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에서 다룰 것

2022년 11월, 한 달 동안 일어난 1년차 프론트엔드 개발자의 해고부터 재취업까지의 과정을 기록한다.

주의

다소 신변잡기적인 내용이 있고, 개발과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므로 개발면접을 준비하고자 찾아오신 분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다니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이메일로 프리랜서 전환 통보를 받았다. 사실상 권고사직이다. 이번 주까지만 일하라는 통보를 월요일에 받았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말이 정말 맞는지, 쉬운 입사만큼이나 허무할 만큼 간결한 퇴사였다.

모라토리엄이란 '유예기간'이라는 의미이며, 본격적인 인생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요한 것은 결정하지 않은 채 공중에 붕 떠있는 듯 보내는 기간을 가리킨다. 중요한 결단이나 행동을 회피한다는 의미로써, 그것은 회피 행동의 한 형태이며 기간이 한정된 회피라고도 할 수 있다.
오카다 다카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입사 당시 나는 모라토리엄에 빠진 취준생이었다.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는 나'에 머무르며 적극적으로 취업활동을 하지 않았다. 여러 회사에 원서를 내고 아직 완벽하게 준비가 안 되었다며 시험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시험을 봤어도 떨어졌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어쩌면 원서를 냈다는, 지원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안도감에 중독됐을지도 모른다. 결과야 어찌 됐건 나는 원서를 냈고, 시도를 했으나 실패한 것뿐이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 말이다.

회사는 저렴한 개발자를 원했고 나는 내 부족함을 눈감아줄 회사를 원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나는 입사를 했다. 면접도 시험도 없던 손쉬운 입사였기에 퇴사 또한 그러했다. 끔찍했던 크런치모드, 그에 따른 보상의 부재, 저물어가는 기술 스택(php), 사수의 부재, 개발인력 부족 등등, ... 늘어놓자면 수없이 많은 단점들을 가진 회사였고 불만이 가득했지만 막상 소속감을 잃으니 불안해졌다. 내 귀여운 적금과 주택청약, 전세대출이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퇴사와 동시에 이직, 아니 재취업을 시작했다.

재취업 도전

나는 면접을 볼 때 떠는 편이 아니다. 학생 시절의 강사 경험 덕인지 원체 무던하고 덤덤한 성격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면접이라는 자리가 내게는 그렇게 긴장되는 곳이 아니다. 나는 내향적이지만 소극적이지는 않다. 누군가를 만나서 필요에 의한 대화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두려웠던 것은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서류가 통과하면 시험과 면접으로 이어질 것인데, 그를 준비하려면 스스로를 속이며 덮어두었던 부족함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게 무서웠다.

동생은 내게도 항상 이야기했다. 무엇인가를 보여주기에 완벽한 때는 없다고, 자신의 작품을 용기 있게 공개하는 것만으로 성장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 그러니 당차게 원하는 곳의 문을 두드리라고 말이다.
모범피, 백수가 된 모범생의 각성기

지원서 제출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며 눈을 질끈 감고 클릭했다. 부족한 나를 전시하는 데 큰 용기를 준 문장이다. 아예 Notion의 취업준비 페이지 상단에 이 문장을 적어두었다. 취준생 중 몇 명이나 완벽한 상태로 지원을 하겠냐고 자기위로(내가 못났으면 얼마나 못났겠어!)를 하며 지원했다. 회사가 직원 한 명을 채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천만 원가량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해서 그 회사에 떨어진다 해도 내가 면접을 보는 비용은 시간과 마음고생을 제외하면 0원이다. 회사로서는 손해 보는 장사일지 몰라도, 면접관을 할 만큼 경험 많은 시니어 개발자와 독대하는 경험은 귀하다. 게다가 면접비까지 준다. 완전 남는 장사다(라고 떨리는 맘을 위로했다).

required
1. 개발문화가 엿보이는 개발 블로그가 있을 것
2. 외주가 아닌 자사 서비스가 있을 것
3. 시니어 개발자가 있는 팀일 것
optional
4. 재택근무가 정착된 회사일 것
5. 자유로운 분위기(수평적 문화, ~님/닉네임 호칭문화, 자율복장 등)의 회사일 것

위의 조건을 기준 삼아 지원했다. 물론 몇 번의 불합격도 있었다. 서류 탈락을 할 때에는 정말 허탈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그럴듯하게 포장한 나를 무심히 지나치는 회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진열대에는 수많은 상품이 있을 터였고, 나는 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상품인 것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그저 내가 그 자리에 fit하지 않아서 불합격 통보를 했다지만 지원자 입장에서 나는 지금까지 뭐하고 살아왔나 하는 인생 전반에 대한 후회와 스스로의 못남에 대한 자괴감을 느꼈다.

자괴감은 이 짤을 보면서 물리쳤다.

면접 준비

아무리 덤덤한 성격이래도 나를 내보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없애고자 철저히 준비했다. Notion을 활용해 질문 리스트를 만들고 리스트 내에선 어떤 질문을 받아도 매끄럽게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유튜브 <면접왕 이형> 채널에서 내 이력서는 면접관의 질문지와 같다고 했다. 그 질문지를 닳도록 보았다. 몇 년 전에 진행한 프로젝트도 확실히 파악했다. 나는 취업시장에 나라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기에, 고객이 내게 상품에 대해 질문했는데 "그건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라고 답변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준비했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내가 가야 할 길들이 좀 더 명확하게 보였다. 내가 원하는 회사, 원하는 직무의 구직공고에 붙어 있는 조건들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공부해 나가야 될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면접을 거친 후 내가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과,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복기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술면접 예상질문 리스트 중 일부

면접 때 유의한 것들

서류와 코딩테스트에서 떨어진 회사는 어쩔 수 없지만, 나의 면접 준비 방법이 바른 길이었는지 면접을 본 회사는 대부분 합격했다. 나만의 나름 필승전략(?)을 적어본다.

아는 척 하지 말자

면접관으로 나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경험이 아주 많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리라 생각했다. 바쁜 면접관을 피곤하게 하는 대신, 모르는 것이 나오면 모른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대신 알고자 하는 의지는 보여주었다. "그 부분은 잘 모르지만 면접 후 공부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주제네요." 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주니어(저연차) 개발자니까 아직은 모르는 것이 당당해도 될 때라고 뻔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은 입사 이후 멘토와의 커피챗 중에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면접관이었던 분께 나의 어떤 점이 좋게 보여서 채용하셨는지 물었을 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점이라고 답변하셨다. 모르는 것을 빠르게 드러내는 것이 빠른 성장으로 이어진다고도 하셨다.

명확한 말투

말끝을 흐리는 확신 없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고, 명료하게 문장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제 생각에는 ~할 것 같아요, ~하지 않을까요? 처럼 자신감 없는 태도를 지양했지만 동시에 건방져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 페이지 만들 수 있겠어요? 하는 질문에 "될 것 같은데요?" 보다, "상단바와 푸터에 2일, 가운데 섹션 3일 해서 5일 안에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한 말투로 이야기하려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것이 근거다. "성능이 향상되었습니다", 대신 "렌더링 속도가 기존에 비해 3초 빨라졌습니다"가 더 좋아 보인다.

나는 주니어기 때문에 사실 수치로 이야기 할 만한 가시적인 개발 성과가 없다. 컴포넌트를 최적화해서 렌더링 속도를 엄청나게 단축시켰다던지, 리팩토링을 통해 코드를 30% 줄였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이 프로젝트를 사용해서 뭐가 어떻게 편해졌는지!를 강조하려고 했다. 전과 다른 유의미한 결과 또한 근거가 될 수 있으니깐.

인상깊었던 면접 경험

A 회사

최종합격 및 입사 확정
면접 경험이 정말 나이스했다. 평가받는 자리가 아닌 대화를 하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면접관님은 본격적으로 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본인을 소개했다. 마치 내가 그분과 동등한 입장에 선 것 같이 느껴졌다. 무려 10년이 넘는 개발 경력을 가지신 분이었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에 발을 내디딘 햇병아리 같은 내가 그렇게 느끼게 하셨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긴장하면 본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니까 마음 편하게 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기술면접은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했고, 질문 중에 더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허락을 구하고 길게 답변했다. 일부러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힌트를 줘 가며 해결 과정을 보는 질문도 있었다. 답변을 하면 할수록 내 무덤을 파는 느낌이 들 때쯤, 면접관님이 내가 정답을 맞추길 바라서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해결방법을 물어보자 기꺼이 답변해 주셨다.

B 회사

면접 불합격
이 회사는 이상하게 잡플래닛과 블라인드에서 도망치라는 말이 많았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고객사였는데, 감사하게도 먼저 면접 제의를 주셔서 내부 추천 채용 전형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대기업 SI 계열사였는데, 기술면접의 수준이 주니어인 나에게도 너무 쉽게 느껴졌고, 개발 이외의 운영이나 사업에 대한 이해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기술력이 좋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 회사에 들어가면 개발보다는 다른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파견을 나가 근무해야 한다는 점과, 직원 연령대가 높다는 점, 수직적이고 경직된 분위기, 편도 2시간 반의 미친 통근거리 때문에 입사를 포기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지원자의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는지 불합격 통보를 했다.

C 회사

최종 면접 포기
잡플래닛에서 나쁜 면접 리뷰를 엄청나게 많이 본 회사였다. 꽤 큰 회사였고, 처우나 복지가 좋기로 유명했다. 설마 요즘도 그러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판교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면접은 리뷰를 그대로 고증했다.

면접 경험이 많진 않지만 최악이었다. 면접관 중 한 분이 늦게 들어오셨다. 면접을 하는 내내 내 답변을 비웃듯이 피식피식 웃으며 면접관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요즘 젊은 분들은 야근 못하죠?", "왜 이직했어요? 우리 회사도 몇 년 있다 나갈 거예요?", "이건 프로젝트라고 볼 수도 없는 수준인데 이력서에 왜 썼어요?" 등의 화살을 꽂으며 일관되게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면접이 마무리되고 회사에 질문할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제가 너무 부족해서 부끄럽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3년차 이상의 포지션에 경력 8개월의 주니어가 지원했는데, 제 이력서의 어떤 부분을 좋게 보시고 면접 기회를 준 것인지 궁금하다"라고 질문했다. "너무 부족하다 못해 아예 하얀 도화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ㅠㅠ).

면접장을 나오고 불쾌함을 삭이며 이 회사는 붙어도 안 간다라는 백수 치고는 배부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씁쓸함과 함께 삼킬 맥주를 사는 중 합격 통보와 최종 임원면접 일정을 안내받았다.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좋은 회사였지만 그분들과 한 팀이 되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래 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함께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지옥이 따로 없다. 다행히도 A사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고, C사의 임원면접을 거절했다.

나가며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 회사로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2022년 2월 14일 첫 회사에 입사하여 10월 28일에 퇴사했다. 그리고 한 달간의 취업준비를 통해 11월 28일에 입사 확정, 12월 12일에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결과적으로 가고 싶은 회사, 하고 싶은 직무, 소속되고 싶은 팀에 소속되었고,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성장할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에 평생 몸담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겠지만 아마 언젠가 나는 또다시 이직 준비를 할 것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가는 시대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이직을 준비하고 이직을 하게 되는 경험들이, 안전지대에 머무르는 것보다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미래에 이직을 하게 될 나를 위해 일련의 과정을 기록해보았다. 미래의 나에게 이직 과정 중에 느낀 간절함, 불안함과 그걸 이겨내고 얻은 성취감을 전달한다. 이 경험을 다시 들여다볼 때의 나는 어떤 커리어를 밟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분명 멋진 일을 해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