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공자로 AI 개발자 양성 과정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남들은 벌써 코드 한 줄이라도 더 적어보려 할 때, 나는 보름 동안 단 한 줄의 코드도 쓰지 않았다. 대신 기획서와 설계도를 붙잡고 늘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나중에 편하게 일하려고' 기획에 시간을 쏟았다.
처음 사이드 프로젝트를 마음먹었을 땐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아 모든 게 순조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첫 삽을 뜨려니 막막함이 앞섰다. 내가 제공하고 싶은 서비스는 명확한데, 정작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로그인 하나에도 회원가입 로직, 보안 설정, 유저 테이블 설계가 필요했고, 챗봇 하나를 넣으려 해도 유저 데이터와의 조인 관계를 고민해야 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직감했다. '이대로 막무가내로 시작했다간 반드시 중간에 꼬여서 포기하게 되겠구나.'
사실 이전에도 AI 채용 매칭 서비스를 기획하다가 현실적인 데이터 수급의 벽에 부딪혀 프로젝트를 접었던 아픈 경험이 있다. 그때의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 영업을 할 때도 나는 새로운 아이템이 생기면 '영업 기획'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치밀하게 짜놓은 매뉴얼이 있으면, 실제 현장에서는 그 안에서 노력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구현 가능성을 먼저 검증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한 뒤, 기능부터 DB까지 빈틈없이 기획하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확신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욕심이 많이 났다. 단순한 필터링 서비스를 넘어, 정책자금 심사 기준을 완벽히 학습한 전문 심사관 같은 '소상공인 맞춤형 AI Agent'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사후 관리, 알림 기능, 챗봇은 물론 사업자등록증과 재무제표를 분석해 정보를 자동 입력하는 기능까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솔직히 '이걸 나 혼자 다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이건 사업이 아니라 나의 '경험'을 쌓는 과정이다. 어려운 벽에 부딪히고 그걸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믿었기에, 나중에 기능을 간소화하더라도 일단은 하고 싶은 걸 다 설계해 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 기능 정리가 끝난 뒤 마주한 테이블 설계는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참조 지옥과 조인 지옥 속에서 테이블은 끊임없이 불어났다. 교육 과정에서 실습할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규모였다. 실제 서비스가 '동작'하고 '구현'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 구조가 필요했다.
처음 8개로 시작했던 테이블은 어느새 12개가 되었고, 채팅 기록 관리를 위한 '챗룸 테이블',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관할 테이블 등이 추가되어 결국 총 14개의 테이블로 마무리되었다. 확실히 기획을 단단히 해두니 ERD 작업은 속도가 붙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보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생각나는 컬럼들 때문에 부랴부랴 슬랙에 적어두고 다음 날 수정하는 '수정 지옥'의 연속이었지만, 이 과정이 없었다면 코딩 단계에서 수십 번은 뒤엎었을 것이다."
기획을 하며 쏟아져 나온 생각들을 휘발시키지 않기 위해 철저히 문서화를 진행했다. 단순히 실습 과제를 제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정리한 내용들이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 기록들은 결국 내 성장을 돕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보름 동안 공들여 만든 '지도'들은 다음과 같다.
"이 문서들은 단순히 기록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코딩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줄 나만의 '전략 매뉴얼'이다."
11개 페이지의 복잡한 흐름과 14개의 테이블이 얽힌 초기 ERD 구조를 잡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덕분에 서비스의 뼈대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졌다.
보름을 보내며 깨달은 건, 기획을 대충 해서도 안 되지만 100% 완벽한 기획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컬럼이 떠오르고,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샘솟는다. 완벽함에만 집착하다간 평생 첫 삽도 못 뜨겠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하지만 지난 보름간의 과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코드 한 줄 적지 않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쥐어짜 만든 문서들을 보니 확신이 생겼다.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겠구나, 이 지도만 있다면 끝내 내 손으로 완성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