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 걸까? - 행복의 기원

Seonkyu Kim·2020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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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 걸까?

종종 "왜 사는가?"와 비슷한 종류의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문제는 이런 고민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밤잠을 설쳐도 이런 질문에 답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에 완벽한 해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연히도 서은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 이라는 책을 읽고 위의 고민에서 조금은 자유로워 질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두 개의 이유, 그리고 두 개의 딜레마

1. 인생의 소명을 달성하기 위해 산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결론은 못 내렸지만, 제 자신을 관찰한 결과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아무리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6개월 이상 지속하면 좋아하지 않게 된다"는 다소 슬픈 특징이었습니다.

즉,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싫증날 때가 분명히 올텐데,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인생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힘든 시기, 인생의 소명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추가적으로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2. 그냥 산다

인터넷에도 이런저런 이유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 '그냥 산다'는 답변 역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중 일부입니다. 아마 검색해서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관련 글들과 영상들은 보시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인생은 그냥 저 길옆에 핀 한 포기 잡초와 같다고 생각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길에 난 풀 한 포기나, 산에 있는 다람쥐나 여러분이나 다 똑같아요. 별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100일만 안 먹으면 죽고, 코 막고 10분만 놔두면 죽습니다.
...
여러분들이 자기라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삶이 결과적으로 거룩해집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왕위도 버리고, 다 떨어진 옷 하나 입고 ,나무 밑에 앉아 명상하고, 주는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천하를 다 가지고 있는 왕에게 인생 상담을 해 주셨기 때문에 거룩하신 겁니다.

- 법륜스님 즉문즉설 중에서

그러나 문제는...

  • 인생의 소명 -> 못 찾겠다. 있긴 한거냐?
  • 그냥 사는거다 -> 반박할게 없긴 한데... 나는 아직 납득을 못하겠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빈 그물을 그대로 회수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 끙끙거리다가 우연치 않게 행복의 기원 이라는 책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고민이 저만 했던 고민은 아닌가 봅니다. 행복의 기원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목적론 vs 진화론

앞서 말했던 '인생의 소명을 달성하기 위해 산다'처럼 세상만사를 어떤 원인이나 목적, 계획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관점을 '목적론(teleology)'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목적론적 사고의 기원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은 의미 있는 삶 혹은 가치 있는 삶을 통해 구현된다는 사고방식. 이를 '도덕책 버전' 의 행복론이라고 합니다. 이 가치관을 초엘리트주의적 행복관이라고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과학책 버전' 의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다윈의 '진화론'.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즉, 행복도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밀러에 의하면,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고차원의 정신적인 특성도 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계속 이어집니다.)

행복의 기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해 어떻게가 아닌 를 질문합니다. 다시 말해 행복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도대체 행복은 인간에게 왜 생기게 되었는가를 질문합니다. 이때 앞에서의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근거 몇 가지가 필요합니다.

  1. 인간은 100% 동물이다.
  2. 행복을 느끼는 것은 생존하기 위함이다.
    • 행복의 종류: 사랑, 포만감, 소속감,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 이런 쾌감은 또다시 경험하고 싶어진다.

인간은 100% 동물이다.

간단한 퀴즈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365일이라고 합시다. 이 365일 중,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온 시간은 전체에서 얼마를 차지할까요?

고작 두 시간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364일 22시간은 싸움, 사냥, 짝짓기에만 전념하며 살아왔습니다. 동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실험 결과들과 근거들은 책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을 느끼는 것은 생존하기 위함이다.

결국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쾌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맛있는 밥을 먹을때 행복합니다. -> 밥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도 행복합니다. -> 연애는 종족 번식의 필수적인 전단계이기 때문이죠.
다른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행복합니다. -> 과거,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빨리 없어진다.

밥을 먹었는데 행복한 감정이 100일동안 가면 어떻게 될까요?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즉, 이런 생존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행복, 혹은 쾌감을 느꼈다면 곧 사라져야만 합니다.

행복, 그리고 이성과 감정

1. ~으로 사는 것(being)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행복의 기원 p.117

지금까지 항상 'becoming'의 모습만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에게 반복적으로 던져져서 익숙해진 질문은 "커서 뭐가 되고 싶니?"이기 때문입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10년이 넘는 학창시절 매년 장래희망을 적어 냈고, 그 관성이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행복이 담겨있는 곳은 'being'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어떻게 살고 있니?"라는 질문을 해보려 합니다.

2. 이성적 사고 vs 동물적 본능

판단을 내리고 선택을 할 때 이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정이 앞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여럿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인간의 본성이라는 책에서는 말과 기수를 이용한 재미있는 비유가 나옵니다.

말은 감정이라는 인간의 본성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이 말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힘을 갖고 있지만, 기수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한편 여기서 기수는 '생각하는 자아'다. 기수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고삐를 쥐고 말을 인도한다.
...
말과 기수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생각을 한 다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이 에너지의 노예가 되는 게 아니라 에너지의 방향을 정리해줘야 한다. 이성은 바로 그런 것이다.

- 인간 본성의 법칙 p.72

공감 하시나요? 아니면 공감하지 않으신가요?

반면 행복의 기원에서는 같은 비유로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우리의 본능적 모습을 힘센 '말'이라 하고, 그것을 통제하는 이성을 말 위에 올라 탄 '기수'라고 하자. 야생의 말들이 생존을 목표로 달릴 때 기수가 탄 말이 혼자 달리는 말보다 반드시 더 유리할까? 혹시 기수가 도리어 방해되는 경우는 없을까?

- 행복의 기원 p.24

3. 외향성

과거 인류는 거대한 자연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리지어 생활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 유전적 성격 특질인 '외향성'은 행복의 개인차를 크게 좌우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의 객관적인 조건들은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습니다. 개인의 행복을 책임지는 요소가 유전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꽤나 허탈합니다,,,

그래도 조금 다행인 것은, 실험 결과 내향적인 사람들조차 다양한 사람들과의 모임 후 행복도가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분들이라도 시간을 내 억지로라도 모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 역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다양한 사람들과 모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결국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라는 다소 엉뚱한 답변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어쩌면 "왜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다른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많은데요, 요즘은 코딩을 하며 매우 가끔 쾌감을 느끼는 제 모습을 보며 "아 내가 굶어죽지는 않게 설계되었구나"를 느끼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참고자료

  • 서은국(2014)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
  • Robert Greene(2019) 『인간 본성의 법칙』 (이지연 옮김) 위즈덤하우스 (원서출판 2018)
  • 왜 사는 걸까요? 법륜스님 즉문즉설. 티스토리블로그. https://pomnyun.tistory.co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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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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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30일

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저는 요새 개발하면서 쾌감을 느끼지 못 할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재택근무하면서 집에만 있으면서 컴퓨터만 주구장창 잡고있고, 이게 1달 넘게 반복되다 보니..
그런 것 같네요!

빨리 사태가 진정 됐으면 좋겠어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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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8일

확실히 그렇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살 것 인지가 아닌
무엇이 되고싶냐에 질문을 받고, 직업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살아왔죠.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 해주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매우 공감 되는 글이네요. 고마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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