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보면 가장 이룬 게 없는 해이면서... 가장 마음이 편해진 한 해였다.
- 프로덕트 엔지니어로 일한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제 1인분을 잘 하거나, n인분 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될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AI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시대 자체가 '가성비'를 점점 부르짖는 느낌이다. 내가 한 일이 누군가의 10배의 효율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자랑하기가 쉽지가 않다. 100x, 1000x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물론 노쇠한 나는 오늘도 1인분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 Next.js 등 유명 오픈소스에 기여할 마음으로 몇달을 붙잡고 보다 결국 포기했다. 일단 Next.js의 App dir에 큰 기대를 가지고 봤던 건데, 현재로서는 Next.js에 마음이 많이 떴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low-hanging fruit이 어느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 경기도 오산이었고, Next.js를 이제 실무에서 안 쓰게 되면서 더욱 관심이 떴다. RSC 자체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너무나 많은 비판에 추진력을 잃은 것 같다. Daishi 아저씨 작업이나, Remix 등에 기여하는 게 더 의미있는 선택일 듯. (현재는 그냥 아무거나 재밌어 보이면 슬쩍 본다.)
- 통합된 포트폴리오, 홈페이지, 블로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반년...아니 몇년을 하고 있는데 딱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좋은 서비스가 있으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CMS까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왔다갔다 하다보니 중심을 못 잡는 듯. 하지만 velog는 개인적으로 조금 글의 질이 너무 낮다고 느낄 때가 있기도 하고, 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여전히 블로그를 옮기고 싶긴 하다.
- AI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가지고 있어서 지켜보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보의 속보가 빠르다. 그래서 솔직히, 이도저도 아닌 AI 회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전에 부당하게 채용 문제를 일으켰던 AI 회사에는 안 갔던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운이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봉은...좀 많이 줄었지만) 일단 기술적 역량도 안되지, 전략도 없고 그냥 기존에 있는 것들을 따라하는 게 전부인데 거기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 단순한 GPT 래퍼가 아닌, AI로 UX 자체를 바꿔나갈 생각이 있는 회사가 있다면 정말 궁금할 것 같다. 그런데 현재는 블록체인이랑 다를 게 없어보인다. (우스갯소리로, GPT 래퍼 회사들은 코인 못 만드는 블록체인 회사라는 드립을 치고 다녔다)
- 회사에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처럼 뭔가 엄청나게 격정적인 곳도 아니고 크게 성장하고 있는 곳도 아니긴 한데, 그냥 꽤 흥미로운 기술 과제들도 있고 모든 면에서 자유로워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 안타깝지만, 그리고 내가 그런 회사가 있는 것을 그냥 모르는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한국에는 기술 중심 기업이 없다고 생각해서 이제 이직에 대한 큰 열망도 없다. 그냥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편하고, 적당히 기술에 관심 가져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 회사가 (모두 만족스러운 건 아니어도) 그 조건에는 어느정도 부합하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제안들도 감사하게 받았지만, 하반기에는 공개적으로 쓸 수 없는 개인적인 일들이 있었어서 여유가 전혀 없었고, 거의 회사 일과 개인적인 업무
누워있기를 처리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다.
-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회사가 없는 것은 – 아마 있어도 입사할 실력이 안 될 가능성이 높지만 – 한국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냥 세계에서 제일 IT 쪽으로 진보한 국가 어뭬리카의 어뭬리칸 스탠더드로 바라보니 그냥 성이 차지 않을 뿐일 터이다. (인도 IIT의 치열한 입시 과정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십억이 넘는 인구의 청년층 천재 중 천재를 골라낸 다음 거기서도 제일 잘 된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곳이 미국 아닌가. 이제는 포기했다)
- 하반기에도 어쩌다보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이번해에 여행으로 쓴 돈이 제법이다. 전세계적으로 물가도 너무 올랐고, 특히 비행기값은 이전보다 훨씬 비싸기도 하고. 여름에 3년동안 찍었던 영상과 사진들이 실수로 날아갔는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루이틀정도 하다가 지금은 그냥 별 생각이 없다. 여행 사진도 대부분 사라졌는데, 경험에 대한 기억은 잘 남아있기도 하고, 지금의 이 휘발되는 순간도 좋다는 생각을 하니까 별 미련이 없다. 몇년만에 다니는 여행이다 보니 세상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 더 좋은 것을 많이 경험했다.
- 나는 내가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오며 살아왔는데, 뭔가가 남지 않은 느낌이다. 내가 뭘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닌데,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느껴서 옵시디언 등을 쓰는 버릇을 가져보려고 노력했지만 정보가 너무 빨리 쌓여서 이젠 포기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포기 상태...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녹화하고 자동 기록한 다음, AI가 분류해야 될 정도의 양의 정보량을 받아들이니까. (그런 컨셉의 앱이 있는 것은 인지하지만, 꺼림직해서 쓰고 싶진 않다)
- 2023년은 정말 지치는 일도 많고 개인적인 발전을 크게 달성하지는 못한 해였는데,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이 많다. 이제 40이라는 나이가 실감이 날 만큼 가까워지다보니 건강이 점점 걱정이 되는데, 연말에는 보험 공부도 하고 재설계도 하면서 건강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2023년을 발판 삼아 2024년엔 큰 문제 없이 조금씩 뭔가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호님 처음 뵀을 때 20대였던 것 같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벨로그도 종종 보러 와야겠어요 2023년 마무리도 행복하게 하시고 내년에는 좋은 일이 많이 있으셨음 좋겠습니다~
kimkk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