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Js_dev·2026년 3월 2일

https://www.youtube.com/watch?v=d69pcTvAaDo

1. 꼬리

꼬리는 쓸모없다.
특히나 멋드러지게 펼쳐진 날개는 더더욱.

곤충들은 껍질을 벗고, 꼬리를 자르고, 때로는 날개를 떼어 내기도 한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날개가 있는 것이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생동감과 감정을 세세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기관,
타인에 대한 이타심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표방하는 날개가 된다.

그러나 생존경쟁 환경에 놓이면 우리는 필히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날개를 본인 손으로 뜯어버려야 할 때가 온다.

그 다음 돋아나는 날개는 기존의 것에 비하여 더 튼튼하고 큰 것일까?

2. 권총 앞에서 왈츠 추는 법

1년 전 쯤,
이 현실 속에서도 왈츠를 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약 현실이 누군가가 권총을 내 코 앞에 놔두고,
언제 쏠 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왈츠를 출 수 있겠는가?

조금만 더 풀어서 설명한다면, 만약 세상이 언제 어떻게 당신의 일상을 무너뜨릴 지 모르고,
언제 엄청나게 좋거나, 나쁜 일이 터질 지 모르는 상태인데,

마음 놓고 왈츠를 출 수 있겠는가?

3. 창발과 숨겨진 속성

창발은 곧 속성의 생성, 차원의 생성으로 평가된다.
애초에 복합성이 뉴런의 생성과 연결으로 보장되는 것이니,
아주 당연하게도 창발되는 것은 우리가 뉴런들의 상호작용들의 특성을 주관과 추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뉴런들은, 알아서, 창발한다.
자신 이해란 자신에게 창발하는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는 제 3자 관찰자의 특성을 동반한다.

따라서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숨겨진 속성들이 존재한다. 출생의 특성에서부터 시작해서 유전적인 특성은 물론이고, 알아서 뉴런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특질마저도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추상이라는 차원으로 희소 차원에서부터 차원 축소를 진행하는 것임에 불과하다.

4. 생각이라는 것은 결국 실효성이라는 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 실효성이라는 것을 섣불리 보장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스노우보드를 타고 경사진 내리막길을 나무를 피하며 내려오기 위해서는,
나무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나무를 피해서 여기에 도착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벌이 벌집을 짓고, 개미가 개미집을 지을 수 있는 원리는 위와 같으며,
사람이 어떠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 또한 같은 원리라고 생각이 된다.

이 생각은 여기에 쓰여야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3번의 내용과 같은 맥락으로,
Connecting the dots는 무엇인가, 1차원의 직선을 긋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가?
Networking the dots가 아마 본연의 의미로 느껴진다.

실효성은 창발하는 것이기에 섣불리 보장될 수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가장 깊은 곳에서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배경으로 하여야 비로소 전체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며,

따라서 가장 근본적으로 시작과 끝은 자기 이해에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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