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을 한없이 체감한다.
AI발 실직 위험부터 시작하여 취업 불황, 재테크나 아니면 숱한 알까기 싸움에 벌어지는 삶의 격차,
못나버린 자식이나 못나버린 부모 혹은 그 누군가에게 한없이 못나버린 누군가가 되는 그 감각.
우리는 어느 순간 무가치함의 시대에 떨어지게 되었다.
가치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손쉽게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인 감각을 얻을 수 있다.
쇼핑몰에 가서 돈을 쓰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혹은 맡은 일을 하나씩 해 가며,
그도 아니면 오늘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며,
이 관계 혹은 행동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는다.
본능에서부터 나오는 그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 감각을 느끼며,
우리는 손쉽게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어떻게든 우리는 아무 가치가 없다.
외부 조건에서 속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가 그러하다.
왜 우리는 무가치하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 덜 가져서? 사랑받지 못해서?
더 이루지 못하여서 아니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이 사상은 자기 자신을 좀먹는다..
그럼에도 이 사상을 사랑함으로서 자신이 가치있어 지는 것 같아서,
이 덩어리를 어떻게든 손에 쥐고 손이 곪아가는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하고, 그 괴로운 일면으로 가치있음을 느끼며,
또 그 괴로움을 해결 할 방법을 찾는다.
판자에 구멍을 내고, 또 구멍을 메꾸고,
왜 판자에 구멍을 내야만 하는 것이지?
그 판자에서 터져나오는 오물이 너무나 가치있어서 우리는 판자에 못질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 오물을 우리는 뒤집어 쓸 수 있을 지 고민한다.
판자에 구멍을 뚫고 오물을 어떻게든 몸에 맞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계속해서 구멍을 뚫는다,
구멍은 자고로 평평한 평면에 뚫는 것이 아니다.
마치 억만겹으로 짜여진 다차원 공간에 점을 찍는 것과도 같다.
그 가치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판자에 구멍을 내지 않으면 애초에 구멍을 메꾸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러면 도무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는 것이다.
살아감으로서. 나에게 주어지는 오물을 몸으로 받아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