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에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개발자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두 행사 날짜가 겹쳐서 서울에 간 김에 약간 무리해서 두 행사 모두 참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대략 9시부터 5시까지 한빛미디어에서 진행하는 AI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한국 리눅스 커널 개발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다른 두 행사를 하루에 참여하며 색다른 인사이트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
낮에 참석한 바이브 코딩 관련 행사장의 연사들은 AI가 가져다준 놀라운 일들을 연거푸 토해냅니다. 대단합니다. 한 마디 프롬프팅에 테트리스 게임과 크롤링을 기반한 웹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PR 메시지 작성과 리뷰 그리고 수정까지 AI를 통해 합니다. 다들 AI가 가속화해 줄 미래에 대해 말하며, 이제 새로운 것을 더 빨리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역설합니다. 바이브 코딩으로 보여주는 예제들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강남역 근처에서 진행되는 한국 리눅스 커널 개발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소규모 행사인줄 알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랬습니다. 새어보지는 않았지만 100여명은 족히 되어 보였고,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AI에만 열광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리눅스 커널 개발자 모임의 발표를 들으며 낮에 들었던 내용과는 확실히 결이 다름을 느꼈습니다. 바이브 코딩은 결과를 빠르게 눈으로 보는데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고, 커널 개발은 그 과정에 있는 코드 하나하나에도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이브 코딩은 기술 습득의 허들을 낮춰주고 일정 수준까지 빠르게 올라가도록 돕는다면 리눅스 커널 개발은 그 이상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검증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숙련된 개발자라면 리눅스 커널 개발에도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초보자가 바이브 코딩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AI의 발전도 참 대단하지만 수십년 간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통해 성장해온 리눅스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AI도 사실은 리눅스라는 든든한 서포터가 없었다면 존재 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새삼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잠시만 생각해 보면 AI는 혼자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의존하는 기술들이 분명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I는 자신을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에 의존하고,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와 그 이면의 하드웨어적인 컴퓨팅 기술, 그리고 인프라 및 개발 프레임워크에도 의존합니다. 이런 기술들이 발전되지 않으면 AI도 정체될 것입니다. 최근에 클로드 코드 성능 이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AI 서비스의 인프라 문제로 AI의 가치기 순간적으로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AI는 자신이 의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자기가 의존하는 기술 그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AI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기술로 또 AI를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계속 만들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AI가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한 가지 대상이 더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AI의 등장으로 더 이상 공부가 필요 없다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AI는 분명 질문과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프롬프팅에 그 무엇보다 의존합니다. 짧게 보면 아무것도 몰라도 AI가 뭔가를 줘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장기적인 성과를 내려면 AI를 잘 드라이브 할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AI 결과를 검증할 수 있을 만큼 잘 알아야 합니다. AI가 잘하는 일은 AI에게 시키고 사람이 전체를 결국 책임지고 드라이브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을 학습하는 일에 AI의 도움을 적극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AI를 활용해 우리 자신의 지식을 발전시키고, 다시 그 지식으로 다시 AI 드라이브하여 잘 활용하는 선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AI도 결국 사람과 다른 기술들과 협력하는 유기적인 한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