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성경학교 일기

주싱·2025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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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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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신입 선생님

공과 준비는 늘 긴장된다.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할지, 중간에 말 문이 막히면 어떡할지, 여러 생각이 든다. 부서 전도사님이 문득 생각나 혼자 웃는다. 내가 무슨 말씀 설교자도 아닌데 이렇게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도 조금 웃기다. 그래도 역시 공과는 쉽지 않다. 이번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남녀 아이들 모두 섞여 있는데 아이들이 제각각 자기 할 일을 한다. 나에게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애석하게도 없다. 얘들아 얘들아 한 사람씩 불러보지만 아이들이 쉽게 말을 들을 리 없다. 첫째 날, 진땀을 흘리며 망했다고 생각하다가 엉망인 상황 속에서도 분명 은혜가 있을거라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첫째 날을 마치고 우연히 선생님들과 삼삼오오 모여 공과 얘기를 나눈다. 다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어려웠다는 말씀을 해준신다. 다행이다. 그 중에 유년부에 오래 계셨던 한 선생님께서 자기의 팁을 말씀해 주신다. 선생님은 공과 안에 각 단계 단계들을 미리 다 뜯어서 모아놓고, 하나씩 나누어 주신다고 했다. 맞다. 나는 그냥 한 번에 아이들에게 책을 줬더니 아이들이 내 설명도 안 듣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한 거였다. 그날 집에 가서 아내와 함께 모든 공과 책의 활동을 다 뜯어서 클립에 정리했다. 다음날 아이들을 모아놓고 짠하고 하나씩 활동지를 나누어주며 공과를 진행했는데 그 전날 보다 훨씬 진행이 매끄러웠다. 장미영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전도사님께서 늘 청년 선생님과 장년 선생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가 된 선생님들 모두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나 같은 신입 선생님에게 여러 사람들의 조언과 가르침이 필요한 것 같다.

둘. 저 5분은 꼭 예배 드리고 싶어요

여름성경학교 반 배치를 보니 유년부에서 나름 장난이 심한 남자 아이가 우리 반에 있다. 평소에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아이여서 이번에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경학교 첫 날, 아이와 함께 예배 드리는게 쉽지는 않다. 조장을 정하는 것부터 틀어져 아이 마음이 상했고 자기 대신 조장이 된 아이가 의견을 낸 우리 조 이름에는 무조건 반대하며 모든 아이들이 찬성하는 일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이 일로 여름 성경학교 내내 반 이름 얘기만 나오면 아이가 불만을 표출했고 반 분위기도 함께 안 좋아졌다. 둘째 날 저녁에는 아이가 급기야 화를 내며 울기 시작했는데 다른 아이들의 식사는 도와주시는 선생님께 맡기고 아이와 유년부에 남아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나랑 대화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아, 아이의 기분을 먼저 풀어줘야 했다. 때마침 성경학교 시작 전에 주려고 준비했다가 주지 못한 간식 선물과 편지가 있어 아이에게 전했다. 아이 마음이 약간 풀어지는 걸 보며 선물은 아이들에게 사랑의 언어가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무튼 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아이가 선생님 왜 조장 뽑을 때 투표로 뽑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차, 싶었다. 반에 자기랑 친한 아이들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자기는 가위바위보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선생님이 몰랐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가 투표에 대한 마음에 상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다수결로 자기에게 좋지 않은 일들을 결정하고 한 적이 있다고, 그때 속상했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에게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앞으로 투표로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반 이름은 이번은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하며 이제 더는 반 이름을 반대하지 않기로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러는 것 같아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와 조금 더 가까워 진 것 같았다. 저녁 집회 전 아이가 내게 저녁 집회는 얼마나 하는거냐고 물었다. 기도까지 하면 족히 1시간은 넘을 것 같았지만 솔직하게 말해주면 시작부터 힘 빠질까봐 대충 20분은 넘을 것 같은데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아이가 자기는 5분 이상은 듣기가 힘들다고 찬양 소리나 설교 소리가 계속 들리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두 번째로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말이 괜한 핑계 같지 않아 함께 앉아 짧게 기도를 해주었다. 정말 다양한 배경과 상황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데 교회 시스템은 사실 이 모든 아이들에 맞추어 설교를 짧게 한다거나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정말 아이들의 영혼과 예배 사이에 부모님들과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5분이라도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그 짧은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나머지 55분이 괴로운 시간이 되지 않도록 사랑해주고 돌봐주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때 아이의 말을 곱씹으며 아이가 내게 선생님 저 5분은 꼭 예배 드리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셋. 하나님의 마음

성경학교 우리 반에 조금 특별한 아이가 한 명 있었다. 평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데 겨울, 여름 성경학교에는 빠지지 않고 교회에 오는 아이었다. 성경학교 마지막 날 아이에게 우리 내일부터 못 보는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아이와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음에 꼭 보자고 말해 주었다. 아직 스스로의 의지로 교회에 올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부모님께서 아이를 교회에 보내주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성경학교가 끝나고 다음날 주일 예배에 혹시나 했는데 아이는 역시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둘째 날 저녁 집회에 아이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날 저녁 집회 전에 성경책이 사라진 걸 깨닫고 책을 찾으려고 잠시 일어나는데,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따라왔다. 아이가 어찌나 손을 꼭 잡았던지 작은 손에서 다부진 힘이 느껴졌다. 아이가 너무 어린 아기처럼 선생님 손을 잡고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어색한 마음에 아이 손을 살짝 뿌리치고 성경책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이 날 별 생각 없이 뿌리친 아이의 손과 다시 아이를 교회에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이의 얼굴과 함께 오버랩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모님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도 한 번 드리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교회오시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아이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는 다른 친구 부모님을 통해 성경학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선물한 작은 연필 선물도 편지와 함께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한 것 같다. 아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복한 아이로 자라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내게 보이시며 잃어 버린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잠깐 내게 엿보게 하신 것 같다. 아이가 꼭 다시 교회에 나오면 좋겠다.

마치며

쉬지 않고 움직였지만, 내 안에 아무것도 바닥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 채워지는 걸 느꼈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함께 일하는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은 너무 든든했다. 부족한 것들도 많았지만 그것 마저 추억이 되었고 주 안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고 온전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불 같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다시 주일 예배를 매주 드리며 보이지 않는 몇몇 아이들 때문인지 마음이 허전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나님께서 전도사님과 모든 선생님,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의 일을 끝까지 선하게 행하실 줄 믿는다. 감사하고 행복한 여름성경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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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상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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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5일

오늘도 너무 잘읽었습니다!
일은 사역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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