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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11. 오후 5:54 수정2025.09.12. 오전 1:09 기사원문
조미현 기자
하지은 기자
자산 1000억 넘는 지주사 CVC 1곳뿐
국내 지주회사 소속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가운데 자산 1000억원을 넘는 곳은 단 한 곳인 것으로 파악됐다.
1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14개 일반 지주회사 소속 CVC 중 자산이 1000억원 이상인 곳은 포스코기술투자(2951억원)뿐이다. 이들의 평균 자산은 326억원에 그쳤다. 2020년 일반 지주회사에 CVC 설립을 예외적으로 허용했지만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외부 자금 조달, 차입 한도 등을 엄격히 규제해 몸집을 키우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혁신기업과 산업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CVC 관련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주사 CVC 설립 허용했지만 자기자본 200%내로 차입 제한
주요국은 금산분리 적용 안해…美 구글벤처스 자산규모 13조
“셀트리온이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를 5000만원 하면 은행은 아마 5억원을 할 겁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0일 서울 마포대로 프론트원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GP(펀드 운용사)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은행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투자 선구안이 있는 기업이 펀드를 결성하면 자금이 탄탄한 은행이 투자에 참여해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에 기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진 회장의 구상은 현행법상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 간 결합 금지) 원칙에 가로막혀 있다.
◇규제 덫에 갇힌 대기업 CVC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금산분리가 생산적 금융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21년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 소속 CVC 설립을 허용했지만,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투자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소속 CVC는 100% 자회사 형태로만 설립할 수 있다. 차입 규모는 자본 총계의 200%로 제한된다. 외부 자금 조달 역시 총출자액의 40%만 할 수 있다. 사실상 자기자본에 의존한 소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벤처 투자법상 직접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여러 투자자에게 돈을 모아 펀드를 조성하고, 투자 심사부터 사후 관리까지 맡는 GP 역할은 할 수 없다. 셀트리온도 CVC 설립을 검토했지만, 이 같은 규제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이유로 일반 지주회사 CVC 설립이 허용된 이후 CVC를 새로 설립하거나 전환한 지주사는 포스코, GS, CJ, 두산 등 14개사에 그친다. 포스코기술투자를 제외하면 자산 규모는 수백억원에 머문다. GS벤처스 145억원, CJ인베스트먼트 248억원, 두산인베스트먼트 98억원 등이다. 반면 미국 구글벤처스의 자산은 13조원에 달한다.
물론 지주회사 소속이 아닌 CVC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롯데벤처스는 별도 독립법인 형태의 CVC다. 대부분 대기업은 지주회사 소속 CVC를 선호한다.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데다 자금 조달의 효율성 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큰손’인 대기업 대부분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며 “일반 지주회사 소속 CVC를 활성화하면 모험자본 공급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 생태계 키워야”
금산분리는 외환위기 당시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지배해 계열사 지원에 동원하는 폐해가 드러나면서 도입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금융권 건전성이 일정 부분 확보됐고, 스타트업 투자 수요도 급증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후 여러 차례 금산분리 완화 시도가 있었지만 ‘재벌 사금고 허용’이라는 정치적·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대기업의 자금력과 전략적 안목을 벤처투자에 연결해 혁신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CVC에 한해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자본은 신기술과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강점이 있고, 금융자본은 안정적인 자금 공급이 가능하다. 두 축이 함께 움직여야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이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에도 부동산 대출 중심의 소극적 금융에서 벗어나, 성장성이 큰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나누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은 금산분리 규제가 없고, 미국은 은행 소유만 금지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산업 부문이 금융자본을 활용해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억제한다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기업의 건전한 투자활동에 불필요한 제약이 없도록 개선이 필요한지를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핵심 용어 정리
벤처캐피털(CVC) : 잠재력 있는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경영 및 기술 지원을 제공하며, 기업이 성장한 후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험 자본 또는 벤처투자회사
금산분리 : 증권회사는 기관투자가로서 기업주식을 보유할 수 있었는데 은행업과 증권업을 분리함으로써 은행이 증권회사를 통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게 해서 은행과 기업을 분리
GP(펀드 운용사) : GP는 General Partner의 약자로, 펀드 운용사 또는 업무집행사원을 의미하며, LP(Limited Partner)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아 투자를 집행하고 펀드를 운영하며 그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주체
국내 14개 일반 지주회사 소속 CVC 중 자산 1000억원 이상은 포스코기술투자(2951억원) 단 1곳뿐이며, 평균 자산은 326억원에 불과합니다. 이는 2020년 CVC 설립이 허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성장이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에서는 대기업의 투자 안목과 은행의 자금력을 결합한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해 CVC 관련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혁신 생태계 확대와 모험자본 공급 증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공정위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제약을 개선하는 방안을 업계와 소통하며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14개 일반 지주회사 소속 CVC 중 자산이 1000억원 이상인 곳은 포스코기술투자(2951억원)뿐이다. 이들의 평균 자산은 326억원에 그쳤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GP(펀드 운용사)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은행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 것”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소속 CVC는 100% 자회사 형태로만 설립할 수 있다. 차입 규모는 자본 총계의 200%로 제한된다. 외부 자금 조달 역시 총출자액의 40%만 할 수 있다.
GS벤처스 145억원, CJ인베스트먼트 248억원, 두산인베스트먼트 98억원 등이다. 반면 미국 구글벤처스의 자산은 13조원에 달한다.
대기업의 자금력과 전략적 안목을 벤처투자에 연결해 혁신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CVC에 한해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자본은 신기술과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강점이 있고, 금융자본은 안정적인 자금 공급이 가능하다.
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강제하는 금산분리 제도는 애초 부실 계열사에 대한 특혜성 대출을 막고 경제 위기 시 산업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였다. 다만 지금은 그 본래 취지와 달리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이 신산업에 도전하려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자금 조달 능력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국내 기업들은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자체 금융 계열사를 통한 자금 지원이 막혀 있다. 이 때문에 외부 투자나 내부 유보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대규모 투자와 장기 프로젝트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산업은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회수 기간도 길어 단기 자본시장 논리로는 육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에 지난 10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 참여한 기업인들과 금융회사 대표들도 벤처 생태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금산분리 해소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기업 쪽에서 방안을 내주면 다 반영할 생각"이라며 "현장에서 일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새롭게 도약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정부 역시 금산분리 완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산분리는 본래 재벌의 과도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전형적인 규제였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첨단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부작용이 있다”며 “왜 재벌은 금융을 소유하면 안 된다는 전제가 유지돼야 하는지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 금산분리는 상법 개정안 등으로 우리 기업들이 해외 자본으로부터 공격받는 상황을 방어하는 기제로도 활용될 수도 있다”며 “금산분리 제도의 본래 취지와 현재 상황을 재점검하고 완화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획]美·獨 성장에 베팅…금산분리에 묶인 韓 첨단산업
학술적 근거
2020년 공정거래법 도입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외국에서 유사 입법례를 찾기 어려운 각종의 규제들이 중첩적으로 강구되었다는 법학 연구가 있습니다.
공정위 공식 입장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를 허용하되, 경제력 집중, 사익편취 우려 등의 부작용 방지를 위해 부채비율(200%)·내부출자비중(60%)·해외투자비율(20%) 등에 있어 행위 제한을 규정했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했습니다.
시민단체 우려
참여연대는 CVC의 부채비율을 자기자본의 200%까지 허용한 것이 타인의 자금으로 재벌의 경제력 강화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고 밝혔습니다.
투자자금 중 외부자금의 비율을 최대 40%로 허용한 점이 우려되며, 현재 30대 재벌 대기업의 사내보유금이 950조원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CVC의 투자펀딩에 외부자금을 허용한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구조적 문제
국내 대기업이 CVC를 설립하더라도 계열사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지분구조는 공동 자금 출자에 난항을 불러일으키며, 투자심사역들이 독립적 판단으로 벤처기업을 발굴하는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위험회피 투자방식
국내 대기업들의 위험 회피적 투자방식은 투자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벤처기업과 상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학술적 분석
제도의 입법 과정에서 미비한 부분들을 남겨 놓은 점을 들 수 있으며, 과연 벤처업계나 지주회사에서 CVC에 대한 경제적 기대효과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며, 법 집행기관의 제도운용 기조는 또 어떠할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법학적 평가가 있습니다.
우회 가능성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기업 및 계열회사 투자 금지 등 역시 그동안 재벌 총수들이 저지른 각종 편법·위법 사례에서 보듯 얼마든지 우회가 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학술연구 결과
CVC는 기술의 유출 또는 지배적 관계에 따른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는 연구가 있으며, 이는 CVC 활성화 시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공정위는 일반지주회사 CVC 제도의 원활한 시장 안착을 위해 앞으로도 일반지주회사 소속 CVC 현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본 제도가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 및 사익편취 등에 악용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벤처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사항 여부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