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컴퓨터 역사를 이야기할 때 최초의 전전자식 컴퓨터가 에니악이라는 것과 에니악을 만든 남성 개발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에니악을 작동시키는 일을 했던 개발자들이 6명의 여성들이라는 건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사라진" 개발자들인 것을 보면 아마 나만 몰랐던 것을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사람 저사람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사실 중반부까지도 지금 누구 얘기를 하고 있었던건지 따라가기가 조금 어려웠다. 풀네임이랑 짧게 줄인 애칭이 섞여나와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6명 모두 어릴 때부터 수학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대학에서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2차 시계대전 당시에 탄도 연구소에서 포탄의 궤도를 계산하는 일을 맡을 여성 수학자들을 대거 모집했다. 여기서 이 궤도를 계산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을 컴퓨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원래 컴퓨터는 우리가 지금 쓰는 전자식 범용 프로그래밍 기계를 말하는게 아니라 계산하는 사람(compute + -er)을 의미했다. 여기서 일했던 여성들은 전문가 수준의 업무를 수행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등급은 준전문가로 분류되었다. 이들 중 계속 연구소에 남아 일을 한 케이와 베티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 여름에서야 전문가 등급으로 진급을 한다.
많은 수의 컴퓨터들이 궤도 계산을 계속했지만 여전히 너무 느렸고 더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전전자식 범용 컴퓨터인 에니악이었다. 존 모클리와 J. 프레스퍼 에커트가 처음으로 에니악의 누산기를 작동하는 것을 케이를 포함한 여자 컴퓨터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에니악을 프로그래밍할 개발자로 케이, 프랜, 베티, 말린, 루스, 진까지 총 여섯 명이 모이게 됐는데 처음에는 에니악을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 유닛 다이어그램만 보고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컴퓨터 없이 책으로만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건데 나였으면 못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때부터 책에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처음으로 디버깅의 브레이크 포인트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고, 벤치테스트를 하고, 조건문과 반복문이라는 프로그래밍 개념을 발견하고 만드는 과정이 너무 흥미진진하다. 특히 에니악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만 만지는게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프로그래밍을 해야했는데 읽다보면 진짜 천재들이라는게 이런 사람들이구나 싶고 감탄이 나온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에니악 프로그래미들의 이야기가 여성으로서 컴퓨터 과학 수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영감을 줬다고 하면서 에니악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보고 구글, 마소, 아마존의 여성 근무자들이 감동했다고 썼다. 나는 뭐 그냥 평범한 개발자 1인이라서 그런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막 "와! 나도 포기하지 않고 짱 멋진 개발자가 되겠어!"같은 생각은 안들었다. 하지만 전에 하고싶었다가 포기했던 걸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최근에 공부를 시작했다. 요즘 일이 재미없고 지쳐가고 있었는데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하니까 재미있다. 꾸준히 해서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