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혁명> / 우리가 눈을 뜬 시점 이후에서

Joonseung Jang·2022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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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식에 대해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
8살때 정도로 기억하는데, 모래 놀이터에서 형과 동생, 그리고 놀이터 친구들과 놀았던 때였다. 그 때 모래를 쌓으며 느꼈던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누가 나를 때리거나 놀렸을까? 아니면 넘어지기라도 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래를 쌓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모래를 만지고 있는 것인가?

저 질문의 대답이 '그렇다'가 된 순간, 무엇인가 미묘하게 이질감을 느꼈다.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순간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다.

아무래도 그 때 처음 눈을 뜬 것 같다.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과도 같은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에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는 애늙은이 같은 아이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으며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지독한 꿈이다

<뇌과학 공부> 라는 책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꿈은 유난히 생생한 의식 상태이며, 현실은 지독한 꿈이다.

이 것은 곧 현실과 꿈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8살때 의식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계속해서 이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으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다.

지나가는 순간을 기록하기도, 특정 순간을 계속해서 잊지 않으려고 하기도
하였지만 당연하게도 시간은 지나간다.

만난 이들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면 다양한 답안지를 볼 수 있었다.
재밌게 살려고, 행복하게 살려고, 그냥 태어나서, 그리고 별로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는 삶이라는 게임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분투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나는 저 답안지를 채울 수 없었다.

삶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삶은 주어진다. 우리는 의식의 파편으로 순간을 인식하지만,
그렇다고 순간에 정해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호기심으로 부터

살아가는 것은 그리 흥미롭기만 한 일은 아니다.
물론 좋은 순간도 많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나를 관통했다.

하지만 그 순간들 중에 의미있는 순간을 꼽자면
의식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 때쯤 깨달았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삶의 이유에 대해서는 답안지를 채워넣기를 포기하더라도,
내가 할 것은 명확한 것이다.

무지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다양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무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통찰력이 더 중요한 듯 하다.

인간의 인생은 의사결정의 총체이며,

결국 정해진 답안 같은 것은 없었고, 다만,
에너지 보존 법칙과 같이 원칙만 있을 뿐이었다.

마치 원칙대로 진행하는 카드게임과도 같다.
다만 그 원칙이 물리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고 우리는
그 법칙에 대해서 잘 모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직관적으로 전략을 선택한다.
카드 게임으로 빗대자면 유리한 상황에서 승부를 보거나,
불리할 때는 빠르게 게임을 포기하는 등 말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에 많은 돈을 벌기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타지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기를 반복하기를 선택하거나 말이다.

이러한 선택이 쌓여 인생을 구성한다.
즉, 인생은 그 사람이 선택하는 의사결정의 총체이다.

좋은 의사결정은 의식 수준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
아니, 그런데 삶에는 정답도 의미도 없는데 좋은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정확히 말하면 삶에는 정답지가 있다.
이 우주가 정답이 없이 흘러갈 뿐이다.

우리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 행동한다(=선택한다).
즉, 우리는 욕망이라는 함수를 무작위성(DNA 경우의 수)으로 부터
부여받았던 것이다.

삶에는 정답도 의미도 없지만, 우리의 욕망에는 정답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욕망을 해소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의식이 개입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도 통찰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차원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면서도,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남들을 도와가며
세상을 더 낫게 발전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식 수준'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명확히 정의를 내리거나, 의식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이 가능하지는 않다.

나는 여기서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식 혁명> : 의식에 단계를 나눌 수 있을까

이 책은 의식에 단계를 나누고, 그 측정법과 예시에 관해서 설명된 책이다.
그러나 측정법이 생각보다 근거가 빈약하고, 그 내용도 객관적인 사실과는 괴리가 있어 위에 있는 도표를 예시로 내용을 채워보겠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패턴으로 환원이 가능하다.
대부분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여건이 된다면 그 상위 욕망을 해소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테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던지, 취미생활을 가진다던지,
명품을 사서 과시를 하려고 한다던지 말이다.

우리는 동물이다.
길 가는 고양이와 그 기원이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족을 보전하는 데에 강한 인센티브를 부여받았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높은 영양소를 쫓는다.
좋은 서식지와 매력적인 이성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패턴으로 인식하게 되면 어떨까.
자신의 행동의 이유는 주어졌으며 그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된 것 또한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 자신도 남이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러한 패턴 속에서 흘러가는 것을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점을 깨달은 것이 22살의 가을쯤 된 것 같다.
그 이후 인생에서 하나의 업이 생겼다.

만약에 내 시간을 가치있는 곳에 써야만 한다면,
인간의 의식과 인지능력의 근원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객관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왜 이것이 가치가 있는지, 굳이 저 둘을 고른 이유는 나중에
서평과 함께 정리해보고자 한다.

더 나은 의식은 무엇인가?

여기까지면 의식이란 단순히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과 자신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다름이란 결국 본질적으로
일관된 확률선상에서 출현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치 동전의 앞면은 동전의 뒷면에서부터 출현하고,
0은 1로부터 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심오한 문제다.

그러한 점에서 과연 의식의 단계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마치 욕구 계층과 같이 의식의 계층을 나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그 측정은 '근육테스트법' 이라는 것으로 손목에 힘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를 통해서 측정한다는데, 이 것은 사실 잘 와닿지가 않는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의식 수준의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글을 마치면 좋을 것 같다.

위의 도표를 보면 높은 곳에는 깨달음, 평화, 기쁨 등이 있고
낮은 곳에는 무기력, 죄의식, 수치심 등이 있다.

우리는 저러한 단어를 한번씩은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어디서부터 오는 지를 생각해보면 더 나은 의식에 대해서
갈피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식이 낮은 사람은 왜 무기력하고 죄의식을 갖고 수치심을 가지는 것으로
분류되게 되었을까?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불우한 환경이나,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
혹은 타고난 기질 등이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결국 그 안에 갇히는 것은
자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이 높은 사람은 무엇일까?
그들은 안좋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금방 수용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시작한다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주사위에서 높은 숫자가 나와야 한다면,
주사위에서 낮은 숫자가 나왔다고 해서 울지 않는다. 그냥 낮은 숫자가 나올 수 있음을 알고, 새로운 주사위를 던지려고 할 것이다.
또한 높은 숫자가 나올 수 있는 주사위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식이 높다는 것은 인지의 범위가 넓으며
사건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여 좋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

개발 블로그이지만 정리의 목적도 있고,
결국 개발 또한 하나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책 내용까지 정리를 해 본다.

어쩌다 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의식은 무엇이며 단계는 어떻게 나뉘는지가 궁금하였다.

다음에는 왜 의식과 인지능력이 중요한지,
왜 그곳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

20대에는 기초공사를 잘 하고 싶다.
이후 살아가면서 내가 정한 중요한 일들을 완성하고 싶다.

인간의 지능에 대해서는 현재 신경망을 흉내낸 AI 정도가 있고,
의식의 본질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도 없으며 단지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을
강인공지능이라고 명칭할 뿐이다.

지능이 결국 패턴에 반응하는 능력이며 신경망을 통해서 학습이 된다고 친다면
의식은 다양한 패턴을 통합하여 더 높은 단계에서 결정하는 일인데,
차후에는 인간에게 높은 의식을 부여하는 서비스나 지식,
혹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의식 시스템, BCI 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항상 생각 할 때마다 우리가 정말로 아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마치 공이 날아올때 배트로 치는 야구선수와 같이
자극과 반응의 연속으로만 살아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속에서 의식의 존재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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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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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1일

호 마지막 부분 읽는데 의식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선배가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을 남처럼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지" 무덤덤 마인드랄까요 흘러가듯이 진짜 남 일인 것처럼요
(최근 본 책이 인간실격이라 계속 요조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사실 저렇게 나눈 의식수준 조차도 우리가 사회적 약속처럼 나눈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요조가 사회적 기준의 의식수준이 낮아서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고여있달까요 본인에게... .. 쓰면서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엣콩💫)

저도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완전 ㅇㅏ기 시절에 가족들과 호수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어? 내가 지금 살아 있나? 하는 의문이 들면서 이건 꿈이 아닐까? 깼더니 지구 반대편이면? 우리 엄마아빠는? 난 살아있나? 뭐 이런 생각들이 드는겁니다 오히려 어릴 수록 그런 생각이 잘 드는 것 같기도 해요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 그런걸까요🤔 아무래도 나이를 먹을 수록 계속 달라지니까요 달라진 것도 물론 내 모습이겠지만.. "타고난" 기질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일테니까요

의식.. 은 의식이기에 무서운 것 같아요 당연한 습관처럼 생각하던 것들도 의식하는 순간 부자연스럽잖아요 예를 들어 "양..?말..? 이게 양말..이 맞나 뭔가 이상한데" 하는 고런 순간들요 제어를 거는 느낌이라 이상해요 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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