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가장 엉망이었다

주싱·2024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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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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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일들이 엉망진창이란 생각이 든다. 왜 일은 이 지경까지 방치된 건지, 그들은 왜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지, 일은 내 뜻대로 쉬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조금은 성장한 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흔들림 없이 집중하게 된다. 이상한 소리를 해도 흔들림 없이 질문을 하고 이상한 대답 가운데서도 배우고 우리것으로 만든다. 누군가 왜 이렇게 하지 않는지 불평하는 대신 나의 일 우리의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혼돈스러운 회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말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요즘 우리 집은 뒷정리 운동이 한창이다. 아이들에게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책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깨진 유리창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며 아이들이 스스로의 공간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북돋아 준다. 정말 1주일만 아무렇게나 지내면 집이 쓰레기장 못지 않은 공간이 된다. 집안을 둘러보니 아내가 1년 넘게 쌓아둔 장모님댁에서 가져온 어릴적 짐들이 방치되어 있다. 좀 치우자 말하면 잔소리 한다고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 쉽게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하루종일 피곤이 쌓인 덕일까, 늦은 저녁 집안을 둘러보니 집이 엉망진창이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다. 그러고 보니 고장난 전등은 몇 달 째 내 손을 기다리며 벌거 벗은채로 있다.

문득 회사만큼이나 우리 집도 사실은 엉망진창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 공간에서 회사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어쩌면 우리집에 가장 엉망진창인 건 아닐까? 만약 내 회사를 가진다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이상적으로 움직일까 질문하게 된다. 비관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세상 모든 곳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엉망진창의 상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싶어질 뿐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지금까지 해온 것 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느리더라도 작더라도 옳다고 믿는 영향력을 그곳에 미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곳에서 순간의 혼돈을 헤쳐갈 해법을 찾고 돌파하는 경험을 쌓을 필요가 내게는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부끄럽고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오직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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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상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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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글을 읽다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에 대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혹시 주싱님께서는 일에 대해 어느정도까지의 스트레스가 적정한 스트레스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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