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까지 13시간 : 삶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큰 인내를 요구한다

주싱·2024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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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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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거리며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상태로 13시간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한다.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증상 같은데 내 몸과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을 찾으며 정말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동료가 내가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찬양을 틀어 이어폰을 건내준다. 익숙한 이 찬양을 잠시 듣고 마음이 진정된다. 아내에게도 비행기가 뜨기 전에 카톡을 보내 기도를 부탁한다.

독일을 경유해 폴란드로 가는 첫 번째 비행기에 탑승했다. 복도자리를 원했는데 하루 전날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바람에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4명이 어깨를 마주하고 앉는 안쪽 자리다. 다행히 동료들을 양 옆에 두고 앉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자리가 너무 좁다. 무릎 간격이 좁고 옆 동료들과 어깨도 거의 닿을 듯 하다. 이것이 정신적인 질병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어떤 증상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런 증상이 폐쇄공포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어나 2~3번 정도 경험한 적이 있고 오늘도 만난 이 증상은 사람이 많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리를 뻗을 수 없는, 무릎을 옴싹달싹 할 수 없는 환경에 오래도록 있어야 할 때 일어난다. 스타렉스의 4열에 끼여 앉아 경주의 놀이동산에 갈 때, 승용차 뒷열 가운데 자리에 앉아 창원에서 대전으로 출장을 갈 때 그리고 오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독일까지 13시간을 가야하는데 중국 상공에서 무슨 이슈가 있다고 1시간이 출발 지연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 공포의 자리에 1시간을 멍하니 앉아 출발을 대기해야 한다.

겨우 마음이 진정되었는데 저 앞에서 갓난 아기가 울음을 터트린다. 부모가 어루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숨 넘어갈 정도로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아마 아기였다면 아까 저렇게 울어버렸을 것 같았다. 아이가 편안히 이 긴 비행을 멀리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얼마나 갔을까 시계를 보니 6시간 쯤 흘렀다. 한참 인내하며 온갖 것을 다 했는데 아직도 7시간이 남았다니, 삶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은 그래도 조금씩 가고 있다. 요즘 하고 있는 달리기를 생각하며 내가 마라톤을 뛰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중간 중간 스트레칭을 하고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 안에서 나는 그저 이 환경이 주는 불편함을 잘 견디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이나 주말에는 무엇을 할지 같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이 불편한 자리에서 어떻게 지금을 잘 보낼지 생각한다. 오늘은 내게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드디어 마라톤 완주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렸다. 내 정신이 내 허리가 여기까지 잘 버텨줘서 감사하다. 1시간 가량 다시 폴란드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제 1시간 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늘이 내게 준 이 메타포들을 잘 기억해 뒀다가 삶의 곳곳에 적용해야 겠다. 인생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큰 기다림을 요구한다. 괴로울 때 내 몸과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을 찾는다. 현재의 상황을 잘 견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값지다. 폴란드에서 해야 할 회사의 일들은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오늘 배운 것들을 생각하며 인내하고, 견디며 잘해보려 한다. 시간은 안 가는 것 같아도 조금씩 흘러 끝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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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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