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2도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이번 글 역시 벨로그에도 기록해봅니다.
나는 잔잔한 사람이 되었다.
레벨 1 글의 마무리입니다. 정말 호기롭게 저렇게 글을 끝내놨더라구요.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결국 그때의 잔잔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문장을 쓰던 저를 놀리거나 비웃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레벨1 마지막 즈음에는 잔잔한 상태를 몇 주나마 누린 것은 사실이고 그것에 좋아했던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원하다는 것은 없다죠? 잔잔한 강도 결국 강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속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소용돌이 때문이든, 바깥에서 날아온 돌 때문이든, 물로 이루어졌기에 즉시 파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레벨 1 때에는 심한 낯가림과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마음고생도 했어요. 크루들과 친해지면서 잔잔해지는가 싶었지만,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생각이 가득 차 개발을 향한 집중력이 확 떨어졌어요. 사람이 참 갈대같다고 느꼈습니다. 개발 공부 측면에서 프리코스 때 몰입하던 모습은 진작에 없어진것 같고, 우아한테크코스 밖에서 생기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문제들도 저를 동시에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강 양쪽 끝에서 몰아치는 해일 사이에 낑겨 어쩔 줄 몰라했던것같습니다.
해일 사이에 낑겼을 때 일단 가라앉으려고 했습니다. 처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되었을 때, 그리고 곧 제 감정 상태를 느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무섭다
였기때문입니다. 강의 표면에서 해일에 이리저리 치일 바에는 강 속 깊이 숨어드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고민에 대한 생각은 범람하려하는데 꾸역꾸역 술도 더 자주 마시고, 집에서 유튜브 쇼츠만 멍때리고 보면서 문제 상황을 최대한 회피하거나 생각을 비우려고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남는 것은 결국 허망함밖에 없더라구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것이 이런거구나 싶었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최대한 직면해봐야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직면할려고해도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라는 생각 밖에 안들더라구요. 고민 속에 빠져있던 찰나 레벨 2 때부터는 면담 열테니깐 그 때까지 최대한 멘탈 붙잡고있어봐요
라고 말해주던 포비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포비 면담 예약이 꽉 차 있던 상태였습니다. 근데 제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저에게 양보해준 크루 덕분에 면담 예약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헤일리
한테 고맙다는 말 다시 한번 하고싶어요 🥹) '우테코에 집중하고 싶은데 외부 요인들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다.'라는 주제로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 도중에 사실 포비가 저에게 던진 질문에 이건 생각해 본적 없는 질문인데?
라는 것도 많았고, 20초 이상 뜸들이고도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지 못한 질문들도 꽤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저에대해서 잘 모르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 안해본 부분도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면담 후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보다 '문제 회피 기간동안 왜 그런 행동을 했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각해보니 레벨1 때 많이 사라진줄 알았던 완벽주의 성향이 제 자신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이 되니 다시 발동되었더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못 찾겠으니 자기파괴적으로 저를 놔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제 행동을에 대한 원인을 대략적으로 찾았을 때 최근에 현업 개발자 특강에 들었던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퍼포먼스를 잘 내는 개발자들은 추상화된 서비스를 툭 잘라서 개발해라고 던져줬을 때, 이 큰 덩어리를 작게 잘라서 본인만의 태스크를 만든다.
제 인생 고민들을 디버깅한다는 생각으로 제 고민들도 잘게 잘라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문제들을 최대한 분류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고민사항들은 우테코 밖,안으로 크게 나누었습니다. 그런 후 각각에 고민 사항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이 고민 사항 밑에 각각 원인, 포기해야되는 부분, 이 문제로 인해서 새로 알게된 내 모습, 앞으로 해야되는 것을 적어보았습니다.
원인은 고민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적어야되는 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고민을 회피하고 상황을 놔버린것의 이유를 완벽주의로 뽑은만큼 고민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완벽주의를 버리고 포기해야되는 부분도 꼭 적어볼 필요가있다고해서 문항으로 뽑아보았습니다.
저렇게 템플릿을 만들어놓고 정말 정제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포기해야 되는 부분 항목을 적으면서 자연스럽게 밑에 항목인 이 문제로 인해서 새로 알게된 내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어서 적히는 경험도 했고, 포기하지 말아야될 것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경험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지우고 다시 항목별로 글을 깔끔하게 나눈다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부분도 떠올리게되는구나 하고 신기하다, 항목을 잘 뽑은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습니다. 그리고 위 3가지 항목을 적다보니 앞으로 해야되는것도 쉽게 적을 수 있더라구요. 이 부분은 todo 형식으로 정리해놓았습니다.
머리 속에있던 것을 템플릿에 글로 정리해보았을 뿐인데, 그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내가 적어 놓은 글(심지어 정제되어있지 않은데도)을 내 눈으로 다시 읽을 때 드는 느낌이 정말 다르구나 싶었어요. 처음엔 다소 감정적인 상태로 글을 적기 시작해도, 아무리 정제하지 않는다고해도 말이 되는 문장을 적어야되긴하니깐 이 노력만으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메타인지적으로 저를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보다 차분해지고 담담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깊은 강 속에서 올라와 작은 땟목에 몸을 실은 기분이었습니다.
레벨1 때 글처럼 마냥 "해결 된 것 같아 짜잔 해피엔딩" 이런 느낌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진 않네요. 지금은 그저 해일이 난무하는 강 위에서 작은 땟목에 몸을 걸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템플릿에서 적은 앞으로 지켜야할 것
항목들을 제가 마음먹은대로 지켜낸다는 보장도 없고, 저런 활동으로 인해 고민사항이 마법처럼 해결되는 것도 절대 아니니깐요. 다만 제가 고민하고 있는것들에 대해 최종 결단을 내려야만하는 상황이 왔을 때 이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확실히 줄 것 같습니다. 또 후회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고해도 그런 결정을 내린 과거의 저를 비난하기보다는 존중해줌으로서 다시 마음을 다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노력도 들어간 선택의 결과이니깐요.
일단 남은 기간동안은 제가 적은 앞으로 지켜야할 것
을 지켜 나가는데에 집중하려합니다. 살짝 옆길로 새어나가려해도 저를 비난하지 않고 괜찮다고 다독여줘서 다시 원래 길로 돌아오도록 하는것이 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강이 요동치는것은 제가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요동치더라도 회피하지않고 그 위에서 어느 부분이 요동치는지 차분하게 살펴보고 저를 사랑해주다보면 언젠가는 강의 상태와 상관없이 강 위를 걷고있는 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살짝 해봅니다.
긴 글이었는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