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퇴사를 앞둔 지금 인수인계를 포함하여 나에게 주어진 모든 업무를 마무리했기 때문에 3년 10개월(거의 4년)의 스타트업 생활을 돌아보며 회고나 한번 장황하게 써볼까 한다. 이전 조직을 나올때 이런 것들을 못 해서 그 시절의 결론이 명확하게 없는 느낌이 꽤나 아쉬웠었다. 더욱이 나중엔 이때의 기억이 희미 해질 테니 아직은 기억이 선명할 때 지난 3년 10개월의 시간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었다. 기라성 같은 퇴사 선배들의 글들을 찾아보니 회고보다 부검? 같은 류의 글이 많이 보이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를 남기고 싶기 때문에 회고란 양식을 빌려본다.
처음 입사 했을 때 회사의 상황을 기억해보자면 40명 정도 되는 조직이었고 매출은 4천만 원을 간당하게 넘었으며 시리즈 A를 받은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지금은 130명 정도 되는 조직에 매출은 수십억 이상 나오며 시리즈 C를 받은 지 한참 전이다. 여러 지표를 두고 따져봐도 내가 근속한 기간 동안 서비스는 수십배 성장을 했다. 솔직히 나를 비롯하여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던 동료들 모두 이러한 성장뽕?에 취해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성장의 결과로 볼때 우리가 취했던 전략이나 고민들, 노력들이 올바르게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8년도 4월 즈음 바로 직전에 몸 담았던 조직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퇴사 회고를 못 해서인지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까닭인지 퇴사 사유가 분명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이렇다 싶은 이유가 없다는 건 아마 자잘한 이유들이 모여서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다. 확실히 기억나는건 2년 정도 만든 게임은 애매하게 실패했었고 당시의 우리 팀은 인공호흡기를 달아가면서 살려보고자 긴시간 고분분투 했었다. 이런 노력이 끝날즈음 사내에 이미 성공한 다른 조직에서 운영 업무를 해볼 제안이 왔었는데 업무 자체에 흥미를 느끼진 못했던 기억. 곧이어 퇴사를 했다.
당시엔 유니콘 스타트업이 많진 않았는데 지금 좀 찾아보니 오픈마켓 커머스와 다른 산업(IT 서비스가 아닌)을 제외하곤 배민, 토스 정도가 유일했다. 여론에선 다음 유니콘을 추측하기도 했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듣도보도 못한 업체들이 투자를 받았다고 기사를 냈었다. 요즘의 긴축 시대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스타트업에 기회가 있고 자본이 몰리는 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것 같다. 더욱이 퍼포먼스가 훌륭했던 지인들, 또한 그들의 지인들도 스타트 업으로 이직 했다는 소문들이 종종 들려왔다. 나 역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어느정도 감지 했기에 다음 행선지는 스타트업에 가는걸로 결정 했었다.
이전 조직 퇴사 후 쉬는 동안 다음과 같은 나만의 이직 기준?을 세워봤다.
이전보다 작은 조직을 원했던건 그래야 좀 더 끈끈하고 기민한 조직 그리고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시장의 독점적인 위치를 선점하는건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모멘텀중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한 위치에서 주어진 문제를 잘 풀다보면 유니콘이 되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이유는 면접 경험에서 주로 파악할 수 있었는데 내가 가진것을 절실히 원하고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주며 그에 맞는 존중과 처우를 제공해줄 수 있는 회사. 사실 모든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퇴사하는 이 회사는 이 세가지를 충분히 만족했다.
개인적으로 3년 10개월의 기간중 가장 주요하고 보람있는 성과라고 한다면 프론트엔드 챕터를 빌딩한 것을 말하고 싶다. 입사 초기 2명 이었던 프론트엔드 팀은 현재 11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2개의 스쿼드를 한명씩 겨우 지원했던 추억을 뒤로한채 현재 7개의 스쿼드를 지원하고 있으며 각 피쳐의 데스크탑, 모바일웹, 백 오피스까지 무리없이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 처음와서 챕터 리드라는 기술조직의 중간관리자 정도되는 역할을 맡았는데 초기엔 2명의 챕터 입장을 대변하는 귀찮은 일들과 프론트엔드 개발업무를 맡았다. 돌아보면 이때가 가장 재밌게 일했던 시기 였던것 같다. 세상 날것의 아이디어를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도 꼬리를 이어주는 동료들이 있었고 새벽까지 반잔 하면서 제품에 대한 각자의 방향을 토론해도 늘 재미있었다.
다시 챕터 이야기로 돌아와서, 초기에 나의 업무 비중을 총 10이라고 가정하면 매니징 1, 엔지니어링 9정도를 수행하며 재밌게 서비스를 만들었던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챕터에도 새로운 인원이 합류 할수록 나의 이런 포지션에 변화를 줘야만 했는데, 시리즈 B를 받을 당시 팀원들의 건의는 기술문화 결핍과 타 챕터와의 갈등, 스쿼드 전배 요청등 주제가 참으로 다양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나오는 기술적인 이슈도 만만치 않았지만 더 힘든건 기술적이지 않은 문제였다. 챕터 구성원들의 건의 및 요청을 해결하려다 코드를 짤 시간이 아예없던 날도 부지기수 였다. 챕터의 규모가 11명이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 되었고 나의 업무는 매니징 8, 엔지니어링 2 라는 극단적인 포지션으로 자연스레 바뀌어갔다. 엔지니어 인생을 접고 뜻하지 않은 관리자 테크트리 시작이라는 두려움을 뒤로한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챕터의 규모는 더욱 커졌고 우리의 제품은 더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 4년동안 우리 챕터를 굳이 자평 해보자면 우린 다른 챕터와 다르게 항상 업무외 알파를 수행해왔고 훌륭한 기술문화를 유지하고 전파 했으며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높은 수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품팀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요구사항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해내는 챕터였다. 개인적으로 자랑하고 싶은것은 조직내 리텐션이 가장 높은 팀이기도 했다. ㅎㅎ
돌아봐도 지금껏 프론트엔드 팀이 조직의 발목을 잡은적은 없었던것 같다. 모두 훌륭한 팀원 덕분이다.
지난 4년동안 이 조직에서 나의 영향력과 자신감의 근간은 프론트엔드 챕터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젠 이곳에 없는 이들을 포함하여 같이 달려온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회고이니 만큼 문제를 기록하고 복기해보는게 적절할듯 싶다. 지난 4년의 경험 중 가장 좋지못했고 아쉬웠던 기억인데 비즈니스 모델을 몇번에 걸쳐 바꿨던 프로젝트였다. 한창 성장하는 지금의 제품을보니 이 또한 큰 그림안에서 성공적인 시행착오였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는 지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당시 내막과 과정을 기억하자면 문제가 가득했다. 지금과는 달랐던 양적 완화의 시대에 선 트래픽 후 매출이라는 유니콘의 성장 공식을 역행 했는데 결과적으로 가격을 유저에게 상당부분 전가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연히 NPS나 앱리뷰등에서 보여지는 사용자 만족도 지표도 뚜렷하게 하락 했었다. 당시 수많이 인입되던 VOC는 시원하게 무시했고 거진 반년정도를 오로지 매출 관련 KPI만 보며 서비스의 성패를 평가하던 시기였다. 보통의 이런 문제가 그렇듯 탑다운으로 무리하게 업무가 지시 되었으며 제품팀은 원치 않은 이 업무에 대해 긴시간 적잖이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팀 전반의 동기부여가 자연스레 떨어지면서 이 업무 전후로 많은 훌륭한 동료들이 퇴사했다.
기업은 분명히 돈을 벌어야하고 비즈니스 모델은 끊임없이 개발되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있는 이 타당한 명제가 제품의 본질과 사용자 가치를 쫓아온 제품팀 구성원 들에겐 어느정도 폭력이었고 이직 사유였다. 지금 복기를 해봐도 굳이 그걸 그때에 그런 방법으로 했어야하나 싶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선 트래픽 후 매출 이라는 관점에서 나중에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게 제품의 고속 성장에 더 유익 했을것 같다. 이 어려운 문제를 뒤로한채 새로이 깨닫게된 사실은 “일을 하는 과정의 합리성이 일 자체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깨진다면 제품팀의 동기부여는 크게 떨어뜨질 수 있으며 그런 제품팀에서 나온 제품은 진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경험들과 함께 이곳에서 얻게된것이 아주 많다. 나의 엔지니어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팀 매니징을 시작한 시간 이기에 개인적인 기술적 성장을 너머서 팀을 어떻게 만들고 이끌어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된것 같다.
시행착오를 거듭할수록 매니징은 엔지니어링과는 전혀 다른 영역임을 깨달았는데, 분기별 기술 아젠다 제안하거나 꼼꼼하게 코드 리뷰하는것,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것 같은 챕터 리드가 해야하는 업무 보다도 팀원들의 이야기를 긴밀하게 듣거나 시기에 맞춰 적절하게 동기부여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팀원들에게 공평하게 대하는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은지 솔직히 얼마 되지 않았다. 기술보다 이러한 소프트 스킬같은 부분에 더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모두가 만족하는 좋은 팀이 되어 있더라.
그 다음으로 이곳에서 얻은것을 말하자면 기술 그 자체보다 제품의 본질과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전에 내가 추구 했던것은 오로지 기술적 퍼포먼스였기 때문이다. 피쳐의 아이데이션 부터 출시 이후 테스트, 성과 평가까지 피쳐가 개발되는 A-Z까지의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도메인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수 없이 많다. 엔지니어가 이러한 것들에 적극 참여 하여 팀의 에너지가 상승하고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아이디어가 이전보다 많이 논의 되며 시장의 기대보다 제품이 빨리 출시되어 높은 성과를 가져가는 팀의 경우를 지난 4년동안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더욱이 최근 구직을 해보니 시장에서 엔지니어에게 요구하는 능력도 기술보다도 제품과 도메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을 원하는듯 하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3년 10개월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워낙 다사다난 했기에 할말이 많은것 같다. 이곳에서 많은것을 배웠고 많은것을 얻었다. 많은것을 함께한 팀원 들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혹여나 나로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있으면 이 글을 빌려 사과를 드리고 싶다.
업계에 그래도 십 수년간 있다보니 어딘가에서 다시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젠 같이 일할 수 없지만 언젠가 좋은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긴 시간 함께한 동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케이ㅎㅎ 태경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저 플로이드입니다 😅
같이 일하면서 기술과 비즈니스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비개발 직군과 의사소통하시는걸 보면서도 좋은 의미의 놀라움을 전해주셨던..
저에게는 프랫과 함께 의지하던 동료였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ㅎㅎ
말씀대로 어딘가에서 또 만나리라 생각합니다.
ㅎㅎ 단체사진 추억돋네요
"일을 하는 과정의 합리성이 일 자체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시장이란 전쟁터에서 개인의 무력이 뛰어나다고 승리할 수는 없겠죠.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성'이 있어야 집단의 힘이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 퍼포먼스를 넘어서 제품의 본질과 문제에 집중하게 되셨다는 부분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디자이너, 기획자, 엔지니어 모든 직군이 제품에 집중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효율적 소통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실질적으로 제품을 구현하는 엔지니어가 제품에 집중할 때 발생하는 효과가 정말 크죠.
그래서 많은 시니어 개발자들이 "좋은 코드를 넘어서 이 코드가 사업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해보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경험과 생각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스타트업 취업 준비하고 있는 신입 개발자입니다.
우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참고 되었습니다.
이번에 배달앱 스타트업 면접 준비하고 있는데 면접 질문이 도저히 예상이 가지않아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어서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회사측에서는 스타트업 개발자의 가장 중요한 역량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문제가 생겼을 때 OO씨라면 어떻게 해결하실건가요?" 같은 질문으로요.
개발 관련해서 생기는 문제를 물어보겠지만, 개발 지식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추가로 그 방법이 비즈니스적으로 어떤 이펙트를 줄 수 있을지도 설명 가능하면 좋다고 합니다.
직무는 앱 개발입니다!
혼자 생각해봤을 때는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문제를 제게 질문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로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꼭 취업하고 싶은 곳이라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문의드립니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스타트업에서 무슨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무슨 문제가 생길지 조언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멋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