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B2B 시장은 B2C 시장 대비 최소 3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는 규모를 가진다. 일상적인 소비재 이면에는 원자재 수입, 설비 투자, 물류 계약 등 복잡하고 대규모의 기업 간 거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시장은 여전히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문서는 팩스로 전달되고, 납기 관리는 전화로 이루어지는 등 디지털 전환 수준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금 흐름의 비효율성이다. 상품은 즉시 납품되지만 대금은 60일 이후에 지급되는 외상 거래 구조로 인해, 수익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부족으로 도산하는 이른바 흑자부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기업 중심의 외상 거래 관행 속에서 중소기업은 운영자금 조달에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기업 조달 영역에 AI 기반 에이전트가 도입되고 있다. 해당 에이전트는 전 세계 공급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특정 지역의 자연재해나 공급 차질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체 공급처로 주문을 전환한다.
아마존 비즈니스의 경우 2024년 기준 연 거래액이 약 6,380억 달러에 달하며, AI가 재고 부족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주문을 실행하며, 대량 구매 시에는 자동 협상 기능을 수행한다.
가격 결정 방식 또한 변화한다. 구매 수요가 발생하면 다수의 공급사 AI가 실시간 역경매에 참여하여 최저가를 제시하며, 거래 조건은 인맥이나 관행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결정된다. 이로 인해 조달 시장은 완전 경쟁에 가까운 구조로 전환된다.
계약 체결 이후에는 종이 문서 대신 스마트 계약이 생성된다. 검수 통과 시점과 결제 조건이 코드 형태로 명시되며, 위변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주문서는 새로운 금융 담보로 기능한다.

AI 기반 조달이 확산되더라도 외상 거래 관행 자체는 단기간에 사라지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공급망 금융은 확정된 주문서를 기반으로 금융기관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은행의 AI 시스템은 구매 기업의 조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받아, 신뢰도가 높은 주문에 대해 공급 기업에 선지급 금융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하청 업체에 대규모 주문을 발주한 경우, 해당 주문의 신뢰성을 근거로 은행이 제작 자금을 먼저 대출하는 방식이다.
중국 징둥닷컴(JD.com)의 공급망 금융은 수십조 원 규모로 운영되며, 입점 판매자의 매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평균 3일 이내 자금이 지원된다. 이 과정에서 부실률은 1% 미만으로 유지되며, 이는 AI가 확정성과 신뢰도가 높은 거래만을 선별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담보는 부동산이나 설비였으나, 새로운 담보는 데이터이다. 확정된 주문과 매출 데이터가 금융 신용을 대체하며,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도 실질적인 거래 증빙이 있다면 금융 접근이 가능해진다.

AI 조달 에이전트는 개별 기업의 수요를 통합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 지사별로 분산된 구매를 통합함으로써 단가 절감 효과를 극대화한다.
또한 금융과 물류의 결합이 가능해진다. 선박의 항만 진입 정보나 물류 이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감지되면, 은행 시스템은 자동으로 결제 절차를 실행한다. 물류의 이동이 금융 거래의 트리거로 작동하는 구조이다.
동적 할인 모델 역시 구현 가능하다. 구매 기업이 조기 지급을 조건으로 할인율을 제안하면, 판매 기업은 유동성을 확보하고 구매 기업은 원가를 절감하는 상호 이익 구조가 형성된다.
이 모든 금융 기능은 은행 애플리케이션이 아닌 기업 ERP 시스템 내부의 API 형태로 제공된다. 구매 담당자는 단순히 자재를 주문하지만, 백엔드에서는 대출 실행과 결제가 자동으로 처리되는 인비저블 코퍼레이트 뱅킹이 구현된다.
해외 거래의 경우 환전 또한 AI가 담당한다. 환율 변동성을 분석하여 최적의 송금 시점을 선택하며, 은행은 이를 통해 추가적인 수수료 수익을 확보한다.
기업 대출 한도 역시 고정적이지 않다.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와 같은 이벤트가 발생하면 AI가 이를 증빙하여 한도를 일시적으로 확장한다. 이는 기업 활동에 연동된 탄력적 금융 모델이다.

AI는 전통적인 재무제표 외에도 다양한 대체 데이터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공장 전력 사용량 감소는 생산 중단 신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도 가능성을 조기에 감지한다.
반면, AI 간 담합과 같은 새로운 리스크도 존재한다. 특정 공급사와 구매사 AI가 알고리즘 차원에서 담합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기존의 인적 부패보다 탐지가 어렵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은 거래 공정성을 감시하는 별도의 AI 시스템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금융은 은행 입장에서 높은 수익성을 가진다. 확정 주문서를 담보로 한 선지급 금융은 연 환산 기준 12%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일반 기업 대출 대비 두 배 수준이다. 국내 공급망 금융의 잠재 시장 규모는 1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다만 금융기관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다. 조달 및 물류 데이터는 ERP 기업이나 플랫폼 사업자가 보유하고 있으므로, SAP 등 ERP 기업 및 물류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또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영역에서 더 큰 기회가 존재한다. AI 기반 조달 시스템은 기존 신용 평가에서 소외되었던 건실한 중소기업을 발굴할 수 있으며, 이는 상생 금융과 신규 수익 창출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AI 기반 조달과 공급망 금융의 결합은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다. 이는 물류의 속도와 금융의 속도를 일치시키는 구조적 혁신이다. 자금 흐름이 원활해질수록 경제 전반의 효율성은 향상된다.
B2B 시장은 압도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공급망 금융은 기존 대출 대비 높은 수익성을 제공한다. 국내 시장 역시 충분한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향후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공급망 데이터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AI와 결합된 공급망 금융은 기업의 자금 흐름을 개선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