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며 간간히 외주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어느 날, 대학교 디자인/마케팅 동아리 부장 후배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선배님! 멘토리얼 세미나 해주실 수 있어요?"
"? 엄...그래! 상관은 없는데 언제?"
"다음주 목요일이요!"
"???????"
알고보니 동아리 홍보를 겸해 멘토리얼 세미나를 열려 했다고 한다. 세미나 연사를 고민하던 중, 동아리 담당 교수님이 나를 추천해주셨다고 했다. 교수님은 내가 사업자로 외주 작업을 하며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셔서, 디자인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하신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찾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세미나가 바로 다음 주라니(전화받았을 때가 그전주 금요일이었다),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동아리 내부 세미나가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다니 긴장도 됐다. 다행히 온라인으로 진행하자고 해서 서울로 내려갈 일은 없었지만, 내 본고장이 구미라 대구가 가까워서 오프라인 세미나로 진행할 수 있었다면 교수님도 뵙고, 친구들도 만나고, 본가에도 갈 수 있었을 거 같아 내심 아쉬움도 있었다. 그 이전에 목요일 저녁에 다른 프로젝트 미팅이 있어 오프라인 일정은 조금 어려운 상황이긴 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사실 작년에 동아리 내부에서 한 번 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업자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프리랜서로서 디자인 작업을 해오던 시점이었고, 학생들에게 디자인 툴을 알려줬던 적이 있었다. 작년 세미나 당시 참여한 학생은 대략 6명 정도였다. 사실 나의 모교인 DGIST는 디자인학부가 있는 학교는 아니고, 졸업 후 대부분 연구나 대학원, 전공 관련 직업으로 진로를 정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세미나에 올까 싶었다. 디자인 관련 과목은 몇 개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디자인 진로를 선택한 학생은 거의 없다. 어쩌면 나는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긴 하다.
작년에 강연했던 내용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커리어 진로를 잡고자 했고, 어떤 계기로 디자이너 진로를 선택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 어떤 관련 활동을 했는지, 비전공자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정말 극초반에 했던 디자인과 최근에 했던 디자인의 비교샷을 보여주며 처음과 비교했을 때 처음이 볼품없어 보이고 초라해보인다면 그건 그만큼 당신이 성장했기 때문이라 말하며 나도 이렇게 성장했으니 후배들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발표를 끝마쳤다.
비록 그때 당시에 세미나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디자인 진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고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최대한 말해주고자 노력했다. 그 친구들이 눈을 반짝이며 들어줘서 세미나를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어 덜 떨리긴 했지만, 그만큼 기대감보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디자인 진로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지 않았던 예전 기억이 나서, 이번에도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현재 내가 많이 위축된 상태라, 이런 소소한 경험을 가진 내가 강연을 해도 괜찮은 사람일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소하더라도 뭘 많이 하기도 했고! 그래서 디자이너 진로를 떠나, 전공과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내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발표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와중에 교수님이 세미나에 대한 홍보글을 올려주셨는데 순간 좀 뭔가 머쓱하기도 하고 이게 맞나 싶었다. 하핫^^;;
막상 모든 학생들이 포괄적으로 들을 수 있게 만들자고 다짐하긴 했지만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처음에는 아예 디자이너라는 말을 빼버리고 커리어패스를 명확히 잡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다양한 진로에 대해 설명을 해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현재 디자인 쪽 직무에 있기도 하지만 마케팅, 영업, 창업 되게 다양한 진로를 경험해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미나 발표를 교수님도 들으신다고 하시길래 디자인 쪽으로 더 집중해서 발표를 해야하는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니 발표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 교수님께서 내 작업물도 내심 궁금해하시는 거 같아서 최대한 보여줄거 보여주고, 가릴거 가려서 정리했다. 발표 내용을 디자이너 커리어와 관련된 부분에 중점을 두되, 커리어패스에 대한 조언은 특정 진로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하도록 했다.
한번 해봤다고 해서 이미 썼던 내용을 가져오거나 대충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하다가 최대한 깔끔하게 설명할 내용만 중점적으로 넣었다. 작년에 했던 강연과 비교하면, 이번 발표 자료는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게 준비된 것 같았다. 세미나 준비를 하며 내가 조금 더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표 당일, 약 10명 정도가 참석했었다. 생각보다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커리어 쪽도 고려하고 있는 학생들도 조금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들으러와준 학생들이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고마웠다. 오프라인 강의였으면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라도 간식이라도 사주고 싶을 심정이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 나를 소개하실 때 수업 때도 디자인도 훌륭했고, 발표에도 자신감이 넘쳐서 정말 인상이 깊은 학생이었다고 칭찬에 칭찬을 거듭해주시는데 어떻게 감사인사를 드려야할지 모를 정도로 너무 감사했다. 날 이렇게 좋게 생각하실줄 몰랐다.
발표 당일이 목요일 점심시간에 진행하는거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엄청 많진 않았다. 40분 정도였다. 나는 내가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디자이너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그안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 가치관의 변화를 설명하며 무엇을 위해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는지를 얘기했다(이 내용은 나중에 다른 포스트에서 풀도록 하겠다). 그다음 정말로 디자이너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얘기했고, 마지막으로 커리어패스가 명확하지 않은 후배들을 위해 해줄 조언으로 뭐든지 경험해보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 회고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말을 끝으로 발표를 마쳤다. 그 이후에 바로 우리 학교 디자인/마케팅 동아리 도미노 부장 친구의 동아리 홍보를 10분 정도 진행하고 간단하게 세미나 내용과 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면 "프리랜서를 하다보면 일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잖아요. 사업을 하면 그런 불확실성에 망설여질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어떻게 견디시나요?" 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나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긴 하다. 외주 사업을 하고 있다보면 그런 의문은 들 수밖에 없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친구도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업은 그런 불확실성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챙기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면 알바를 통해 입에 풀칠 정도는 할 수 있게 말이다. 모든 불확실한 일에는 불안감이 따라올 수밖에 없지만 그걸 견딘다면 우리에게 오는 성과는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뿌듯함을 안다. 그래서 그저 현재에 집중하고 곧 다가올 멋있는 미래를 생각하며 버티는 것이다. 나도 내 불투명한 취준 생활을 외주 프로젝트로 버티고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다가오는 변화에 대응하며 유연하게 대처하고, 이 불확실성을 하나의 성장이자 경험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이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목례를 했다. 사실 그런 말들은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내심 조금 미안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알았다면 더 많은 조언을 해줬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전한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강의 끝에 모든 친구들에게 연락처를 공유했으니 나중에라도 그 학생이 연락을 해주면 좋겠다. 물론 아무도 연락 안 오겠지만! 연락하라고 해도 잘 안 하는 학생들이 많다...
준비하는 시간이 빠듯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거 치고 발표자료도 작년 발표와 비교하면 깔끔하게 잘 만든 거 같고 발표 흐름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잠시라도 내가 성장했음에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ㅎㅎ 무엇보다 끝까지 재미있게 들어준 후배님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교수님도 굉장히 잘 들었고, 본인도 배울 점이 많은 발표였다며 엄청나게 칭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학생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서, 그리고 내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너무 디자이너 쪽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를 했나 싶었던 것이었다. 그냥 동아리 홍보에 상관없이 멘토리얼 세미나에 초점을 맞춰서 전공과 상관없는 진로를 가는 데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주제로 얘기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들으러올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저 내 발표를 끝까지 재미있게 들어준 학생들이,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없는 나를 불러준 교수님이 그저 감사하다. 진로 고민을 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나의 이야기가 한 명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정말 만약에 또 다음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한 상태로 더 많은 학생들과 소통하며 내 이야기를, 그리고 다양한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싶다.