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벗어나 경제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갓 넘었다. 근래 다른 회사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한 ‘나는 괜찮은가?’하고 반추했다. 외부에서는 나를 웃는 표정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나는 그만큼 눈에 힘을 풀고 먼 곳을 바라보거나 우는 시간이 많았다. 이때 남아있던 감정을 <일하기 전에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 시리즈로 털어보려 한다.
일하는 목적. 삶의 이유. 이런 진지한 사안에 대해 어디까지 생각해 보았는가. 이것을 나에게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과연 일을 하는 것과 나의 삶을 연관지어서 말할 수 있는가.
나에게 노동은 일단 돈이었다. 하루 8시간 혹은 그 이상 쓰며 회사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 받는 것. 처음 이 대답을 했을 때는 내 시간과 돈을 맞교환한다는 사고도 하지 못했다. '돈, 필요하니까 벌어야지. 모아서 아파트 사야지.' 이게 끝이었다. 이런 관념은 내가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통장에 적힌 숫자.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는가? 숫자가 주는 의미는 없었다. 그 숫자를 활용해서 내가 무언가를 하고 가슴 깊이 느꼈을 때 비로소 나의 행복이 되었다. 내가 아파트를 산다고 했던 건 단지 남들이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 같다는 가벼운 상상 때문이었다.
나는 나에게 설명하는 법을 늦게 깨우쳤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심지어 그 상황이 괜찮아 보였다. 괜히 아프면 잘못 사는 거 같고 다시 돌아가면 안될 거 같았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법은 들었지만 나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지금처럼 글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본 뒤에야 감정을 익히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난 대로 말했다. 언젠가 한 번 A가 나에게 “헬렌, K에 올라온 것 좀 확인해 주세요.”라고 했다. 사내에서는 개인적으로 사용되는 메신저를 공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지를 내린 이후였기 때문에 나는 K에서 사내 단체방을 삭제했다. 나는 A에게 당당하게 “싫어서 나왔어요.”라고 했고, A는 “누구는 하고 싶어서 하나.”라며 이후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의 나는 회사에서 하자는 대로 따랐을 뿐이고 나의 의견을 말한 것인데, 이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고 나는 내가 잘못한 게 없어 보였다. 지금이라면 “네,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하며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슬쩍 물어봤을 것이다. 충분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하기 싫다고 안 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말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주지 못했다.
최근 나의 행동을 바꿔준 문구 하나는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보도 섀퍼의 돈>에 나와있다. 이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적용시키기 어렵다. 예를 들어 가만히 앉아있는데 누군가 내 옷에 커피를 쏟았다. 옷을 빨고 다림질까지 해야 하는 나는 놀라고 앞으로 이 옷에 들여야 할 노공을 떠올리며 화가 순간적으로 날 거다. 나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상대에게 먼저 “괜찮으세요? 선생님 옷에는 커피 안 튀었어요?”라고 물어보는 것과 “제 옷 돌려놓으세요.”라고 하는 건 정반대의 결과를 만나게 한다. 둘 다 내 옷을 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보고 떠올리는 이미지,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감정, 이후 그 사람과의 관계, 남은 시간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보여주는 모습. 따라서 나는 그 사건 당시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이후 어떨지까지 고려해서 최대한 안 좋은 상황을 나름 괜찮은 상황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어떤 사건에 화가 날 때 최대한 나의 책임으로 돌리기로 했다. ‘나는 상대를 바꿀 수 없다. 나는 나만 바꾸면 된다.’ 어제 회의 시간에 늦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분명 알림을 보냈으니 괜찮을 거다, 그 사람이 까먹은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으나, 내가 상대가 까먹지 않도록 캘린더에 명시해놓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고 다음 회의 일정을 명시해 두었다. 나는 남을 건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아직까지 해내지 못한 것은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내가 말을 거는 것이다. 최근 회의를 주도하면서 말을 정리하고 다시 묻는 과정이 있었다. 참여자들의 표정, 목소리 그리고 말투가 좋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는 괜찮은 척 말을 걸고 얻어야 할 의견을 계속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회의는 무사히 끝났지만, 그 이후의 나의 감정을 처리하지 못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마음이 쓸리는 거 같다”라는 표현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좋지 않아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위해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은 어려웠다. 이 과정을 더 수월하게 해내려면 당연 이런 경우를 많이 만나보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알았으니 바뀌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