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컨퍼런스 발표를 마쳤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스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발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 동료 중 오래 전부터 유스콘 기획에 참여해오신 분이 나를 설득하셨다. 유스콘은 발표자를 위한 컨퍼런스이므로 편하게 준비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역시 안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렇지만 충동적으로 발표 신청서를 넣어버렸다. 왜냐하면 위의 이유로 발표를 안한다는게 너무 노간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발표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발표하기 싫은 이유가 너무 짜침'이 동력이 되어버렸다.
역시나 예상대로,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심히 고통스러웠다. 청중 앞에서 20분씩이나 떠들만한 내용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 주제를 선정할 때 기술적인 주제가 준비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서 비교적 소프트한 주제로 준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기술적인 주제가 내용을 채우기에 훨씬 수월했을 것 같다. 나의 발표 제목은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고요? 왜요?'였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정말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고요? 왜요? 한마디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감은 외부에서 끌어모으는 수 밖에 없었다. 책 읽기, 친구와 대화하기, 발표 내용에 대해 피드백 받기가 내용을 채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피드백은 여러 사람에게 자주 받을수록 좋다. 처음에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왜 그 말이 싫은지'에 대한 내용 위주였다. 그런데 동료 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너무 본인 이야기 위주면 보는 사람은 그래서?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 순간 나는 프레젠테이션이 너무 내 이야기 위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중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발표하기까지 슬라이드를 5,6번 정도는 대폭 수정했던 것 같다. 할 말이 없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른 걸레를 쥐어짜듯 머리를 쥐어짜서 겨우 15분 분량의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미나와 피드백이 자유로운 팀 분위기 덕분에 리더와 팀원들을 모아서 미리 발표를 해보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발표 경험이 많은 명석님이 피드백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청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한다. 슬라이드를 다 만든 다음, 청중의 관심도를 고려해서 다시 수정해보는 것도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공무원 이력을 말하는게 조금 지겹고 뻔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리더분들은 이 스토리를 열심히 우려먹어야 한다고 하셨다.(ㅋㅋㅋ) 그래서 이력 슬라이드에 공무원 경력을 써넣었지만 대충 읽고 지나갔는데,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게 좋을거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설명해야 내 발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에게 이런 피드백도 들었다.
햄님이 명석님처럼 높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개발자 나부랭이인데 구체적인 사례가 있어야지 내용에 신뢰가 갈 것 같아요.
워딩이 좀 또라이 같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피드백이었다. 토론회나 학회가 아닌 주니어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컨퍼런스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는 필수였다. 사례를 추가하면 발표 시간을 더 늘릴 수도 있기 때문에 발표자한테도 이득이었다. 앞으로도 만약 발표를 하게 된다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명심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사실 중간에 관둘까 하는 생각도 몇번씩이나 했고, 동료들에게 많이 징징거리기도 했다.(죄송...) 한창 발표 못하겠다고 찡찡대던 중 명석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들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센스가 좋은 것은 주니어 때 잠깐이다. 계속해서 잘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리더가 되려면 사람을 잘 다루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글쓰기와 말하기를 잘해야 한다. 그러니 발표가 망하더라도 일단 해보면 좋겠다.
내 기억에 의존해서 인상 깊었던 메시지를 떠올렸다.(정확히 저렇게 말씀하신건 아니다.) 그래서 말아먹더라도 일단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기 싫었던 이유는 귀찮거나 겁나서가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구린걸 하기 싫은데 내 발표 내용이 너무 구린 것 같다.'라는 생각이 강해서였다. 너무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의 사이드이펙트였다. 그래서 이번 발표 준비는 나의 완벽주의적 성향, 혹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와의 사투이기도 했던 것 같다.
발표가 끝나고서는 정말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를 떠나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유스콘을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재성님과 유스콘 스태프들의 봉사정신이었다. 유스콘은 발표자를 위한 컨퍼런스, 발표를 망해도되는 컨퍼런스를 표방하기 때문에 후원을 받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재성님과 스태프들의 자원봉사로 돌아간다. 18명의 발표를 최소 세번씩 봐주시고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피드백을 해주시는 재성님이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태프 분들도 아무 대가없이 퇴근 후, 주말에 오셔서 열심히 준비를 해주셨다. 나는 발표 당일에 일이 있어서 스태프 분들을 제대로 뵙지 못하고 갔는데, 정말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개발자로서 소속감을 갖지 않고 어떤 개발 문화에 대해서는 매번 툴툴거리면서도 내가 개발자라서 편한 이유, 영원히 개발자를 할 것 같은 이유는 바로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햄햄님 유스콘 발표 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저 이 발표 들었는데요! 걱정했던것과 달리 발표 내용도 좋았고 주니어 개발자로 공감되는 부분 많았어요!
지식의 속도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이 시점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또 재밌는 짤 사진들이 인상 깊었어요! 풀스택 개발자로 승승장구 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