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개발자의 커리어 고민

주싱·2022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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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직장 동료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온다. 둘다 창원에서 대전으로 올라와 가까이 살고 있는 동료다. 갑자기 OOO 회사에 갈 생각 없냐며 묻는다. 음.

링크드인에 가서 내가 정확히 몇 년 차인지 세어보니 회사에 머문 시간으로만 10년 5개월이 되었다. 적지 않은 경력에 적지 않은 나이이다. 주위를 보니 이제 나 보다 나이가 적은 스타트업 CEO, CTO 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현재 우주지상국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흔히 백엔드라고 부르는 API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는 일을 하지는 않고 하드웨어 장비와 연동하고 메시지를 처리하는 파트를 맡고 있다. 사용하는 기술도 2년전 현재 회사에 오면서 Java, Spring, Netty 라는 그나마 최신 기술을 사용하고 있고, 이전까지는 C 로 Socket 을 직접 사용하여 여러 네트워크 프로그래밍을 했다.

이직을 제안 받은 회사는 내가 오랜 기간 머문 방위산업 분야의 네카라쿠배 정도되는 회사이다. 그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개발쪽으로는 제일 괜찮은 회사라고 여겨지지만 방위산업 분야 자체에 대한 망설임이 크다. 방위산업 분야의 대기업 위에는 하나의 국가 기관이 있다. 방위산업 분야는 모든 프로젝트가 해당 기관으로부터 수주되는 SI 프로젝트다. 해당 기관의 어떤 담당자를 만나냐, 어떤 프로젝트를 하냐에 따라 업무의 질이 현격하게 달라지고 삶의 질도 큰 영향을 받는다. 안정을 추구하다 보니 기술 스택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사용하던 X-Window 시스템을 UI 개발에 여전히 사용하는 곳도 있다. 여전히 C 언어가 대세이다. (사실 요구사항을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300 밀리초도 아니고 마이크로 초 시간을 측정하며 개발해 본 적도 있다) 모든 것이 폐쇠망에서 동작해야 한다. 이메일 하나 보낼 때도 결제를 맡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형식적인 일도 많이 해야 한다.

나는 요즘 새로운 분야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사실 네카라쿠배 같은 회사에 한 번 가서 함께 일해 보고싶다. 거기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니면 더 좋은 사람들과 조금 더 멋지게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두 딸들이 취업을 하고 일을 할 때 쯤 회사가 다 그런거야 라고 말해줄지 아니면 새로운 문화를 소개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 동안 쌓아온 경력이나 기술 스택의 결이 그들과는 많이 다르다. 코딩 테스트도 떨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30대 후반의 나이에 신입사원의 자세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연봉이 지금 내 연봉보다 높으니 신입으로라도 들어가서 경험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10년간 진흙 밭에 뒹굴었지만 다시 신입처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지금 내카라쿠배에 다니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엉뚱하게 해봤다. 아마 10년 동안 유명한 회사에 다녀서 시니어 엔지니어가 되었다면 지금의 나이에 이 만큼 간절하게 공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쉽게 모르는 걸 드러내기도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떠올랐던 생각이 마음에 든다. 천천히 그리고 될 수 밖에 없도록 즐겁게 준비해보려 한다.

"아무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 힘을 줘도 안될 때가 있고, 가지 않으면 안되서 급하게 가게 될 때도 있다. 지금 아무리 해도 안되는 일이라면 자연스레 준비해서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게 목표다."

말이 길어졌네. 다시 돌아와서 방위산업 분야의 네카라쿠배에 다시 돌아가 볼 것인가? 아니면 진짜 내카라쿠배를 천천히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회사를 네카라쿠배 처럼 만들어 볼 것인가? 조금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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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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