보다, 자신만의 색을 찾아보라는 말씀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겼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멘탈 주세요)
_ _ _ _ _ _ _(멘탈 가는 중..}>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열심히 했고 말을 자주 먼저 걸어봤다. 룸메에게는 준비해놨던 소박한 선물을 주었다. 첫 팀플에서는 신경써서 밝은 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를 북돋았고 노력했다. 글쎄, 너무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내 뜻대로 완벽히 통제되는 상황은 없었다.
목요일 1시 반, 발표했다. 팀플은 결과물이 좋았긴 했다, 특징도 있고 과정상 배우는 점도 꽤 있었고. 과정상의 내 몫이 정확히 원하던 방향도 아니었고 발표 과정에서 팀이 꾸중도 먹었지만 어디가서 안 부끄러운 아웃풋이긴 하였다. 팀원 두 분에게 감사스럽다.
다만 정신이 너덜거렸다. 핑계댈 수 없는 체력 고갈, 주워담을 수 없는 말실수, 내가 못 하는 것들을 너무 잘 하는 사람들. 앞으로의 5개월 간 매일이 지난 3일과 같다면? ㅠㅡㅠ
<{멘탈 빨리요)
_ _ _ _ _ _ _(멘탈 뛰는 중..}>
다행히 목요일 발표 후 회식이 있었고 회식이 기대보다 더 리프레싱이 됐다. (아마 이게 큰 그림이겠지?)
어제부턴 알고리즘 공부 중인데 턱없이 부족하다. 엑셀 보니까 내가 우리 반에서 진도가 제일 느리다... 그런데 이 점이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는 안 되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공부 그 자체가 재미있고, 공부 시작 2일만에 내 자신이 너무 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잘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어제의 나, 과거의 나로부터 오늘의 내가 성장해있는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첫 3일간, 힘들 때 되내인 말이 있다.
난 경쟁하려 온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 여기에 왔다.
물론... 내 파이썬 상태 보시는 운영진 분이 내가 이런 말 여기서 하는 걸 보신다면... 제정신인가 싶으실 수도... 그런데 정말 진심인 걸 어떡하나. 나는 여기에 1등하러 온 것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온 것도 아니다. 전보다 잘하고, 앞으로의 것들도 더 잘 습득할 기반을 가진 내가 되기 위해 왔다. 그래서 (아직은) 괜찮다.
운영진분들처럼 나 역시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방법을 알아 가면 좋겠다.
다들 진심이신 것 같아 고무적이었다. 이분들의 사관학교 정글 사업에 신념이 보였다.
무릇 신념이 있다면 갑자기 체력이 강해지고 다른 위험요소들이 콩처럼 작아보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나도 처음 개발을 배울 때 그랬던 기억이 있다.
여기 오기 전 많은 걸 미리 찾아보고 왔는데 그중 하나가 류석영 교수님이 교내 밴드에서 노래를 하시는 영상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살고 싶은 삶을 영위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내게 건강한 영향력이 전달되는 듯 했다. 만나뵌 교수님은 실제로도 친절하고 명랑하신 분이셨다.
교수님이나 의장님을 자주 뵙지 못할 것이라 들었다. 그분들로부터 다른 것보다도 그러한 삶에 임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길 소망한다.
미숙자가 알고리즘을 풀다보면 메소드를 몰라 헤맨다. 그런데 아주 조금만 더 지나면 이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에 반례라던가 비효율이 있어 헤매게 된다. 내 삶의 태도는 어디쯤인가? 아직도 공식문서에서 메소드 사용법을 뒤적거리나? 아니면 이제 그건 충분했으나 접근 방식에 대한 재고찰이 요하는 시점일까?
개발자가 되고 싶다. 이왕 하는 거 잘 하고 싶고 의심 없이 하고 싶다.
아마도 정글이 답을 알려주겠지 싶어 왔는데 아아, 당연한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답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은 정글 안에 내가 원하던 열매가 열려 있는지 탐색하고, 있다면 그 열매를 수확해 나가는 일.
숲길이 아무렴 산책로같기야 하겠냐만은 걷는 길 내내 그 여독에 동반되는 효용과 모험심이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 믿겠다. 다만 그 안에서 내가 필요 이상으로 다치지 않길 바란다. 그걸 최우선으로 삼겠다.
5개월 간 내게 좋은 판단력과 선한 용기, 소울바디소울마인드가 있길 바란다. 이 기간이 내 인생 유일무이한 기적의 기간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이미 내 인생에 입력값으로 들어왔다. 지금 흐르는 이 시간이 삶 안에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기점이 된다는 건 아마도 변경되지 않는 상수일 것이다.
어쨌든 알고리즘은 재밌다, 이제 '점수'가 그걸 말해주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