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 정유정
- 제목 : 종의 기원
- 출판사 : 은행나무
- 초판 발행일 : 2016년 5월 14일
- 최종쇄 발행일 : 2016년 8월 19일 (1판 31쇄)
- 출간 연도 : 2016년
- 원문 출간 연도 : 2016년
- 페이지 : 383쪽
- 가격 : 13,000원
저자 정유정은 196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광주기독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 근무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5천만 원 고료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고 '내 심장을 쏴라'로 1억 원 고료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로부터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수상 이후 일체의 작품 발표 없이 장편소설 '7년의 밤' 집필에만 몰두하여 2011년 출간하였다. 그 외 저서로는 '열한살 정은이' 등이 있다.
소설은 주인공 유진이 피 비린내를 맡고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집에서 깨어난 유진은 집 안에 엄마의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며 기억을 더듬어 간다. 같이 살고있는 친구이자, 뒤늦게 입양된 형 해진이 집에 곧 도착하는 설정으로 소설의 긴장감을 더한다. 해진이 도착하기 전에 쑥대밭이 된 집 안을 치우고, 엄마의 시체를 치워야하는 주인공 유진. 또한, 대체 엄마를 죽인 범인은 누구이며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혹은 기억해내야 한다.
놀랍게도 엄마를 죽인 범인은 유진 자신이고, 엄마와 갈등을 일으킨 원인에는 유진의 또 다른 살인이 있었다. 유진은 집안을 정리하던 중, 엄마의 방에서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유진은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죽은 형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엄마의 일기에는 온통 자신의 이야기 뿐이었다. 유진이 가장 분노케 만든건, 자신이 싸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내린 정신과 의사 이모이다. 이모는 그러한 진단하에 엄마에게 유진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유진이 16년간 투약 생활을 하게 하고, 그토록 원하던 수영선수의 생활도 끝내 그만두게 했다. 이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쌓은 유진은, 끝내 이모마저 죽이고 난 뒤에 집에 돌아온 해진을 맞딱뜨리게 된다.
해진은 사라진 엄마와 이모에 대해 수상함을 느끼고, 안방에서 발견한 핏자국으로 유진을 몰아세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해진은 유진에게 자수를 종용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해진과 함께 바다에 빠지며 유진은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을 철저한 프레데터이라고 믿었던 엄마가 옳았다고. 끝까지 살아남은 유진은 세간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모두 해진이 덮어쓰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짠 바람을 타고 온 피 비린내를 맡으며.
이 책의 전개상 특징을 꼽자면 사건을 먼저 묘사하여 독자들을 상황에 몰입시키고, 후에 그 과거 시점으로 거슬러가면서 점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구조이다. 주로 유진의 과거 회상이나 엄마의 일기를 매개로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유진의 의식대로 소설이 전개된다.
내가 읽은 추리소설들은 대부분 이러한 구조를 취했다. 먼저 현재의 상황을 묘사하고 뒤이어 사건의 전말을 알아가도록 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형식은 독자로하여금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사건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한다. 또 시간 순으로 작품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정리되지 않은 기분이 들고, 계속해서 책의 내용을 퍼즐처럼 맞춰보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여운의 한 종류이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과거의 기억이 제시되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실제 현재의 사건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작가는 연속성 있게 유진의 삶의 실마리들을 제공하여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몰입하도록 만든다. Page turner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유진에게 형은 어떤 의미인가? 한유진에게 형은 넘을 수 없는 벽이자 무한한 안식처였다. 형 한유민은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였다. 형보다 자신이 더 재능을 보였던 유일한 부분인 수영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유진을 순수한 극악의 존재로 그려내는데, 그렇다고 해서 형 유민을 선의 존재로 그려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진이 악을 더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보통의 악을 가진 존재가 유민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헷갈리기도 했는데, 작가가 지금까지는 한유진의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에 소위 '원인'이라고 할만한 것 없이 선천적인 기질로써의 악을 그려내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유민이 유진을 악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작가의 의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은 극악하게 태어난 존재이기도 하지만, 주변에 분명 그의 악이 발현되도록 환경을 제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악은 창조되어서 길러져야지 완성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유민과 유진의 서사를 조금 더 비중을 두어 제공해 주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유민은 이제까지 항상 더 뛰어나고 그래서 유진의 안식처와 방패가 되어주는 존재였는데, 갑자기 유진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느낌이라 조금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에 작가는 작은 반전을 숨겨두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진은 새우잡이 배에서 1년을 보내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해당 사건이 일어날 시기에 유진이 리트에 붙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며, 그의 끔찍한 행위가 불러온 결과를 잘 보여준다. 또한, 세간에는 이 사건의 범인이 해진으로 지목되는데 해당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너무나도 잘 짜여진 또 다른 사건같다. 마치 처음부터 해진이 범인이었던 사건처럼 모든 정황들이 촘촘하게 해진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작가가 지목하고 나서야 알게되고, 작가의 치밀함에 소름끼치며 감탄했다. 한 극악의 존재가 저지른 엄청난 사건이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유진은 벌받지 않았고, 세상은 유진이 범인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모든 것은 마무리되는 듯하다. '실제로 세상에 이러한 사건이 많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마무리이다.
한 개인의 심리를 거의 끝까지 파헤친 소설이라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그 개인이 철저한 악인이었다는 점도 더욱더 작품을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악한 것을 마주했을 때, "정말 끔찍하네!"로 반응한 후 회피하거나,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작가 정유정은 작가의 말에서 인간이 생존을 하기 위해서 악이 필요조건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오랜 진화의 결과로 악한 유전자가 전해져 태어난 우리에게 어쩌면 선보다 악이 더 보편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다루는 소설을 써왔다. 그런 작가가 처음으로 악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쓴 소설이 '종의 기원'이다. 심리학에 관련된 것들은 나에게 어쩐지 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항상 사례가 없는 보편적인 말들로 이루어진 컨텐츠를 보다가 이러한 소설로 한 에피소드를 읽고나니, 훨씬 더 풍부하고 깊게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 본 느낌이다.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인간의 심리를 따라가는 소설들을 더 읽고싶어진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내게는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