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만으로 2년을 강원도 화천에서 살았다.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화천은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추워서 마치 지구가 아닌 듯한 날씨를 지닌 지역이다. 그곳에서 군생활을 할 때 언제는 무릎 이상까지 눈이 쌓일 때도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이 추위에 적응했으니 다른 곳의 추위는 별거 아니게 느껴질 것이다 라고 건방진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은 2020년을 3시간을 채 남기지 않은 시간. 밖에서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다. 아. 이곳은 강원도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대전 카이스트 문지캠퍼스다. 바깥과 닿아있는 건물의 유리벽쪽에 앉아 글을 쓰는 탓인가 발이 시렵다. 또 이상하게 강원도에서 했던 생각과 달리 식사를 하러 잠시 건물을 벗어나 걸을 때면 여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추워한다. 그때는 그때의 지금은 지금의 날씨에 적응해 또 춥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래서 그런가 사람은 태어나 죽기 전까지 여러 옷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마다 옷에 맞는 생활을 한다. 나는 교복을 입었었고, 과잠바를 입었었고, 전투복을 입었었고, 또 지금은 개발자라는 옷을 입으려 하고 있다. 개발자들은 블로그를 참 많이 쓴다. 블로그를 쓰는 문화는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정말 멋있고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문화를 동경하며 많은 글을 보았는데 그 중 회고라는 것을 보았고 나도 쓰고 싶어졌다. 또 쓰려고 생각해보니 쓸 말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시작한다.
올해 6월 30일, 길고 길었던 28개월 간의 장교로의 군 복무를 마쳤다. 아직 군복무를 하지 않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군복무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다. 그 근심과 걱정을 내 다른 동기들과는 조금 느리게 27살에 해소했다. 막상 끝나고 나니 별거 아닌 허무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국방에 더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도 있었다.
전역할 때 위 사진과 같이 과분하고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너무나도 많은 사랑과 앞으로에 대한 응원에 정말 감사했다. 내가 퇴임사를 할 때 엉엉 우는 용사들도 있었으니 나름 군생활을 잘 했나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혼자 흐뭇하게 웃을 때가 많다.
집에 사무실을 차렸다. 전역 후에 앱 서비스를 만들어서 창업을 하고 싶었고 다행히 집에 사무실을 만들 수 있게 허락해준 부모님 덕분에 나름 사무실도 생겼었다. 그곳에서 정말 인고의 시간을 견뎠지만 의지박약과 혼자 이 길을 걸으며 생기는 혼란에 많이 힘들었다. 결국 출시는 하지 못했고 미완성인채로 남았다.
전역하고 가장 달라진 점 중 하나가 더이상 내 통장에 월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했던가 매달 들어오던 돈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었나 보다. 더이상 들어오지 않는 월급에 굉장한 불안함이 생겼다. 당장 뭐라도 해야된다는 생각에 알바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살면서 알바라는 것을 해본적이 없었던 나는 어느 곳에도 쉽사리 지원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 많이 했었던 과외를 구해볼까 했는데 우연찮게 집 주변에서 과외가 구해졌다. 위 사진은 굉장히 쿨하신 학생의 어머니가 과외비를 현찰로 주셔서 찍어본 사진이다.
학생은 고3 여학생이었고 오랜만에 과외를 하는 터라 나도 굉장히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12월 수능때까지 학생을 가르쳤고 다행히 학생이 원하던 목표 점수가 성적표에 찍혔다. 현재 그 학생은 홍대, 경희대에 붙어서 어디를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외 정도로 그 불안함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어떻게 장교를 했는지 모를정도이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운동하기 그 좋은 환경에서도 운동을 그닥 멀리했었다. 가끔 풋살은 했지만. 그런데 오히려 전역하고 나니 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거의 주 6~7일을 헬스장을 다녔다. 의외로 점점 무게를 늘려가며 운동하는 데서 재미를 느꼈고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한 3개월 간은 열심히 운동을 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헬스장을 열지않아서 헬스장은 가지 못하지만 여기있는 동료들과 아침에 가볍게 운동을 하고 있다. 꾸준하게 조금이라도 운동하는 습관은 잃지 않아보려고 한다.
혼자서 앱개발을 하며 헤매다 우연히 정글에 대해 알게되었고 운좋게 합격을 해버렸다. 말로만 듣던 카이스트에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이제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고 벌써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 정말 이 기회를 갖게된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또 정말 좋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곳이라 더 좋다.
2020년은 참 다사다난 했다. 특히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평범한 삶이 송두리채 뒤바꼈다. 힘든 사람도 정말 많았다. 실제로 뉴스에서 올해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서 바이러스가 종식되길 기원한다.
새로운 옷을 입으면 한동안은 조금 어색해 보인다. 또 새로운 신발을 신으면 한동안은 발이 불편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옷은 내옷이 되고, 신발은 편해진다.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고 있는 내가 그 시간을 견디고 당당히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그런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해주고 싶다.
Good bye, 2020.
항상 목표를 잃지 않고, 달려가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하시던 것 만큼 올해를 보낸다면, 딱 맞는 개발자의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작년보다 더 나은 올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